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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Jul 17. 2022

나에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란


 나는 82년생 2000학번이다. 내 나이 또래 남자들이 친분을 위해 모여서 술 대신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레저 활동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농구? 족구? 당구? 스크린골프? 낚시?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일행 중 한 명은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그거 할 줄 몰라." 그럼에도 내 나이 또래 남자들과 쉽게 할 수 있는 레저 활동이 있다. 바로 '스타크래프트'라는 pc 게임이다. 처음 접하는 친구가 있더라도 10분 정도 개인 교습을 거치면 3:3 또는 4:4 단체 경기에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하겠지만 몸으로 움직이는 스포츠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다.


 90년대 이전 학번 대학생들이 주로 당구장, 다방, 오락실, 만화방 등에서 공강 시간을 때웠다면 2000년 이후의 대학생들은 모조리 pc방으로 향했다. 90년대 후반 정부의 IT 육성 정책과 더불어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전국에 PC방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참고로 나는 1999년, 고3 주제에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수능 시험을 망친 이유 중 세 번째 정도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손꼽는다. (첫 번째는 명확한 목표가 없었다는 것, 두 번째는 1학년 때부터 너무 열심히 해서 번아웃이 찾아왔다는 것) 결국 새벽에 기숙사 3층 창문에서 급식실 지붕으로 뛰어내려 PC방에 갔다가 사감 선생님께 적발이 되고 기숙사에서 제명당했다. 다행히 졸업을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서 그 사실은 부모님도 모르고 계신다.


 그래도 99년에 배워둔 스타크래프트는 이후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유용하게 쓰였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접한 나와 동기들은 고교 시절과 달리 주어진 공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다. 우왕좌왕하고 있던 우리를 삼수했던 형이 "야! 여기서 스타 할 줄 모르는 사람 없지? PC방 가자!"라고 말하며 인도해 주었다. 각자 취향이 달랐고 개성이 넘쳤던 우리 동기들은 스타크래프트 앞에서는 대동단결할 수 있었다. 2000년 이후로 스타크래프트는 계속 승승장구했다. 임요환이라는 불세출의 스타가 등장함으로써 e-sports라는 새로운 산업이 생겼고, 게임 채널까지 새로 개설될 만큼 당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인기는 엄청났다. 임요환 이후에도 이윤열, 박정석, 최연성, 강민, 마XX, 이제동, 이영호와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는 프로 리그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대구에서 벌어진 신한은행 스타리그 8강


 대학 졸업 후 나는 교단에 섰다. 선생님이 되었지만 나의 스타크래프트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직장 생활 초창기에는 친구들과 실제로 스타크래프트 프로들의 경기를 관람한 적도 있다. 대구 엑스코에서 스타리그 8강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현장에서 직접 게임을 보니 훨씬 박진감이 넘치고 재미있었다. 유료 콘텐츠였더라도 충분히 돈을 지불하고 볼 생각이 있을 정도로 프로들의 경기는 훌륭했다. 대학 생활에 이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들 또는 동료들과 한 번씩 스타를 하러 갔다. 가끔 경기가 과열되어 동료들끼리 얼굴을 붉힌 적도 몇 번 있었다. 중국에서는 실제로 함께 근무했던 초등 쌤들과 말다툼까지 하게 되어 교감쌤께서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스타 하는 것을 금지한 적도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도미토리 숙소 1층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외국인과 스타크래프트를 겨룬 적이 있다.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시 수업을 할 때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유닛을 소재로 '화자의 상황과 태도', ' 감정 이입과 객관적 상관물', '시 창작' 등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동료들과 4년 만에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PC방에 갔다. 그동안 PC방의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40대를 넘긴 우리 아재들은 중학생들 사이에 끼어서 자리를 잡았다. 3시간 정액권을 끊어서 1시간을 게임을 찾고 블리자드에 회원가입하는데 소모했다. 나이를 기준으로 '올드 vs 뉴'로 편을 나누었다. 나는 '뉴'팀의 최고 연장자였다.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게임 그 자체를 즐기자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후배들에게도 져도 되니깐 재미있게 하자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40대가 넘은 아재들이 되었고, 그동안 생계유지에 힘쓰느라 오랜만에 마우스를 잡았지만 우리의 실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단축키를 기억하고 있었고, 부대 지정도 했으며, 번뜩이는 타이밍에 공격이 들어왔으며 지형지물을 활용해 끈질기게 수비했다. 우리 팀은 오랫동안 팀워크를 다져왔고 기본에 충실한 올드 팀에게 패배했다. 쓸데없는 것에 승부욕이 강한 나는 우리 팀이 패하자 초심을 읽고 리플레이 화면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후배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팀플에서 그렇게 빨리 하이브를 올리면 어떡하냐.", "초반에 포토를 박더라도 넥서스를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했어야지.", "공격받으면 공격받는다고, 도와 달라고 빨리 말해줘. 팀플은 소통이 생명인 거 알지." 오랜 기간 나를 봐 온 상대팀에서 "또 형준이 승부욕이 발동했다"라는 말이 슬쩍 들려왔다.


 나의 피드백(?) 이후에 우리 팀은 적극적으로 소통을 했다. 소통이 원활하자 공수 모두 잘 풀렸고, 두 번째 경기는 이길 수 있었다. 승리는 역시 달콤했다. 그 어떤 취미 생활도 잘해야 재미있고 이겨야 즐겁다.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를 격려해 주었다. 원래 7전 4선승제로 시작했지만, 여섯 경기를 하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왜 게임을 e-sports라고 하는지 알겠다. 다행히 정액권으로 끊어 놓은 3시간이 대부분 소모되어 3 대 3 동점이라는 아름다운 무승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 게임이 출시된 지가 벌써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무 살의 마음으로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아무리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도 질럿을 뽑을 수 있기에 누구나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함께 게임하는 과정에서 대화하게 되고 유대감이 싹튼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기는 이유이다. 스타크래프트는 혼자가 아닌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아마 50대가 되어도 나는 한 번씩 지인들과 스타크래프트를 즐기지 않을까. 아니 은퇴 후 실버타운(?)과 같은 곳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다른 할아버지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음료수 내기를 할 듯하다. (지금의 할아버지들께서 바둑이나 장기 또는 화투로 내기를 하시듯이) 3년 만에 다시 접하게 된 스타크래프트는 역시 재미있었다. 게임 시작 전 카운트다운 숫자가 뜰 때는 여전히 긴장되고 설렜고, 게임이 시작 직후 일꾼 지정이 잘 되었을 때의 쾌감은 여전했다. 그리고 40대 아저씨가 된 우리들은 여전히 저그, 프로토스, 테란 중 한 종족에 속했다. 게임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지만,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간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즐거웠다. 게임 후에는 게임 내용을 복기하며 서로 본인이 잘해서 이겼다며 즐겁게 수다를 나누었다. 이 정도면 스타크래프트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칭해도 되지 않을까?


 그 다음 날이 되어도 어제 게임할 때의 흥분감은 쉽게 없어지지를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고마웠다. 또한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후배들과도 여전히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그때 이후로 스타크래프트를 한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오랜 세월이 지나 우연히 다시 친구들 또는 동료들과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더라도 여전히 즐거울 것이다. 이 게임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처럼 뭔가 내가 일상에서 힘이 들 때 기댈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어서도 여전히 새롭고 즐겁고 신선함을 주는 사람 말이다. 나이 차와 상관 없이 누구를 만나더라도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고,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긴 여운과 짧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사람이고 싶다. 프로토스, 저그, 테란이라는 세 개 종족의 밸런스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지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그것이 가능했다. 세상에 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콘텐츠를 통해 오래전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며 동시에 현재의 재미와 유익함도 놓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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