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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벌어졌고,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한다.

[국도형의 인생탐구영역]- 당신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해결법

마땅히 쓸 사진이 없어서 내 기준에서 최근 제일 잘 나온(볼 품 없지만..) 사진. 보시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코로나19로 다들 모두가 힘들다. 

컨설팅을 할 때, 아니면 기존 고객들과 월 1회 정기 미팅을 가질 때 누구하나 빼놓지 않고 던지는 질문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요즘 어떻게 살아요(지내요)?'


공무원을 제외하고, 1인 프리랜서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이기에 여기에 그 정답을 적겠다.

'최소한 당신만큼은 다들 힘듭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메시지를 좀 더 본질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모자라고 부족해서 어려운 것이 아니고 전염병 앞에 다들 마땅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뿐이니 너무 괴로워 할 필요 없습니다.'


진짜다. 누구하나 발 뻗고 잠 자는 사람이 없을만큼 모두가 힘들어한다. 뉴스에서 온라인 관련 사업이나 방역 관련 사업등은 오히려 호황이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일들이라 하더라도 힘든이들은 액수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이나 후나 똑같이 힘들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손세정제와 마스크 등의 위생용품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 내 고객 한 명은 코로나 초기에 반짝하고 매출이 올랐다고 좋아했으나 최근 폐업을 생각할 정도로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이 시대에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위생용품 판매업자를 빼고 얘기할 수는 없을텐데 말이다. 


흔하지 않지만 지금 같은 시국에 확실하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 곳이 있다면 관련 제조시설을 갖춘 공장주들이다. 적어도 이들중에는 어렵다고 얘기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도 알아야 한다. 그 정도의 제조시설을 갖춘 사람들은 이미 수억에서 수십억 정도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같은 조건으로 생각하려면 우리도 그정도 자산을 축적한 뒤에 논해야 한다. 비빌 언덕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고통의 크기가 같을 순 없다. 그러니 일단 이런 이들은 논외로 하고...


다시 돌아와서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 그 고객은 왜 반짝했다가 다시 어려워졌을까? 나도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예전에는 위생용품에 대한 시장의 니즈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어느정도 고정 된 형태의 매출이 유지가 되었는데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다보니 그만큼 이걸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예전 가격가지고 판매했다가는 아예 팔리지도 않습니다."


철저하게 수요 공급법칙에 대한 얘기이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판매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고 늘어난 시장 수요에 대비해 공급이 훨씬 더 많아졌다는 이유였다. 자연스럽게 가격경쟁 싸움으로 돌입했고, 결과적으로 그 시장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원가를 혁신적으로 낮춘 자본가들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신 입장에서 같은 kf94마스크가 어떤 스토어에선 1000원인데 어떤 스토어에선 900원이라 한다면 어느쪽 스토어를 이용하겠는가? '돈이 돈을 번다' 라는 자본주의 법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공장에서 1,000개의 마스크를 생산 주문하는 것과 10,000개의 마스크를 생산 주문하는 것의 객단가(개당 단가)가 다르다. 수량이 많을 수록 초도비용이 늘어나는 대신에 제품 가격은 내려간다. 유통에선 이를 줄인 말로 MOQ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달라보여야 하니까...


자 여튼, 그럼 생각해보자. 위에 사례로 든 위생용품 스마트스토어 대표는 인생 전반에 걸친 관점으로 봤을 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악재인걸까? 호재인걸까?


고도의 자본주의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 중 수요공급 법칙이나 규모의 경제 원리에 대해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론적으로 배운적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일 것이다. 언제가 되느냐의 문제인 것이지 아무리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막대한 자본 앞에선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게 언제가 됐든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확인한 것 뿐이고. 


당장을 생각하면 분명 악재이겠지만 사업 전반적으로 봤을 때 분명 호재 아닌가? 이번 일을 계기로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깨달았으니 말이다. 사실 언제든 망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이번일을 계기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막말로 언제든 삼x같은 대기업이 당신 사업장이나 사업을 망치려고 죽자사자 달려들면 당해 낼 재간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가격을 혁신적으로 낮춘 뒤, 작정하고 네이버나 유튜브 같은데 자기들이 생산한 마스크나 손세정제를 죽어라 광고하고 노출만 시켜도 당신이 팔고 있는 마스크를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동시에 똑같은 마스크를 두개씩 쓰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고. 우린 이미 이런것들을 알고 있으나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을것이라 믿고 있는 것 뿐이다. 삼x 같은 대기업이 설마 나 같은 개인을 건들려고 하겠어? 할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 주도권은 삼x에 넘어가버리는 삶이 된다. 그것을 할지 안할지는 저쪽에서 결정하는 문제가 되어 버리지 않는가. 적든 크든간에 당신의 그 리스크를 항시 안고 있는 형국이 된다. 그리고 어떤식으로든 삼x 같은 대기업과 가치충돌이 일어나는 순간이 발생 된다면 당신은 항상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아무 준비도 해놓지 않았을테니까.


 세상 사람들 누구나 자기 일은 열심히 한다. 더군다나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이들보단 훨씬 더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기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일 내가 열심히 해서 많이 벌고 성공하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자기 사업이라 할지라도 국제문제, 사건사고, 전염병 같은 천재지변, 자본가의 공격적인 투자 정책 등에 의해 얼마든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말이다. 뭐, 안다고 해도 자신이 그런것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일어날 가능성이 존재는 하지만 아니겠지 하고 믿고 산다는 것이다.


세상일이라는 것들을 한 번 생각해보자.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건강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한 평생 모은 자산으로 새로 산 아파트에 불이나 버리거나 평생 믿고 살았던 우리 부모가 우리 부모가 아닌 경우라든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일어난다. 횟수나 빈도의 차이일 뿐 내가 그런 일들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과연 누가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멀쩡한 한강다리(성수대교)가 무너졌고, 강남 한복판에 있는 럭셔리한 백화점(삼풍백화점)도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삶의 모든 일들은,

원래 평소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냥 내가 평소에 의식적으로 비중을 두느냐 안두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결국, 세상 일이라는 것은 항상 이렇게 의도치 않은 변수와 불확실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코로나19만 보더라도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인류는 아직 몸 안의 암 바이러스들조차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희생을 통해 천연두, 홍역등의 백신이 개발되긴 했으나 아직 그 근본적인 원인조차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다.


 고백하자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코로나19가 처음 창궐하던 시점엔 나부터도 '설마 21세기에 막지 못하는 전염병이 돌겠어?' 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보다시피 현실로 일어났다. 이런 의미로 인류 전체를 논할 것도 없이, 우리들 인간 개개인의 존재는 세상 안에서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실제론 자기 삶을 자기만 열심히 살면 될 것 같지만 죽을때까지 수많은 변수들과 주변의 영향을 받아 계획 같은 것들은 언제든 틀어질 수 있는 환경안에서 살고있다. 그냥 나만 '내 인생은 튼튼해' 라고 믿고 있는 것 뿐이다.


사업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업아이템이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굳이 천재지변을 제외하더라도 경쟁사들의 존재, 블랙컨슈머와의 접점, 신기술의 발달 같은 것들은 당신이 사업을 하는 내내 언제든 당신이 그동안 해온 모든 것들을 끌어내릴 수도 있는 리스크들로 존재한다. 스티브잡스가 생전에 늘 외쳐왔던 '혁신'의 본질은 실제로 마케팅적인 측면보다 살아 남기 위한 실제적인 몸부림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사는 것이 너무 무의미 하지 않냐고. 한순간에 그간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으니 말이다.


맞다. 너무 맞는 얘기다. 무슨 일이든 안 될 것 생각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안 될 것 생각하고 무슨일을 시도하거나 도전한다면 그거야 말로 바보 같은 행위일 것이다. 또 살다보면 불의의 사건 사고외에 반대로 금쪽같은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죽다가 살아나왔다 라는 말이 있듯이 진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말이다.


모든 세상 일이라는게 사실 이런식으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좋은 일, 안 좋은 일의 개념은 자기 자신의 입장에 따라 정의 내리는 것이고 사건, 사고라는 속성의 본질 자체는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의 문제로 해석해야한다. 정말 대부분의 일들이 이렇다.


 예를들어, 스트레스를 한창 받을 때 피우려던 전자담배의 배터리가 없어 전자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좋은 상황인가 나쁜 상황인가? 좋은 상황일 수도 있고, 나쁜 상황일 수도 있다. 표면적으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니 나쁜 상황이겠으나 또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신체 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이므로 강제로 못피우게 된 상황이 나쁜 상황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내가 그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의 결정에 따라 당신에게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의미로써, 우리는 안 될 것은 미뤄두고 잘 될 것을 생각하여 계획이라는 것을 세운다. 틀어질지언정 그건 그때가서 생각할 문제이고, 계획자체가 없어버리면 대부분 일들은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강다리가 한 번 무너져내렸다고 해서 한강을 아예 건널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다. 한 번 그런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겠지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한강을 건너게 만들어준다. 인간은 항상 이런식으로 희생을 담보로 진화하고 이겨내왔다. 멀리갈 것 없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자, 그럼 정리를 한 번 해보겠다.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내 힘 하나만 가지고는 완벽한 통제를 할 수 없다. 

사업이나 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우리 개개인의 삶에 침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바라지 않았고, 잘못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 의해, 어떤 이유로 인해 코로나19로 인해 내 삶과 시간은 통제당하고 답답한 마스크를 강제로 착용해야한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이 안에서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해오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냥 언제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살다보니 진짜 일어난 것 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 혼자 겪고 있지 않다. 

또 다른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희생하고 있는중이다.

모두는 그냥 묵묵히 닥쳐 온 상황을 잘 헤쳐나가기 위한 각자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다만, 선택은 해야한다. 코로나19는 코로나19인 것이고 

우리는 이 안에서도 잘 살아남아야 한다.


코로나19는 당신에게 악재인가? 호재인가?


 

모든 것은 당신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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