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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 속에서 춤추는 노인

일본 도쿠시마 '나루토의 소용돌이', '아와오도리'

by 국빈
도쿠시마현에서 만난 '나루토의 소용돌이'


세계 3대 조류 현상 중 하나로 꼽히는 도쿠시마의 바다는 매일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나루토 해협, 조류가 부딪히는 곳. 물살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며, 때로는 휘몰아치고 때로는 잔잔해진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인생처럼.


나루토 소용돌이를 보러 간 날, 유람선에 탄 사람들은 모두 그 장관을 한눈에 담으려 애썼다.

“저게 바로 자연이 만든 예술이지.”

한 어르신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주름진 입가에는 이유 모를 평온한 미소가 맴돌 뿐이었다.


사실 나는 웅장한 소용돌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고, 멋있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무섭다는 감정이 솟구쳤다. 이제 30대가 되어 누가 봐도 '아저씨' 소리를 들을 만큼 다 컸지만, 세상은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좌절과 불안, 예측할 수 없는 변화들이 나를 끊임없이 휘몰아친다.


지금도 나는 내 인생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듯하다. 경쟁사회라는 압박 속에서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 앞에 길을 잃고, 버티는 것조차 힘겨운 순간들이 계속된다. 어떤 날은 발버둥 쳐도 휩쓸려가고, 어떤 날은 겨우 중심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흔들린다. 마치 이곳, 나루토 해협의 거친 물살처럼.


물론 저 어르신도 자신의 인생에서 수많은 소용돌이를 지나왔을 것이다. 젊은 날의 격랑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어딘가로 휩쓸리기도 했겠지. 하지만 결국 그는 이렇게 배에 올라 미소를 지을 만큼, 흐름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일까.


바다는 그대로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건 왜일까.

삶도 결국 그렇게 흐르는 걸까.




도쿠시마는 소용돌이로도 유명하지만,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전통 춤 '아와오도리'이다.


그날 저녁, 나는 도쿠시마의 문화시설인 '아와오도리 회관'을 찾았다.


아와오도리는 도쿠시마의 대표적인 전통 춤으로, 400년 동안 이어져 왔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위로 등장한 무용수들이 “에라, 얏사, 얏사!”를 외치며 신나게 발을 구르고 손을 흔들었다.

그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무용수도 있었다.

그의 몸짓은 젊은 무용수 못지않게 유연하고 자유로웠다.

그는 무대에서 춤추는 순간만큼은 세월을 잊은 듯했다.

아니, 어쩌면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IMG_9471.JPG 관객과 함께, 모두가 함께 춤을 추었다.


회관에서는 직접 춤을 배워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머뭇거렸지만, 앞줄에 있던 어르신이 가장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어색하지만 활기찬 몸짓으로 춤을 췄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따라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와오도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바보는 춤추고, 바보는 구경한다. 어차피 바보라면 춤추는 쪽이 낫다.”

나는 이 말을 떠올리며 객석을 둘러보았다.


수줍게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춤출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루토 소용돌이를 떠올렸다. 소용돌이는 한없이 휘몰아쳐도 결국 흘러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나온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춤출 수는 있다.

소용돌이 속에서도, 춤추는 노인처럼 말이다.

그날 밤, 나는 도쿠시마의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저 어르신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받아들이며, 주어진 순간을 춤추듯 살아갈 수 있을까.

바다는 계속해서 소용돌이를 만들고, 도쿠시마의 거리는 해마다 아와오도리의 북소리로 가득 찬다.

변하지 않는 흐름 속에서도, 그들은 춤추고 있었다.


"인생은 결국 흐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춤을 춘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사실 정말 고된 하루였다.


마음은 지쳤고, 현실은 여전히 버겁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이 나만의 춤인지도 모르겠다.


몸을 움직이는 대신, 단어를 하나씩 꺼내어 흐름에 맡기고, 문장을 쌓아 올리며 나만의 리듬을 만든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서도, 나는 이렇게 글로 춤을 춘다.


누군가는 돈 안 되는 일에 왜 시간을 투자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한 줄을 써내려 간다.


흉보려면 흉보라지.


"나는 이제 창피한 거 몰라요" "계속 춤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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