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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Apr 25. 2024

학교 지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결심

육아 휴직 중인 아빠의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하는 아침 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이바이


 올해 직장 생활 18년 차에 처음으로 휴직을 하게 된 영천소년입니다. 2024년을 시작하며 다짐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우리 가족의 아침을 즐겁고 평화롭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주말부부 4년 만에 가족과 일상을 함께 하게 된 저로서는 아내와 아이가 각각 출근과 등교를 잘할 수 있도록 내조를 잘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훨씬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서의 처음으로 맞이하는 큰 환경의 변화일 것입니다. 앞으로 최소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할 학교에서 아이가 첫 출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많은 육아 서적에서 부모로서 해야 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침을 잘 보내야 하루가 즐거운 만큼 제가 화를 내거나 고함을 지르는 행동으로 아이의 아침을 망쳐서는 안 되겠지요. 평소 분주한 아침 시간에 예민했던 나로서는 아이 등교 준비를 할 때 온화함과 여유로움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학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할 아이가 아침 밥을 잘 챙겨먹고 기분 좋게 등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전업주부로서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지금까지 유치원 생활을 하는 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아침 시간을 활용했어요. 아이 입장에서 언제나 본인 편이 되어주는 할머니가 계셨기에 피곤할 때는 늦잠도 자고, 비교적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며 예정 시간보다 늦게 등원을 했던 적이 많습니다. 


 저 역시 될 수 있으면 아이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설레고 기쁠까요.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일정 시간 동안 책을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헤드폰을 끼고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요. 아이가 지금 이 순간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 날에 미리 등교 준비를 해 놓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실수가 있더라도 준비물과 가정통신문 등을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 가족의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합니다. 나도 훌륭한 책 속의 부모처럼 자율적으로 아이를 키우며,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천천히 기다려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8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급해지고 살짝 화도 나기 시작합니다.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에 학교에 보내 달라는 담임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떠오릅니다. 


 제가 정한 마지노선은 7시 55분입니다. 그때가 되면 나긋하지만 근엄한 목소리로 책을 읽고 있던 아이에게 말합니다. "이제 7시 55분이 되었네요. 아침 식사하러 오세요." 한 달 정도 등교 준비를 함께 하다 보니 아이도 7시 55분이라는 말을 들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하러 옵니다. 하지만 3월 한 달 동안은 적지 않은 실랑이가 있었어요. "지금 아침밥을 먹으러 오지 않으면 아빠가 준비한 아침 식사는 치울 겁니다.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면 점심시간까지 엄청 배고플 거예요. 네가 아침 식사를 거르고 가면 아빠도 걱정이 되서 기분이 좋지 않아요.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선택일까요?"라는 멘트로 아이를 어르고 달래가며 아침밥을 먹였지요.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의 자발성을 존중해 주고자 합니다. 어느 육아 서적에서도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자발성 또는 자율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로서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자기만의 기준도 있습니다. 가령 나에게는 그것이 식습관입니다. 식사 예절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부모님의 영향 때문입니다. 아이가 밥 먹을 때 돌아다닌다거나 책이나 영상을 보면서 먹는다거나 다른 짓을 할 때마다 평소보다 더 많이 화가 납니다. 식사를 할 때는 가만히 한곳에 앉아 음식과 내 앞의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상식입니다. 아이가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것을 아버지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몇 번의 격한 소통 끝에 아이는 이제 돌아다니지 않고 자리에 앉아 식사에 집중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오늘 아침은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고요. 가끔 등교 시간에 쫓길 경우에는 내가 직접 먹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주도성을 갖추도록 웬만하면 내버려두고 싶었는데요. 역시나 밥을 거르고 학교에 보내는 것은 부모로서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아이도 지각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기에 최대한 빨리 아침 식사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서투른 점이 있어 식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후식까지 늘 챙겨 먹는 아이라 과일도 준비해야 하고요. 식사 후 아이가 양치를 하는 동안 아이가 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 앞에 내어 놓습니다. 옷 입는 거 역시 스스로 입도록 내버려 두지만 학교 등교 시간에 쫓길 때는 옷의 방향 정도는 잡아주는 편입니다.



하굣길에 벌레와 소통하는 아이


 그렇게 모든 등교 준비가 끝이 나면 8시 20분이 됩니다. 8시 반까지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아빠보다 훨씬 더 원칙주의자인 아이도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까지 가는 짧은 길에도 아이의 눈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빠의 마음은 급한데 아이는 세상 곳곳을 구경하고 싶어 합니다. 결국에는 제가 강제로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교문까지 데리고 가게 되더라고요.


 이것 또한 우리 아이가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아빠의 가치관 또는 집착 때문이겠지요. 얼마 전에 아이가 먼저 아빠 없이 혼자 등교하고 싶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부모 손을 잡고 등교하면 1학년인 게 티가 나서 싫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앞도 아닌 문 앞에서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등교하고 싶다는 나의 로망은 한 달 만에 끝이 났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등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발성의 측면에서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키즈 콜 시스템과 안전한 등교를 위해 횡단보도에 배치된 봉사 어르신들이 계시지만 여전히 아이 혼자 학교로 보내기는 살짝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의 독립심과 자발성을 응원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4월부터 문 앞에서 아이를 배웅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밝게 웃으며 학교에 잘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아이를 보내고 난 후에는 거실 창문을 통해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재활용 쓰레기통을 들고 아이 뒤를 살금살금 밟아보기도 합니다. 역시나 자유로운 영혼인 아이는 등굣길부터 바쁘더라고요. 학교까지 가는 길목에 아이의 눈길을 끄는 것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는 걸음을 멈춥니다. 그것이 친구일 때도 있고, 벌레일 때도 있고, 나뭇가지일 때도 있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학교 앞 문구사도 꼭 기웃거립니다. 


 그러다 보니 3월 한 달 동안 절반 가까이를 지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정한 등교 시간인 8시 30분이 넘어서 등하교 안심 알리미인 키즈 콜에서 아이가 잘 등원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면 지각입니다. 물론 지각을 하더라도 2~3분 정도 늦게 학교에 도착하는 편인데요, 사실 10초 늦게 학교에 도착했더라도 지각은 지각입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아이를 평소보다 더 일찍 깨우라고 조언해주고 싶은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올해만큼은 아이가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싶습니다. 물론 학교 규칙을 준수하는 능력은 민주시민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저 역시 담임으로서 학생들이 제시간보다 늦게 학교에 올 때마다 화도 나고 함께 안타까워했습니다. 작년에는 친구를 기다리느라 늦었다는 학생의 말에 친구를 버리고 학교에 시간 맞춰 왔어야 했다고 다그치기도 했고요, 아파서 늦었다는 말에 고등학생이 몸 관리를 못하고 아픈 것은 죄라고 못되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열정이 가득했던 총각 시절에는 지각에 대한 벌로 늦은 시간까지 학생을 교무실 내 옆자리에 앉혀 책을 읽히기도 했습니다. 


 학부모가 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담임교사가 아닌 아빠로서 제 가치관을 다시 정립할 때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학교라는 곳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지 않도록 아침 시간에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기로 했습니다. 또한 낯선 곳에서 새롭게 일상을 출발한 아이가 충분히 잠을 자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결국 아이에게 아침 등교 시간의 여유로움과 충분한 수면을 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학교에서 정한 등교 시간인 8시 30분보다는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하는 것은 감내하자고 아빠로서 제 자신을 설득한 셈입니다. 조금만 더 아이를 다그치고 호통을 치면 충분히 30분 이전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루의 시작부터 아이에게 저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직장인이었다면 저도 출근을 해야 하니 아침이 전쟁이었을 것입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휴직을 했는데 아침부터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거나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면서까지 학교에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을 제일 우선으로 두고 어떻게든 8시 30분까지 아이가 교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어느 정도는 아이가 여유를 갖고 아침 시간을 보내고 등굣길을 어린이답게 즐길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준을 분명히 하기로 했습니다. 아이 육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 양육자가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의 자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아이를 기다려준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습관을 갖출 때까지 아빠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물론 여유롭게 아침을 시작하면서도 제 시간에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조금씩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맞춰갈 필요는 있습니다.


 아이의 자발성을 지켜준다는 의미로 모든 것을 기다려줄 수는 없습니다. 식사할 때는 한자리에 앉아 밥에 집중해야 한다, 식사 후에는 꼭 양치를 해야 한다, 바깥 활동 후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손부터 씻어야 한다 등의 기본적인 생활 습관은 아이의 기분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어느 정도 강제성을 발휘해 실천하도록 지도할 것입니다. 아이가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거나, 식사 후에 양치를 하지 않거나, 집에 들어왔는데 손부터 씻지 않으면 아빠인 내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내고, 아이에게 화를 낸 스스로를 질책하고, 자책의 결과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족을 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대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맡겨둡니다. 식습관과 위생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안전에 위배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 또한 부모가 개입해야 하고요.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자 합니다. 아이가 집에서 나서는 시간은 8시 20분으로 꼭 지키되 아이가 학교까지 가는 길은 아이에게 맡겨두려고 해요. 그것까지 제가 통제할 수는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되는 것이니깐요.


 부모로서 저는 아이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아빠로서 제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저는 저의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의 자발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무한정의 자유를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내가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키우겠다는 욕심으로 매 순간 다그칠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아이의 자발성을 위해 자유를 주며 그가 성장하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기다릴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부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습관에 대해서는 강제성을 두고 엄하게 지도할 것입니다.


 한 달 동안 아이와 일상을 함께하며 육아에 정답이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와의 일상에서 저만의 원칙을 세우는 것은 무척 중요하더라고요. 동시에 부모가 세운 그 원칙이 아이의 성장과 성숙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항상 고민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일단 한 학기 동안 등교 준비를 해야 하는 마지노선 시간대까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 학교 가는 길도 아빠의 발걸음이 아닌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 자유를 누리며 세상을 구경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볼 것이고요.


 그래도 괜찮다고, 아이가 잘 성장할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초보 학부모인 저에게 지금 잘하고 있다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격려를 하고 싶어 이렇게 우리 부자의 아침 시간대를 글로 남겨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부모로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자책하기보다는 정답이 없는 육아의 세계에서 나의 방식이 최선이라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좋은 육아를 하고 있는 것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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