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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Apr 12. 2024

교활하고 사악한 음모에 맞서려면

feat. 댓글부대, 장강명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저만의 팁이 있습니다. 평소 블로그 이웃들이 추천하는 책 제목을 스마트폰 메모 앱에 입력해 놓았다가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이 첫 번째입니다. 안타깝게도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의 경우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럴 때는 책 반납대를 들여다봅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빌렸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 번의 검증은 받은 셈이기에 이곳에서 기대 이상의 책들을 만나는 경우가 잦습니다.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자 최근 영화로 개봉을 해 화제가 된 '댓글부대'도 그렇게 만난 책입니다. 



 작품 속에 제주와 4.3사건은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댓글부대'는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입니다. 동시에 장강명 작가에게 '오늘의 작가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한 작품으로 상금을 두 번 받기 민망하다는 이유로 무료로 한국 소설을 소개하는 서평집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답니다. '책이 뭐라고'라는 팟캐스트로 인해 그가 따뜻한 심성의 사람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댓글부대' 속 사람들은 추악하고 끔찍하기까지 해 내가 아는 장강명 작가의 작품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독기를 품고 세상의 악에 대해 써내려갔을지 짐작이 될 정도입니다.



 한편 저에게 소설은 재미보다는 의무에 훨씬 더 가까운 취미입니다. 책 편식을 극복하고자 소설 장르 책을 의도적으로 고르는 편입니다. 쇼츠에 익숙해진 탓인지 소설 속 세계관에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댓글부대(장강명, 은행나무)'는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었고, 결국 하루 만에 완독했습니다. 오늘은 올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편소설인 '댓글부대'의 주요 내용과 제가 느낀 바를 정리해서 기록할까 합니다.



 '댓글부대'의 목차만 보더라도 호기심이 생겨 이 소설을 읽지 않을 수가 없어요. 히틀러 시대 때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 동원을 위해 나치 선전 활동을 했던 괴벨스의 어록을 바탕으로 목차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저자 역시 정확히 괴벨스가 했던 말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괴벨스 어록을 바탕으로 우리가 얼마나 근거 없는 말에 휘둘리는지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목차와 소설 속 내용이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가 일치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습니다.



 소설은 '팀-알렙'이라는 온라인 마케팅 업체를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그들은 홍보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거짓을 인터넷에 뿌립니다. 한 번도 미국에 간 적도 없으면서 '우리 부부의 북미 대륙 자동차 횡단기'라는 포스팅을 가짜 블로그 계정에 연재해 여행 상품을 제대로 홍보하기도 했고요, 어그로를 끌면서 거부감 없이 상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기는 '바이럴마케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바이럴마케팅'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책에서 설명하는 바이럴마케팅 수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셀카의 중심에는 탱탱한 가슴이나 잘 빠진 다리가 있지만, 한구석에는 바이럴을 일으켜야 하는 스파클링 와인 병이 교묘하게 배치돼 있다. 이런 사진을 가짜 페이스북 계정에 오려놓고, 밑에는 'OO 오빠 덕에 하얏트 갔던 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잼께 놀았따~~ 초섹시 수영복 입고 갔더니 남자들 눈빛이 아주ㅋㅋㅋ 투자한 보암이 있었쒀~~'와 같은 글을 달아둔다. 그리고 이 포스트를 화면 캡처한 뒤 남자들이 주로 몰리는 사이트에 그 캡처 파일을 올린다. 제목은 '김치년 클라스 좀 보소' 정도가 적당하다. 가만히 놔둬도 불과 하루 이틀이면 이 사진은 중소형 포털 20~30 군데에 퍼지고, 수십만 명이 신제품 스파클링 와인을 보게 된다. 신제품은 하얏트호텔과 잘나가는 남녀의 호화로운 이미지를 공짜로 얻는다.

8쪽



 팀-알렙은 돈만 주면 인터넷을 통해 상대를 저격하는 작업도 서슴없이 합니다. 주로 외모를 트집 잡아 악플로 공격했고, 때로는 근거 없는 모함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퍼부은 댓글 물량공세를 사람들은 쉽게 사회 여론이라고 믿었지요. 피해자 본인조차도 거짓 댓글을 사회적 여론이라 믿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고는 했습니다. 



 가끔 나의 블로그나 브런치 글이 포털 사이트에 오르는 행운을 겪을 경우 조회 수가 급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악플도 함께 달립니다. 하나 정도면 괜찮은데 세 개 이상만 되어도 정신이 어질어질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살면서 만날 일도 없는 누군가의 악플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려고 했지만 나의 뇌는 악플을 내 신변에 대한 큰 위협으로 인식해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악성 댓글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작해 방대한 양으로 인터넷 곳곳에 퍼붓는다고 가정했을 경우 사람 한 명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큰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소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입체적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먼저 3인칭 시점으로 팀-알렙이 어떻게 특정 커뮤니티를 해체시킬 정도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을 뒤에서 전적으로 후원하고 조종하는 세력인 '회장'과 '이철수'도 등장하고요. 팀-알렙의 세 주인공들은 여론 조작을 통해 회장으로부터 큰돈을 받을 때마다 유흥업소에 갑니다. 여자들을 인간이 아닌 성 해소의 도구처럼 대합니다. 그들이 회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마다 방문하는 유흥업소의 급도 높아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메신저의 결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한편 팀-알렙 맴버들이 유흥업소에서 아가씨들을 대하는 태도나 그곳에서의 접대 상황 등이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터넷 미디어와 대중들의 부정적 속성을 보여주는 작품의 메시지와 오직 유흥을 통해 쾌락을 달성하려는 젊은이들의 추악한 모습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요. 책을 빠른 속도로 한 번 더 읽었음에도 그 연관성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여성을 도구로 함부로 대하는 부분에서는 읽기 버거워 하는 분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신문기자인 임상진과 본인의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댓글부대의 진실을 털어놓는 찻탓캇의 인터뷰 대화로 진행됩니다. 찻탓캇의 말을 통해 팀-알렙의 시작을 독자들에게 들려 줍니다. 기업의 열악한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가장 슬픈 약속'이란 영화를 망하게 해달라는 기업의 청탁을 단 세명의 힘으로 현실로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약간의 사실에 거짓을 덮어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영화 스태프들의 근무 여건과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요. 여기에 영화배급사로부터 임금 340만 원을 아직도 받지 못해 생계가 어렵다는 거짓말을 보태 '가장 슬픈 약속'이라는 사회 비판적 영화를 진보 층도 외면하는 비호감 영화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놀랍게도 이 장의 제목은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입니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중략)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바를 고치려 들지 않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 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56쪽



 회장의 수하인 '이철수'는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인터넷 공간의 폐쇄성과 확증편향이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지적합니다. 저 역시 늘 가는 사이트와 커뮤니티가 있기에 이 부분에서 뜨끔했지요.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 정책에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여초 사이트들을 무력화하라는 청탁을 합니다. 



 예쁘고 세련되고 잘나가는 여자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팀-알렙 멤버들은 여초 사이트의 글을 읽으며 분노했고, 진심을 다해 커뮤니티 해체를 위한 전략을 짜고 실행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나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이유가 인정을 받기 위한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네임드는 언제든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 관심을 받을 경우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지요. 팀-알렙은 네티즌들이 칼을 꺼내 마음껏 휘두를 수 있도록 타이밍을 잡고 판을 깔아 주었습니다. 그들끼리 싸움을 붙여 자멸하도록 만들어 게시판을 황폐화시켰고 대규모였던 카페를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회원가입부터 쉽지 않고 규정이 까다로워 폐쇄적인 ◆◆카페는 워낙 단합이 잘되어 회원들끼리 이간질이 쉽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가상의 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카페의 섹스 게시판과 시월드 게시판에서 자극적인 글 몇 개를 화면 캡처해 다른 사이트에 올린 것이지요. 팀-알렙이 만든 범인 색출에 성공한 카페 회원들은 신상을 털어 악플뿐만 아니라 문자와 카톡으로 인신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분노가 꺼질 만하면 다른 사이트에 억울하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려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들은 그 동안 받은 메시지와 악플들을 모두 모아 몇 백 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사이버 명예훼손, 협박, 모욕죄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후 고소를 취하해 주는 조건으로 카페의 비민주적인 부분을 성토하는 글을 올리고 한 달 동안 카페에서 그 어떤 활동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똘똘 뭉쳤던 ◆◆사이트까지 폭파시켰습니다.



© camstejim, 출처 Unsplash



 이후 팀-알렙은 10대 청소년들에게 극우적인 성향과 부모 세대이기도 한 민주화 세대를 비판하는 의식을 심어주는 프로젝트까지 실행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여론을 조작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며 더 큰 권력과 부를 원하게 됩니다. 과연 팀-알렙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뒤에서 그들은 조정했던 회장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임상진 기자는 댓글부대의 정체를 세상에 낱낱이 드러낼 수 있었을까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은 꼭 소설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_^



 이 소설에는 크게 세 부류의 집단이 나옵니다. 먼저 여론을 조작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고자 하는 권력층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들로부터 돈이나 대가를 받아 양심의 가책 없이 거짓된 정보로 여론을 조작하는 무리가 있고요.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와 의견을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마치 세뇌라도 당한 듯 모두 진실로 믿어버리고 누군가를 혐오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대중들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독자인 저 역시 대중이기 때문입니다. '집단착각(토드 로즈)'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불확실한 정황 속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을 따라 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수많은 네티즌들의 댓글을 읽습니다.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대규모로 댓글을 조작하거나 거짓된 정보의 글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도배할 경우 우리는 거짓을 진실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사실과 거짓이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대중들은 진위 여부가 아닌 진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득보다는 선동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소설은 대중의 이런 점을 이용해 어떻게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는지를 자세하고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무거운 소재의 이야기를 사실적이면서 경쾌한 흐름으로 끌고 나가는 작가의 뛰어난 역량으로 단숨에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몰입을 유지하며 재미있게 책을 읽었지만 정작 책을 덮고 난 후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 이상으로 간사하고 악독한 여론 조작이란 음모가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파멸시키고 집단의 목소리를 추악하게 몰고 가는 여론 조작이란 사이버 범죄를 더욱 엄정히 단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아울러 개인적인 노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 정보가 섞여 있다는 사실과 내가 생각하는 다수의 의견이 실제로는 다수의 의견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겠습니다. 세상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진리라고 떠들 때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 또한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집단 착각'이란 책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는데요.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인터넷이란 매체에서 다수라는 횡포로 누군가를 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나의 세상을 다변화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세상이 단 하나라면 그 집단이 말하는 모든 것을 진실이라 믿고 신념처럼 따르게 됩니다. 직장이 전부인 사람에게는 직장 상가가 하는 말이 진리이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단 하나인 사람은 그곳에서 추방당할까봐 전전긍긍해야 합니다.



 세상은 다양하고, 사람은 복잡한 존재입니다. 최근에 인터넷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축구선수 이강인과 배우 한소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공인으로서 그들의 행동은 분명히 비판 받을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죽일 듯이 물어뜯을 정도로 나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고 권력의 오남용은 대중의 시선으로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단편적인 행동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싸잡아 비난하는 행동은 조화롭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가족, 직장, 취미(글쓰기, 독서, 운동, 감사일기, 일본어), 친구, 이웃 등으로 나의 정체성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특정 집단의 선동에 당하지 않고, 더 넓은 시야로 지혜롭게 내 삶과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소설 '댓글부대'는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과 어떻게 해야 개 돼지로 불리는 대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안겨준 책이었습니다. 


댓글부대/장강명/은행나무/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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