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짜장면

짜장면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

by 영천소년


이번 주는 '보지 못한 폭포'라는 수필 작품으로 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본문 내용이 교과서 두 페이지가 전부일만큼 간단한 작품이다. 조선 시대 학자였던 김창협이란 분께서 동네 근처 기이하다는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동생들과 함께 계곡에 나들이를 갔다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고전 수필이다. 작품의 끝에는 1651년 몇 월 며칠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학생들에게 저자가 이 수필을 쓰면서 과연 400년 후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글이 수업 교재로 쓰일 거라는 것을 예상했을까 물어보았다. 대부분 학생들이 그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에게 기록의 쓸모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꼭 위대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않더라도 일상의 소소한 경험도 기록으로 남기는 순간 역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도 수필 속 작가처럼 매일 일상에서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간다.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최근 자신에게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재미난 이야기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심지어 직장 상사를 그렇게 험담했음에도 많은 것들이 잊혀 버린다. (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나의 지인은 훗날 본인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세하게 본인이 싫어하는 직장 상사의 일상 속 실수들을 나노 단위로 수첩에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다양하게 표현해 보고 알아갈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나의 블로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블로그를 통해 긴 호흡의 글로 하루를 기록하기를 권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아이들이 선호하는 인스타그램을 추천했다. 하루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사진 한 장으로 남기고 반드시 그 순간 자신의 상태나 감정 또는 생각을 꼭 한 문장으로 함께 표현하기를 권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있었던 일과 감정 그리고 깨달음 등을 꾸준히 기록으로 남겨야 나의 삶이 잊히지 않고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요즘 나는 블로그에 들어와서 1년 전 글을 읽는 재미에 빠졌다. 블로그 앱에 접속하면 최상단에 1년 전 내가 쓴 글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안내가 되어 있다. 작년 4월 말부터 블로그를 시작한 나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작성했기 때문에 매일 과거의 내가 썼던 글을 읽을 수 있다. 작년 이맘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록하는 삶은 내 경험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생각하는 삶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기록을 통해 현재의 성장 정도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시답잖은 나의 점심 식사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남들 눈에는 뭘 이런 것까지 기록으로 남기느냐 싶겠지만 오늘 점심은 나에게 무척 감동이었던 순간이었다.



최근 나는 '허삼관 매혈기'라는 중국 소설을 읽었다. 꽤 유명한 소설이지만, 최근 동료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소설을 짧게 소개하자면, 단란한 가정에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아가며 살아가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 한편 이 소설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음식이었다. 주인공인 허삼관은 피를 팔 때마다 꼭 돼지고기 간 볶음과 따뜻한 황주를 먹는다. 옴니버스식 구성을 지닌 이 소설에서 그가 돼지고기 간 볶음과 황주를 마시면 하나의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매혈 후 기력 보충을 위해 허삼관이 먹는 그 음식들뿐만 아니라 중국 인민들이 즐겨 먹는 다른 음식에 대한 묘사 역시 세밀하다. 그래서 피를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의 중국 인민들 이야기를 유쾌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받아들이는 도중에도 침이 잔뜩 고인 적이 많았다. 게다가 예전에 중국에 거주하면서 돼지고기 간 볶음과 황주를 비롯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 음식들을 먹어본 경험이 있기에 그 맛도 익히 알고 있었다. 맛을 익히 알기에 더욱 중국 음식이 생각났고 소설을 읽으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현재 있는 곳은 한국이다. 이 소설을 중국에 살 때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중국 주막에서 허삼관처럼 탁자를 탁탁 치며 "여기 돼지 간볶음 한 접시 하고 황주 두 냥 가져오라고. 황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말이야."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황주와 돼지고기 간 볶음 요리를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허삼관이 전국적 기근으로 배고파하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 장면을 자세히 묘사해 가족과 독자들의 입에 침이 고이게 했던 마라 생선찜과 홍샤오로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혹시나 싶어 대구에 전통 중국 요리 식당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검색을 하다 보니 한국 스타일의 중식 요리에 다시 눈이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은 야심한 밤, 나의 식욕을 폭발시켰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란 예능 영상의 일부이다. 유재석 님과 조세호 님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 영상이다. 정말 국민 MC 유재석은 못하는 게 없다. 먹방까지 이렇게 잘하다니. 혹시 다이어트 중이라면 아래 영상은 절대 클릭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바로 어제저녁 6시 이후로 금식하겠다고 선언한 사람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이 영상을 끝까지 봤지만, 늦은 시간에 짜장면을 먹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어제는 오후 6시 이후 금식뿐만 아니라 저녁 식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첫날이니깐.^^)



https://youtu.be/gKjCK1yA15o






오늘 새벽 눈을 뜨자마자 짜장면이 생각났다. 어제 영상에서 유재석 님이 보여주었던 화려한 면치기 액션과 후루룩 짭짭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새벽부터 문을 여는 중국집은 없으니 평소 루틴대로 블로그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경제뉴스 요약 및 공부를 한 다음에 출퇴근 시간에 공부할 영어 책의 한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었다. 출근길에 한 문장씩 외우면서 매일 영어회화 한 챕터를 외우는 것이 소소한 나의 하루 목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은 첫 문장을 보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계속 짜장면 생각을 했는데 영어회화 책에도 짜장면이 나온 것이다. 심지어 어제 영어회화 주제는 '원래대로 돌아가야 해"였다. 지난 2개월 동안 3킬로그램이나 살이 찐 인물이 야식을 먹지 않겠다는 내용의 대화였다. 아침에 그 대화를 보고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를 다진 나는 어제 날짜로 '중년 남자의 다이어트 결심'이라는 제목의 글을 포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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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부할 영어회화 문장에 짜장면이 들어가 있다니. 이것은 오늘 나는 꼭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계시였다. 오늘 퇴근 후에 짜장면을 먹으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방과후수업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오늘 6시 40분까지 수업이 있는 것이다. 불과 하루 전 날인 어제 나는 블로그를 통해 온 세상에 외쳤다. 앞으로 저녁 6시 이후로는 금식하겠다고 말이다. 나의 다짐을 하루 만에 무참히 깨뜨릴 수는 없다. 게다가 1주일에 한 번은 음주를 허용하기로 했는데 이미 술 약속은 다른 날에 잡혀 있었다. 짜장면은 먹고 싶고, 나 스스로 고심해서 만든 다이어트 규칙은 지켜야겠고, 정말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 순간 묘안이 하나 생각이 났다. 오늘 하루만 학교 급식을 먹는 대신에 밖에 나가서 내가 먹고 싶은 짜장면을 먹는 것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에는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는 나에게 그 정도 선물은 주고 싶었다. 그런데 명분이 부족했다. 특히 나 같은 짠돌이에게 이미 돈을 지불한 학교급식을 거르고 새로운 비용을 추가해야 할 바깥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오늘 점심 식사로 먹고 싶은 것을 먹자는 자아와 학교 급식도 맛있는데 왜 굳이 돈을 추가로 지불하며 외식을 하냐고 탓을 하는 또 다른 자아가 서로 팽팽하게 겨루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작은 사건이 하나 더 벌어졌다. 실력이 부족해 주식 단타를 하지 않는 내가 거래량을 믿고 '대한전선'이라는 종목을 매수한 것이다. 10시 즈음에 이미 전날에 비해 5%나 주가가 상승한 상태였지만, 거래량이 이미 전날의 90%가 넘은 상태였다. 이 정도의 거래량이면 오후까지도 충분히 더 상승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 200만 원 정도 예수금이 있었기에 바로 현재 가격에 매수를 걸었고 거래를 성사시켰다. 잘 모르는 종목이었기에 큰 욕심내지 말고 딱 5%만 먹고 나오자고 다짐했다. 매수 후 바로 5% 수익 구간에 매도를 걸어 놓았다. 20분 정도 지났나? 오늘 하루 얼마나 상승 폭이 컸는지 매도가 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대한전선이 이후 얼마나 더 상승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운 좋게 20분 만에 10만 원의 수익을 낸 나는 하늘이 나에게 짜장면 값을 내려주었다고 받아들였다. 이 날의 작은 수익은 뼛속 깊이 짠돌이인 나에게 재지 말고 그냥 짜장면 먹어 이 자식아 라는 누군가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직장 근처 중국집으로 향했다. 혼자서라도 갈 생각이었지만, 마침 평소 식사 후 함께 산책을 하는 C형에게 바깥 음식을 먹자고 제안했더니 그 역시 받아들였다. 담임교사라 급식 지도를 해야 하는 C형을 기다린 후에 함께 중국집으로 달려갔다. 예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 한밀식당이라는 곳이다. 형에게 내가 왜 오늘 짜장면을 꼭 먹어야 하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차돌박이 짜장면'을 주문했다. 오늘은 하늘이 짜장면 값을 내려준 날이기 때문에 일반 짜장면이 아닌 고급 짜장면을 먹자고 했다.



탕수육과 군만두 중에는 고민하다가 점심때부터 탕수육은 과하다 싶어 군만두를 주문했다. 짜장면은 느끼하지 않았고 담백했고 적당히 달았으며 면발도 탱탱했다. 짜장 소스와 차돌박이 고기와의 조화도 훌륭했다. 나는 어제 영상에서 봤던 유재석 님을 떠올리며 화려하게 면치기를 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절반은 그냥 먹었고, 나머지 절반은 고춧가루를 뿌려 매콤하게 해서 먹었다. 너무 만족스럽고 맛있는 점심 식사였다. 앞으로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는 그냥 따지지 말고 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심지어 C형에게 앞으로 나에게 짜장면과 짬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짜장면이라고 확신의 어투로 말하기까지 했을 만큼 오늘의 짜장면은 감동적인 맛이었다. (솔직히 이 집 군만두는 별로였다. 이 집에 모든 메뉴가 다 맛있는데 군만두는 비추다. 딱 봐도 수제 만두가 아니라 시중에 파는 만두다. 그래도 겉바속촉 하게 잘 구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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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단숨에 짜장면 한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나는 짜장면을 좋아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식 모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간혹 좋은 성적을 받아온 날이면 아버지께서는 기분이 좋아지셔서 오늘은 집에서 밥 먹지 말고 외식하자며 중국집에 가고는 했다. 반에서 1등이라도 하는 날이면 탕수육까지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바깥 음식을 사주시지를 않았기에 한 번씩 먹는 짜장면이 그리도 맛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부모님께 상처를 받은 내가 혼자 가출한 적이 있다. 무작정 외할머니가 계신 사천 쪽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초등학생 주제에 꽤 오랜 시간을 걸어서 외갓집에 도착했다. 당시 아버지께서 내가 외갓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데리러 사천까지 오셨다. 그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사주신 눈물의 짜장면도 정말 맛있었다.



한 번은 초등학교 시절 내가 너무 짜장면이 먹고 싶어 노래를 부르니깐 엄마가 집에서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짜장면은 중국집에서 맛볼 수 있는 그 맛이 아니었다. 너무 건강한 국수 면발 위에 자극적이지 않은 춘장 소스가 들어간 짜장면은 나를 실망시켰다. 이후로 엄마가 짜장면을 만들어 준다고 하면 한사코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짜장면에 얽힌 행복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 아들에게는 짜장면과 관련된 추억이 없다. 오늘 너무 맛있게 식사를 하다 보니 천안에 있는 아내와 아들 생각이 났다. 올해 5살인 아들은 집에서 만든 건강한 짜장면만 먹어보았다. (국수 소면과 유아용 춘장으로 만든 건강한 짜장면이다.) 나는 늘 아내에게 말한다. 아들 인생의 첫 중국집 짜장면은 반드시 아빠인 내가 사주겠다고 말이다. 짜장면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들의 표정을 어서 빨리 보고 싶다. 분명히 아들은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었다니 라며 감탄을 하며 먹을 것이다. 때로는 이 맛있는 것을 그동안 자기들끼리만 먹었다며 배신감과 원망 어린 눈초리로 아빠와 엄마를 쳐다볼 것이다. 정신없이 입 주변에 짜장을 묻혀 가며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아이의 주 양육자인 아내가 언젠가 아들의 중국식 짜장면 시식을 허락하면 바로 아이를 데리고 중국집부터 갈 것이다. 그리고 짜장면을 정신없이 먹고 있을 아이에게 말할 것이다.



"진헌아~ 오늘이 니 인생의 첫 짜장면이다. 오늘은 아빠와 같이 짜장면을 먹지만, 앞으로 네가 만날 많은 사람들과 이 짜장면을 함께 먹을 거다. 우리 아들이 앞으로 누구와 이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지 많이 기대가 되는구나.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급적 남자보다는 여자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참! 그리고 짜장면은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들면 참지 말고 바로 먹어야 한단다. 안 그러면 나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짜장면이랑 연결되더라고. 아빠가 겪어 봐서 알아. 혹시 짜장면을 먹을 명분이나 돈이 없으면 언제든지 아빠에게 말하거라. 아빠는 짜장면이라면 언제든지 스탠 바이니깐. 게다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너라면 바로 콜이지."






https://blog.naver.com/kukgyo/222111616042


https://blog.naver.com/kukgyo/222093597381 9월 19일에 '하승진이 뭐라고'라는 글을 올린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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