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역 역시 코로나 감염자 급증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졌다. 각종 모임은 취소되었고, 한 끼 식사를 하더라도 외식보다는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사람과의 만남이 또다시 단절되자 속이 상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 대구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비 온다는 핑계로 집에서 김치전을 구워서 막걸리 한잔하자는 친구의 유혹도 물리치고, 변실모 책수다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무려 2시간 반 동안 모니터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심지어 멤버들의 주옥 같은 말씀을 놓칠까봐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2시간 30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날의 모임은 정말 좋았고, 감사했다.
어제 독서모임에서 다룬 책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다. 이 책은 출판사의 홍보 전략과 참신한 제목, 그리고 퇴사가 유행이었던 2010년대 후반의 시대 분위기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맞아떨어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원래 삐딱한 성향을 지니고 있던 나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책 제목을 보고 정답만 요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해 퇴사를 했다는 뻔한 내용일 거라 예상했다. 항상 학생들에게 작은 일이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실패 속에서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고 그렇게 살아왔던 내 직업의 특성상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 모임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두 번에 걸쳐 책을 읽었다. 각을 잡고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 호흡으로 읽기보다는,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한 챕터씩 읽고는 했다.
최근 근황과 함께 이 책에 대한 총평에 대한 이야기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이후 각자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 후 기억에 남는 확실한 것은 이 책은 호불호가 강했다는 것이다. 강한 어조로 책의 내용과 저자의 성향을 비판하는 분들도 다수 계셨다. 하마터면 이 책을 돈 주고 살 뻔했다 라고 총평을 내리시는 분도 있으셨다.
나의 경우에도 책을 직접 구입하지 않고 빌려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저자의 가치관에 반발한 것은 아니다. 책 구석구석에서 충분히 삶에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물론 작가가 오랜 연구와 깊은 통찰을 통해 세상에 없는 기가 막힌 작품을 내놓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40년 동안 인생을 살아오며 본인의 삶에서 느낀 바들을 자기만의 시각과 독특한 유머 코드로 잘 읽히게 글을 썼다고 생각했다.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의 생각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보다 월세로 살아가며 자본주의 사회에 대놓고 맞서겠다는 저자의 당찬 포부를 읽으며 '어이구! 이 답답아~'라고 속으로 타박하기도 했다. 반면에 남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만의 개성을 찾아가자는 그의 수염 전략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 삶에 대해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진정한 노력도 나를 배신할 수 있다
이 책의 첫 장을 읽으며 2001년 3월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는 학과 후배들에게 마음껏 사랑을 주고 있던 2학년 선배였다. 01학번 후배 중에 나와 유머 코드가 맞아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가 있었다. 후배와 집 방향이 같아서 술자리 모임 후에 동네까지 같이 걸어갔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후배는 고3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1년 동안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능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자신의 노력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소회를 털어놓았다. 지금도 공감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스무 살의 나는 인간보다 금수에 가까웠기에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기보다 반박하기 바빴다. 본인의 기대치보다 낮은 수능 성적을 받은 이유는 너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후배 역시 바로 내 말을 맞받아쳤다. 본인은 자신의 역량 안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네가 진정으로 노력을 했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왔어야 했다며 그녀의 노력을 폄하했다. 그리고 같은 스무 살 주제에 꼰대처럼 덧붙였다. 진정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보니 그녀에 대한 미안함으로 낯이 뜨거워진다.
반면에 책의 첫 챕터 제목은 '노력이 우리를 배신할 때'이다. 스무 살의 나는 몰랐다. 생각보다 자주 노력이 배신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년 전에 즐겨 했던 골프가 그러했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겠다, 오늘 기록을 세워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드라이브나 아이언을 잡으면 어김없이 OB가 나거나 뒷땅을 쳤다. 반면에 오늘은 즐기는 마음, 동료들을 배려하는 마음, 함께 라운딩 하는 분들께 즐거움을 드려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을 때 오히려 더 좋은 기록을 세웠다. 매일 올리는 블로그 글도 마찬가지다.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글이 기대보다 조회 수나 공감 수가 낮은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대구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가볍게 작성한 글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 전에 나름 조회수 대박을 터뜨린 '40대 아저씨, BTS 팬이 되다'라는 글은 천안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초고를 작성했다. (물론 이 글은 나의 성의와 상관 없이 아미 팬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 성의 없이 대충 한 일은 직장 상사에게 칭찬을 받거나,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혹평과 함께 상사에게 까이는 경험을 웬만한 직장인이라면 한 번 정도 겪어 봤을 것이다.
차라리 저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과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만큼'의 보상을 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은 그렇지 않다. 이만큼 노력을 한다고 해서 나의 마음을 짝사랑하는 그녀가 알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교사로서 노력한 만큼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래도 인생이 흥미로운 것은 때로는 작은 노력에도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은 내 삶의 해답이 되지는 않았지만, 큰 위로가 되었다. 오랜 기간 나의 좌우명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나는 좌절의 순간마다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괴롭혀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고 싶다. 진정한 노력도 때로는 내 삶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노력의 과정을 즐겨야한다.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면 "오! 재수"라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나쁜 결과가 나왔더라도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저자는 왜 열심히 살지 말자고 할까? 그럼 열심히 살지 말자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은 저술했을까? 사실 책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능동적 행위이다. 나의 경우 브런치에 글 한 편을 쓰는데도 큰 용기와 도전정신을 필요로 한다. 하물며 책 한 권을 써낸 저자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목표로 했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무려 4수를 했다. 같은 시험을 4번이나 준비했고 결국 목표를 이뤄낸 그의 20대 초반은 누가 봐도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졸업 이후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낼 수 있었다.
그는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노력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좇아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남들이 좋다는 명문대, 남들이 인정해주는 직장 등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사회가 40대에 요구하는 것들을 가지지 못한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이 나이 먹도록 나만의 가치와 방향을 지니지 않았음이 더욱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사실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정답 사회다. 따지고 보면 명문대학교 진학과 좋은 회사 취직을 위해 초중고 12년과 대학 생활 4년 그리고 그 밖의 군대를 가고 스펙을 쌓는 시간들을 포함해 대략 20년이란 시간을 회사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청년 실업의 어려움을 뚫고 어렵게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기업에 취업한 후에는 과도한 업무와 정리해고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자의든 타의든 회사로부터 떠나게 될 경우 자영업으로 남은 삶의 밥벌이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자영업 역시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퇴직 후 대부분이 치킨집과 카페를 하기 위해 기웃거린다고 한다. 간혹 정답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항을 하면 부모와 학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래서 연예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는 스토리가 많이 등장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정답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험난한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믿는 그 정답이 자식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불효자가 되어야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이다.
얼마 전에 본 예능 프로인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토크쇼에 월드 스타 방탄소년단이 출연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은 본인들의 인생 명언을 소개했다. 멤버 중 한 명인 뷔의 아버지께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바로 경상도 사투리로 "그므시라꼬"라는 말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그렇게 집착하느냐, 그게 무엇이라고 그렇게까지 하느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연예인을 해야만 하는 외모와 끼를 타고난 뷔도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겪어야 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한계치에 도달한 그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고 가수의 꿈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묵묵히 들어준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므시라꼬. 다른 일 찾아보면 되지. 힘들면 때려 치우고, 거제 내려온나. 아빠랑 다른 일 알아보자."
세상에는 한 가지 길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길이 있다. 누군가에게 정답인 길이 나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꼭 무엇이 되어야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힘을 빼고 아무거나 되어도 괜찮다. 다만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해 주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마음을 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나를 주변 사람들과 비교를 하게 만들면서 없던 욕망도 만들어낸다. 그래서 지금 내가 지닌 욕망이 정말 나의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흘리고 있는 땀과 눈물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 내 나이 또래가 그랜저 급 차를 타는 것을 보고 나도 차를 바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말을 기억하라. 다른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을 보고 압박감을 느낀다면 이 말을 기억하라. 누군가 코인 투자를 통해 큰 수익을 거두었다는 자랑을 듣고 배가 아파, 인터넷에 '코인 투자 방법'이란 단어를 검색하기 전에 이 말을 기억하라. "그므시라꼬"
당신은 온전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돌아가며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지나갔다. 독서 모임의 진행을 맡은 온달 님께서 새로운 질문 하나로 화두를 던지셨다.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만의 가치와 방향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 같으니 각자 자기 삶의 기준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몇 초 간의 침묵이 흘렀다. 평소에 자기 삶의 기준과 가치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을 했더라도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몇 년 전 나는 직장에서 성과급 B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전 날 저녁 학교로부터 '당신의 성과급은 B입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화가 났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들의 수업과 생활지도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교에서 나보다 더 자세하게 생활기록부를 작성해 주는 교사는 없다고 늘 자부했다. 하지만 내가 가치 있다고 여겨 열심히 하는 것은 정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과급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성과급 기준에 맞춰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았다.
다음 날 무작정 교장실로 내려가 교장선생님께 성과급 B를 받아서 직장 생활에 의욕이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사실 교장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교직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성과급 제도를 만든 더 높은 분들의 아이디어와 신자유주의란 세상의 흐름 탓이지. 교장선생님께서는 내가 B급 교사가 아니라고 쩔쩔매며 나를 다독거려주셨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노력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성과급 S를 받기 위해 성과급 기준에 맞춰 최선을 다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의 방향에 맞춰 열심히 살 것인지 말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맞춰 살겠다는 것이다.
그럼 내 삶의 방향과 가치는 무엇일까. 요즘 나는 학교에서 2학기 때 읽힐 학생들의 책을 선정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그리고 한 개의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단원 주제와 관련된 1학년 전체 학생의 글을 받아 읽고 간단하게 소감을 적어준다. 현재로서는 이 두 가지 일이 가장 재미있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흥미가 있으며 생각할 거리도 줄 수 있는 소설을 찾고, 아이들의 글에서 좋았던 점을 다시 한번 내 언어로 적어주는 일을 통해 나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들의 삶과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도 있다. 재미, 성장, 이로움을 동시에 갖추었기에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무척 행복했다.
한편 이번 주 월요일은 꽤 힘든 하루였다. 방과후를 포함해 총 6시간의 수업을 해야 했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느라 공강 시간마다 나의 뇌를 풀가동해야 했다. 7시 즈음 퇴근을 해서 집에 도착한 나는 무려 새벽 1시까지 블로그에 글을 썼다. 바로 나의 블로그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NBA 농구 관련 글이었다. 지난주에 '니콜라 요키치'라는 세르비아 출신의 선수가 2020~2021시즌 MVP를 수상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에 MVP인 그의 팀이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저녁식사를 하며 그 경기 하이라이트를 시청했다. 리그 최고의 선수가 속해 있는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년 동안의 MVP 수상자의 우승 여부를 분석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BASKETBALL REFERENCE' 사이트 창을 여러 개 띄어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5시간 동안 집중했고 몰입했으며 그 과정은 매우 즐거웠다.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NBA 농구 역사를 이야기 식으로 작성하는 과정은 나의 글쓰기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처럼 NBA 마니아들에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의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집에서 5시간 동안 내가 쓰고 싶은 주제의 글을 쓰면서 나는 무척 행복했다.
열심히 살 뻔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고, 놀 것이고, 쉴 것이고, 사랑할 것이고, 술도 마실 것이고, 게으름도 피워볼 것이다. 다만 나의 가치와 방향대로 열심히 살 것이다. 그럼 나의 방향과 가치는 무엇이냐. 앞서 언급했지만 그 일이 일단 재미있어야 하고,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며, 타인과 세상에 이로워야 한다. 나는 그런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열심히 살고 싶다. 어차피 우리의 긴 인생에서 특별하고 엄청난 일이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의 삶은 시시하고 소소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 삶을 채운 시시하고 소소한 일들로부터 나의 방향과 가치를 찾아야 한다.
탄생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우리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애써 만들어 놓은 계획들이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또한 희박한 확률이라고 믿고 있지만 당장 오늘이라도 죽음이 나를 찾아올 수 있는 게 인생이다. 우리의 현실이 허무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는가? 그래서 우리는 더욱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한다. 나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놀고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토론의 막바지에서 라라송 님이 토론 멤버들 모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지금 온전히 당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나는 그 질문에 자신감을 갖고 그러하다고 답했다.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겠지만 월화수목금토일 모든 요일이 설레고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등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날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일요일 저녁에 다음 주중은 어떤 일들로 나의 24시간을 채울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 또한 금요일 퇴근 후 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주말에 가족과 무엇을 할지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요일이든 날씨가 어떻든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한다.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나의 삶을 감사하는 태도로 바라본다. 감사를 바탕으로 나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을 선물로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온전히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잘 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본다.
더 이상 나는 환상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비교하고 싶지 않다. 인생의 절반을 내가 기대하는 나와 현실의 나를 비교하며 괴로워했다면, 남은 절반은 좀 더 행복해지고 싶다. 비록 남들에게 정신 승리라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며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아왔고, 큰 세속적인 성공 없이 우연히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내 인생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