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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택, 나의 도시

일본의 쇠락한 도시 '다카시마다이라'

by 국빈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마을.


KakaoTalk_20250309_002126762_12.jpg 일본 도쿄 '다카시마다이라'의 거리 풍경


일본 도쿄 외곽에 위치한 '다카시마다이라'. 이곳은 197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규모로 조성된 신도시로, 당시에는 젊은 층으로 가득했던 활기찬 공간이었다. 하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리모델링도, 재건축도 이루어지지 않은 단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인구의 상당수가 고령화된 대표적인 베드타운이다.


KakaoTalk_20250309_002126762_04.jpg 다카시마다이라의 한 정골원(整骨院) : 부러진 뼈를 붙이거나 어긋난 뼈를 바로 맞추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
KakaoTalk_20250309_002126762_05.jpg 다카시마다이라의 한 안경점에서 콘택트렌즈와 보청기를 판매하고 있다.


한때 활기 넘치던 거리에는 하나둘 문을 닫은 가게들이 늘어나고, 간판은 점점 변해갔다. 성형외과 대신 정형외과가 들어서고, 안경점은 보청기 사업을 병행한다. 사람도 공간도 함께 나이 들어간다. 한때 젊은 가족들이 북적이던 이곳은 이제 흰머리 노인들이 주를 이루고, 건물과 간판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KakaoTalk_20250309_002126762_03.jpg 다카시마다이라의 파친코 입구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파친코였다. 일본에서 파친코는 법적으로 합법이지만, 실질적인 도박이라는 비판이 많아 사회적인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백발의 노인들로 가득했다. 고요한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사람이 사는 활기가 물씬 느껴졌다.


노인들은 기계에서 나오는 불빛과 소음 속에서 조용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고,

마치 이곳이 그들이 즐기는 유일한 여가공간이자, 놀이터로 활용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이곳의 풍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주변을 떠올렸다.

부모님 역시, 젊었을 적에는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곤 했지만, 이제는 그런 자리도 점점 사라졌다. 가족을 위해 달려온 시간의 끝에서, 정작 본인을 위한 시간은 비어 있는 셈이다.


젊었을 적에는 가족을 위해 하루를 바쳤고, 노년마저도 자신의 여가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걸까?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 건강하다는 대답보다 '사는 게 즐거워'라는 말이 더욱 듣고 싶은 요즘이다.




물론 이러한 늙어가는 도시, 다카시마다이라도 암울하지만은 않다.

미미하지만, 최근에는 다카시마다이라에서도 흥미로운 움직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일부 젊은 층이 여러 이유로 이곳을 선택하고 있었고, 단지 내에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쇠퇴를 되돌릴 만큼의 큰 흐름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문을 닫은 가게가 여전히 많고, 거리의 정적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이 조금씩 움트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다카시마다이라를 보면서 한 가지 위안을 얻는다. 쇠퇴 속에서도 작은 변화의 흐름이 있다는 것. 완전한 회복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가능성은 어디서든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에게도 여전히 삶을 즐길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을까.

다카시마다이라의 거리를 걷던 노인들처럼, 우리도 조금 더 나은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KakaoTalk_20250309_002126762_14.jpg 다카시마다이라의 시계탑


도시는 늙어가지만, 그렇다고 시계탑의 초침이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래의 우리 동네는 과연, 살고 싶은 도시일까.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을 지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갈림길에 서게 되었을 때,

내가 눈 감을 수 있는, 혹은 눈 감고 싶은 도시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의 마지막 장소,

그곳은 어디일까. 어떤 모습일까.






감사의 말 : 신생 작가임에도, 최근 조회수와 공감 수가 크게 늘어 글쓰기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좋아요를 눌러주신 작가님들의 서재에도 들러,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고 많이 배웁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로서 늘 고민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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