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1년 동안 매일 글 한 편씩을 포스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독자들의 존재였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글을 쓸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제 독자들 중에는 공식적으로 제 글을 읽고 응원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글쓰기 사부이신 '똘똘한 온달(최호진 작가)' 님입니다. 어느덧 온달 님이 주최하는 글쓰기 모임의 최장수 멤버가 되었습니다. 온달 님은 저의 글을 정성껏 읽어주시고, 좋았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십니다. 사실 민감한 사항의 주제가 아닌 이상 제 블로그에 들어와 답글까지 남겨주시는 분들은 대체로 좋은 말씀만 하십니다. 하지만 온달 님의 피드백에는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지적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만, 감사하게도 함께 하는 구성원들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쓴소리도 하나 이상 꼭 해주십니다.
지난달 글쓰기 모임에서는 이런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기가 상당히 민감하고 조심스럽습니다. 근데 영천소년 님의 글을 오랫동안 보다 보니 글에서 가부장적 성향이 있음을 자주 느꼈어요. 예를 들어 '부부 내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시고요, 바깥 일과 집안일에 대한 경계를 다소 엄격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부장적인 모습이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처음에 그 피드백을 받고 당황스러웠습니다.오히려 그동안 글쓰기를 통해 아내의 입장을 더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다고생각했거든요. 또한 제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글에는 저의 부정적인 모습을 숨기려고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 글에서 가부장적 성향이 드러난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비교적 평등한 집안에서 성장해 왔기에 스스로가 가부장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적게라도 집안일을 하셨고, 저와 동생 역시 수저를 놓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의 부엌일 정도는 스스럼없이 해내며 자라왔습니다. 결혼 전부터 집안일은 아내를 돕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아내와 함께 해야 할 남편의 일이라고 장모님께 분명하게밝혔고요. 나랑 결혼하면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퇴근 후에는 설거지와 빨래뿐만 아니라 요리까지 제가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 마디로 스스로를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남자라고 자부했지요. 실제로 동료들로부터 좋은 남편이라는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제가 남긴 글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겠죠. 가장 무서운 것이 의도하지 않고 남긴 표현에서 저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솔직하게 저에게 민감한 이야기를 해주신 온달 님께 감사했습니다. 온달 님 아니었으면 계속해서 착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왜 아내는 나처럼 괜찮은 남편을 인정해주지 않을까 하며 말이죠. 그래서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의 어떤 점이 가부장적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페미니즘 관련 책을 추천받다
그러자 온달 님은 저에게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책이라며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온달 님께는 좋은 책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솔직히 제목을 듣고 거부감이 생겨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때문이겠죠. 몇 년 전 아내와 동네 산책을 하다가 동사무소에서 '엄마들을 위한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강연을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광고를 보고 저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양성 평등의 껍데기를 쓴 '남성 혐오, 여성 우월'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인식했기에 플래카드를 보고 화가 났습니다. 왜 자꾸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통해 남녀 성별로 편을 갈라서 싸우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아내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죠. 하지만 진짜 속내는 달랐습니다. 지금도 퇴근 후 육아 및 가사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혹시라도 아내가 페미니즘 교육을 받게 되면 앞으로더 괴로워지겠구나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임에도 여성의 편에 서는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이 얄밉게 느껴졌습니다.도서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30~40대 여성의 입맛에 딱 맞는 제목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책 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을 느꼈지만 제가 이 책을 집어 든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아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고에서 근무하는 교사로서 우리 학생들이 여성으로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들에게 공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과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만, 아내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늘 서로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불만이 쌓여갔죠. 특히 진솔하게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실망감만 더 커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원인은 저에게 있었죠. 아내에게서 엄마가 했던 희생을 은근히 바랐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고생했던 엄마의 수고로움에 마음 아파했으면서, 왜 아내가 엄마처럼 살아주기를 바랐을까요? 솔직히 예전 우리 어머니 시대보다 훨씬 나아졌음에도 그 시대 변화를 당연히 받아들였던 그녀에게 화가 났던 듯합니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녀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죠. '페미니즘'에 대한 책 한 권 안 읽은 주제에 함부로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작 해야 페미니즘과 관련된 저의 가치관은 언론의 기사나 댓글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니깐요. 남성 위주의 마초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해 온 저에게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책 읽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릇된 '남자다움'이란 틀에서 산다는 것
한 권의 책이 저를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남편, 좋은 선생님,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것은 저를 이전보다 훨씬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1980년대에 경상북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줄곧 성장을 해 왔습니다. 비단 경상도 출신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학교, 군대, 언론 등의 영향으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남자들이 많습니다. '남자다움'이란 프레임 안에서 어색함과 고통을 느꼈던 저자와 달리 저는 그 프레임 안에 나름 적응을 잘해 제가 균형 잡힌 시선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못 느끼며 살아온 것이죠.
책을 읽으며 저의 몇몇 과거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당시 20대였던 젊은 여자 선생님께 영어를 배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수업 준비를 끝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체벌이 당연했던 시기였기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음에도 수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학생들은 매타작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필 영어 수업 전 쉬는 시간에 배가 아팠던 저는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10분만으로 저의 배변 활동을 해결하기는 힘겨웠죠. 그럼에도 저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용무를 급히 마무리한 후 전속력으로 교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매타작이었죠. 저에게 왜 늦게 들어왔냐고 사정을 물어봐주지 않으신 선생님이 야속했습니다. 맞고 난 후 제 자리로 들어가는 길에 저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아이! ㅅㅂ"이라고 욕을 해버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너 뭐라고 했냐며 소리를 질렀고, 저는 차마 "ㅅㅂ"이란 소리는 못 하고 "아이씨"라고 말했다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의 말을 들은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예상 밖의 상황에 저와 반 친구들은 당황했습니다. 잠시 후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학생주임이자 체육 선생님이 몽둥이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감히 선생님께 욕을 하냐며 영어 선생님을 대신해 사정없이 저를 때리셨죠. 남자였던 체육 선생님께는 부당한 폭력을 당하면서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체육 선생님께 저를 넘긴 영어 선생님을 원망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사건 역시 성차별이자 남성 권력의 발현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남자 선생님께 과연 비속어를 쓸 수 있었을까요? 여자 선생님께 맞은 것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남자 선생님께는 맞아도 분하지 않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친구들 역시 남자 선생님께는 찍소리도 못하다가, 여자 선생님께는 한 번씩 대들고는 했습니다. 이 또한 어렸을 때부터 내재되어 왔던 여성을 만만하게 바라보는 의식이 깔려 있었다고 봅니다.
사실 선생님께 비속어를 쓴 저도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일주일에 영어 수업은 어찌나 많은지 선생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올라와 얼굴을 들기 힘들었습니다. 왜 당시에 그런 행동을 했을까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나름 품행이 방정한 모범생이었거든요. 돌이켜보면 같은 수컷 무리들 사이에서 센 척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혼자 맞았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상황에 맞지 않는 거친 언어를 사용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센 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학교 시절이 참 고달팠습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거니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억지로라도 센 척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범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출신 학과의 경우 남녀 성비가 1대 3 정도로 여성이 더 많습니다. 당시 학과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녀들 중 처음부터 교직이 꿈이라 사범대에 진학한 학생들도 많이 있었지만, '여자 직업으로 교사만 한 게 없다'라는 세상의 프레임으로 사범대에 진학한 친구들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여자 혼자서 자취하게 두면 큰일 난다(?)라는 부모님의 거친 애정으로 인해 원했던 대학과 학과에 원서조차 내지 못했던 학우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사범대에 진학한 남자들의 경우는 반대였습니다. 오죽 할 게 없으면 사내자식이 선생질을 하느냐는 거친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범대 남학생은 소변도 앉아서 누지 않느냐는 저질스러운 농담을 들은 적도 있고요. 실제로 제가 재수를 하지 않고 사범대학에 남겠다고 했을 때 친척 어르신들께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남자가 큰일을 해야지 평생 어린 학생들만 상대하는 것은 서글프다면서요. 그래서 저자는 그릇된 남자다움이란 틀 속에서 삶의 제한을 받아야 했던 남자들에게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남성성에 품었던 의문들을 페미니즘이 해결해줬고, 그 덕에 내 모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삶과도 맞닿아 있으며 여성만큼이나 남성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 7쪽
참고로 저자는 고등학교 남자 국어 선생님입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남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거침없이 "섹스"와 "따먹다"를 외치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페미니즘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살아갈 청소년들 역시 남성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기존의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남자를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다른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남자다움을 표현하지요. 그리고 그 방식이 같은 남자들에게 오랫동안 인정을 받아 왔고요. 여전히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부상처럼 예쁜 여자가 따라온다는 식의 급훈이 쓰이고는 합니다. 부끄럽지만 교직 생활 초반 '열공해서 소녀시대와 결혼하자'라는 동료 학급의 급훈에 아이디어가 좋다며 엄지 척을 날렸지요. 물론 여학교에도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상대의 성을 도구화하는 그릇된 동기 부여 방식이 잔존합니다. 또한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자는 쉽게 울어서도 안 되고, 과묵해야 하고, 뭐든지 척척 다 잘해야 하고, 술도 잘 마셔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늘 의리 있게 대해야 한다는 틀에서 말이죠.
문제는 여성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야!
서른 살이 된 저는 사회의 벽 앞에 좌절했습니다. 운 좋게 빨리 임용이 되었고, 남은 20대 기간 동안 더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교사가 되는 길이 곧 좋은 신랑이 되는 길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취업 이후 다음 단계로 결혼을 종용했고, 그제야 대구 집값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에게 요즘 시대에 신혼집은 남녀가 같이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은근슬쩍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평소 깨어있다고 생각했던 후배라 은근히 제 말에 동조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결혼 못 한다고 선배인 저를 걱정해주었습니다. 적어도 대구 지역에서는 남자가 집을 장만하고 여자가 혼수를 준비하는 문화가 당연시되었습니다. 2010년 당시에도 대구 집값은 33평 기준 평균 2억 정도로 서른 살인 저에게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지금 대구 평균 33평 집값은 4~5억이 되었습니다.) 남자에게 주어진 집 장만의 부담을 괜히 애먼 여성들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군대도 가야 하고, 데이트 비용도 내야 하고, 집까지 해와야 하는 남자들의 현실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죠. 반면에 저와 달리 결혼 적령기에도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여자 교사들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군대, 데이트 비용, 집 장만 등의 부담을 남성에게 더 많이 짊어지게 한 것은 여성들의 탓이 아닙니다. 왜 남자가 당연히 돈을 더 내야 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을까요?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이 번다는 생각이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습니다. 여전히 가정을 책임질 돈을 혼자만의 힘으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젊은 남자들도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문화를 만든 자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습니다. 잘못된 가부장제 문화가 가져온 현상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절묘한 예를 비유로 들어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오늘 청소는 홀수 번호 학생들이 하겠다고 지정했습니다. 청소를 맡게 된 홀수 번호 학생들이 시스템을 만든 담임선생님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만만한 짝수 학생들에게 괜히 화풀이를 합니다. 어쩌면 남성과 여성의 대립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탓하기 전에 잘못된 문화를 만든 사회 구조를 탓해야 합니다. 남편 집의 조상을 모셔야 하는 제사 문화를 탓해야지, 제사 때 늦게 오는 동서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는 남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고생하는데, 여자는 예쁘면 장땡이라는 분노의 방향 역시 잘못되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데 그동안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제 주변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이 잘나 보였거든요. 능력도 있고 외모도 출중하며 좋은 차를 타고 다닙니다. 저보다 훨씬 더 잘 사는 그녀들을 보며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저의 편협한 판단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 있고 예쁜 여자들만으로 바라보며 갖게 된 저의 편견이라고요. 사회의 수준은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 결정한다고, 여전히 남성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다수라며 일침을 놓았습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가장 큰 소득은 세상의 절반인 여성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와 제 아내뿐만 아니라 여성 전체의 일반적인 삶까지도요. 덕분에 나 정도면 정말 괜찮은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퇴직 이후 아내와 아들 모두에게서 소외받는 아버지의 서글픈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남성의 권력을 앞세워 여성을 괴롭힌 적이 없다고 늘 자부해 왔습니다. 오히려 그녀들을 배려해 왔다고 자부했죠. 저는 대구에서 일명 자취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동네에 대구교대, 계명대, 대구대, 영남이공대 등의 대학교들이 많아서 원룸이 많습니다. 늦은 시간 골목길에서 우연히 여성과 같이 걸어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럴 때마다 뒤에서 함께 걸어가는 저를 의식하는 여성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아무리 제가 선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더라도 그녀들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제가 선한 시민인지 불한당 같은 놈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깐요. 그런 상황에서 저의 경우 괜히 용무가 있는 듯 스마트폰을 꺼내 발걸음을 멈춥니다. 여성분이 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거리가 멀어졌다고 판단이 되면 다시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사실 저도 어두운 밤거리에 저와 같은 남정네들을 마주치면 조금 긴장이 되거든요. 그래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밤거리에 마주친 여성들을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자뻑이 심한 저는 그런 저의 행동을 뿌듯해했습니다. 스스로를 성인지 감수성이 뛰어난 남자라고 여겼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저처럼 선량한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성들의 멘트나 글을 만날 때마다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나처럼 여성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남자들도 많은데, 왜 소수의 그릇된 사고를 지닌 남자 때문에 모든 남자를 욕하는 거냐고 비난했습니다.
여성들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강남역 살인사건입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예전 제가 다녔던 대학에 있었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대학 때 다니던 자취집에서 지냈는데요, 한 번은 오후 다섯 시 즈음에 눈에 띌 정도로 많은 여학생들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그렇게 많은 여학생들이 한꺼번에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전날 밤 기숙사 근처에서 한 여학우가 정체 모를 남성이 휘두른 칼에 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다음 날 학교에서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대부분 여학생들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 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도 저는 나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을 수 있다는 그녀들의 공포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불특정한 다수의 남자를 경계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아내와 연애를 할 때 늦은 시간일수록 어떻게든 집까지 바래다주었거든요.지금도 여자 동료들과 모임을 할 경우 택시를 태운 후에 반드시 택시 차량 번호가 나오게 사진을 찍어 놓거나 메모를 해놓습니다. 웬만하면 집에 잘 들어갔다는 메시지를 받아야 잠을 청하고요. 생각해 보면 대부분 남자들은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이 늦은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을 때 걱정하거나 화를 냅니다.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잠재적 가해자로부터 자신이 아끼는 사람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잠재적 가해자는 남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어떤 남자가 가해자로 돌변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가해자로서 여성을 괴롭힌 적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여성들은 그런 저를 만났을 때도 저를 경계할 것입니다. 아니, 경계해야만 합니다. 간혹 저 또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나쁜 남자와 함께 세트로 묶여욕을 먹더라도 그녀들의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선량한 남자인데 왜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냐며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나쁜 남성들과 잘못된 사회 문화로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때 아내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때리거나 여자에게 욕을 한 적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런 제가 괜찮은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여자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만나게 된 것을 아내가 고맙게 생각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애인이자 아내인 여성을 때리는 남자가 비상식적인 사람입니다.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남자들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닌가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성별을 떠나 어떤 상황에서든 폭력은 용인되어서는 안 되니깐요. 오랜 세월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라는 나쁜 격언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폭력은 오랜 세월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모멸감과 자괴감을 심어줍니다. 저 역시 중학생 시절 일진들에게, 군대 시절 상급자에게 폭력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맞았다는 기억이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맞았었다는 기억만 남아있지 나를 때린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를 때렸던 그들은 저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앞으로도 평생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남자 친구나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다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심각성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그 좌절감과 수치심, 삶의 무너짐은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우리 어머니들은 그런 상황에서 가정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참고 살아오셨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아내가 복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며느리와 아내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시부모님과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인 저는 직장생활을 하며 육아와 가사를 아내와 함께 해왔습니다. 매일 정시 퇴근은 당연한 것이었고요. (정시 퇴근을 할 수 있게 야근을 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최대한 피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아내가 육아와 가사 일로 힘들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더 잘해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는 여성이 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방금 제가 늘 정시 퇴근을 하고, 직장 생활과 육아와 가사를 함께 했었다고 언급했었죠? 저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역시 늘 정시에 퇴근을 하고, 퇴근 후에도 육아와 가사 일을 해냅니다. (사실 육아시간을 통해 정해진 시간보다 더 빨리 퇴근합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제가 하는 육아와 가사 일은 희생이라고 여겼고, 아내가 하는 집안일은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동안 철저하게 저의 시선은 남성 위주였습니다. 늦은 밤에 어린 자식을 재우기 위해 아이를 안고 동네 곳곳을 다니는 남자들을 보면서 내일 출근해야 할 텐데 쉬지도 못하고 안쓰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장 앞에서 자주 만나는 제 또래 아빠들을 보며 서로 연민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한편으로는 퇴근 후에 피곤할 텐데 집안일을 돕고 아이까지 돌보는 멋진 아빠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아이를 재우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아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그런 따뜻한 시선을 주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는 것은 쉽지만, 좋은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이 말에 공감하신디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누가 더 이익을 보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저는 그동안 스스로를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로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금이라도 남편과 아빠로서 제가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더 민감하고 폭력적으로 반응해 왔습니다. '교사들은 이상해, 경상도 사람들은 이상해,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상해'라는 말에는 웃으면서 받아넘겼지만, '남자들은 이상해'라는 말에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저도 모르게 세상 모든 것을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바라보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과하게 제 자신이 남자임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아내가 다른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야기 속 남자에게 감정을 이입했습니다. 저의 오버스러움으로 항상 아내와의 대화는 즐겁지 않게 끝이 났죠.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스스로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거라고요. 가장 무서운 것이 전혀 악의도 없고 차별하려는 의도도 없었지만, 본인도 모르게 성차별이 가득한 언어를 사용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악당들은 자기 자신이 나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공부가 필요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세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살기 좋은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백인들의 경우, 백인보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더 살기 좋은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덕에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했죠.) 하지만 정말 미국 사회가 백인보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더 혜택을 받는 사회일까요?
함부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비난을 받는 요즘 시대에 용기 있게 남자의 시선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 님께 감사합니다. 책을 추천해 준 온달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책을 통해 맨박스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굉장히 강한 성 편견을 지니고 있는 국가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 또한 이 책을 통해 얻은 최고의 수확입니다. 또한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공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온달 님이 제가 사용한 '부부 내외'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 내외라는 단어가 성 편견과 관련된 단어인지도 몰랐거든요. 외래어인 '와이프'라는 단어를 선호하지 않아 저도 모르게 '안사람'이란 단어를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꼭 남자인 제가 바깥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책을 읽으며 작은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몇 년 안에 해외 학교 취업을 통해 중국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제가 아닌 아내가 해외 학교로 파견을 가도록 권하려고요. 저는 전업주부로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페미니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제 삶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남자인 저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로써 서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성차별과 싸우는 것은 아빠로서, 배우자로서, 남자 친구로서 모든 남자들의 책무이다."
덧붙이는 말
책의 부록으로 저자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추천해 줍니다. 저자가 추천해 준 모든 책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한 학기에 한 권이라도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특히 교사이자 아빠인 저는 학교교육과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저의 아들과 제가 만나는 학생들은 세상이 만든 그릇된 남성성에 갇혀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