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여느 겨울.
인천광역시 월미도는 알몸마라톤 행사로 인해 열기가 한층 더 후끈 달아올랐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하나 둘, 옷을 탈의하며 마라톤을 준비하는 모습 속에서,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놀라움과 약간의 당혹감이었다. 그것도 잠시,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맨살을 드러내며 도전에 나선 그들은, 단순히 이색적인 풍경을 넘어서 나를 생생한 현장 속으로 이끌기에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번 마라톤 대회에서 코스 안내 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직접 뛰진 않았지만 열정적인 러너들과 한 공간에서 호흡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특히, 참가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시선은 온전히 그들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이 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나이를 뛰어넘어, 옷마저 벗어던지고, 세상이 부여한 틀과 편견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무대였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지고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들은 그 경계를 허물며 자유로움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코스를 안내하면서 어르신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힘차게 뛰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 그 자체였다. 특히 언덕을 힘겹게 달리는 한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도전은 나이나 환경에 제한되지 않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뛰어넘고자 하는 용기가 더 중요해 보였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파이팅!'이라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유일했다. 쑥스러움을 잊은 채 응원을 하는 나에게, 뛰고 있던 한 어르신이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걸었다.
“내가 몇 살인 줄 아나? 82살이다! 허허허.”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의 호탕한 웃음 속에는 자부심과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내 나이도, 아직 나는 도전할 것이 무궁무진하구나."
마라톤 중반부, 갑작스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상의를 탈의한 채 뛰는 참가자들의 어깨 위로 소복이 내려앉은 눈송이는 차갑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찬 발걸음으로 눈발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도전은 날씨와 같은 외부 환경에 좌우되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태도가 진정한 자유와 용기의 본질이었다.
마라톤 행사장 한편에는 1등부터 5등까지의 트로피가 전시되어 있었다. 반짝이는 상패는 누구에게나 탐나는 물건이지만, 트로피보다 더 빛나는 것은 참가자들이 보여준 실천의 힘이었다. 그들의 도전은 트로피나 상장으로 치환될 수 없는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고, 사회가 정해둔 틀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그 모습은 어떤 상보다도 가치 있어 보였다. 특히, 어르신들의 실천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같았다. 그 안에서 나는 나도 조금 더 용감해지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되었다.
‘벗고 뛰는 노인’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용기와 도전은 나이를 불문하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지난날의 나 자신이 떠올랐다. 마음을 품은 일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이유는 나이가 많거나 환경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종종 나이, 환경, 또는 타인의 시선을 핑계 삼아 자신을 가두곤 한다. 하지만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자신을 개방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의 존재는 더욱 빛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옷을 벗어던진 어르신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한계를 허물고 나아가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쯤에서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벗어던지고 도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두려워하지 말자. 도전과 자유는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기쁨이다. 이번 대회는 참가자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자신의 삶을 향한 축제의 장이었고, 나에게는 도전에 대한 용기를 선물해 주었다. 나도 그들처럼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실천, 글쓰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