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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홀로 가게를 지키는 노인

by 국빈


일본(日本) 오사카를 여행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도톤보리의 화려한 간판이나 우메다의 현대적인 거리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오사카는 조금 다르다. 특히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일본 최대의 빈민가, 니시나리(西成)구는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이다.


이곳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오사카에 속해 있지만, 거리를 둘러보면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 젊은이들 조차 보기 힘들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그 어떤 곳보다도 특별했다.



쿠라시식당 내부.jpg 오사카(大阪) 니시나리구 가정식 식당 내부


니시나리구의 한적한 골목길에는 작고 소박한 가게가 있다. 그곳은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서 살던 시절, 자주 들르던 단골 가게였다. 문 앞에는 언제나 '오늘의 정식(日替わり定食)'이라는 글귀와 함께 음식을 담은 모형 접시가 놓여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오래된 TV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이나, JPOP 노랫소리가 공간을 가득 매웠다.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분이셨지만, 내가 가게에 들를 때마다 늘 따뜻한 밥상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쿠라시식당 음ㅅ기.jpg 오늘의 정식(日替わり定食)


개인적으로, 이날은 구성이 아쉬웠지만 아무래도 오늘의 정식은 매일 메뉴가 달라지기 때문에 푸짐한 고기반찬을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홀로 계시다 보니 아무래도 밥과 물은 셀프서비스다. 사실 이 점은 나에게 더 매력적이었다. 그 시절 주머니 속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며 늘 배고팠던 나에게 550엔(약 5500원)이라는 금액으로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위안이었다.


특히, 일본은 돈가스나 라멘 같은 기름진 음식이 많고, 과일은 나 같은 워홀러에겐 사치에 가까울 정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나에게 가정식을 먹는 듯한 따뜻함을 제공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일본 현지 식당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게도 그중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남성 둘이 밥을 먹으며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적잖이 놀라기도 했다.


비흡연자인 나는 밥을 먹으며 가끔이지만 담배 연기를 마셔야 할 때도 있었는데, 뭐를 먹고 마시는 건지 모를 때도 있었다. 이 또한 일본의 문화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 최근 오랜만에 니시나리구를 다시 찾았다. 골목의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다행히도 단골 가게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게 앞에서 나를 반겨준 것은 '오늘의 정식' 모형 접시와, 그 너머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여전히 홀로 가게를 운영하며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기억이 날듯 말듯하신 지, 연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겠는가. 나는 그저 내가 다시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가게 안에서 홀짝홀짝 보리차를 마시며 한동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묵하게, 꾸준히 이곳을 지키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꽤나 뭉클했다.


할아버지는 단순히 한 가게의 주인이 아니라, 이 동네를 지키는 하나의 중심이자, 조용히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분이었다. 또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며 꾸준히 자립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노인으로서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해 보였다.



부랴부랴 적은 손 편지





떠나기 전, 나는 할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언젠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사실 이곳에 다시 올 때는 꼭 멋진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졌었는데, 아직도 나의 소망은 현재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이곳 니시나리구는 내가 어떤 모습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가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반겨주었다.


돌아오는 길, 가게에서 흘러나온 TV 속 노랫소리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추억이 가득한 소박한 가게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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