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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Jun 29. 2022

아빠, 엄마랑 어떻게 만났어?

삶의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태도

© EddieKphoto, 출처 Pixabay


 날씨가 화창하던 어느 일요일 오전이었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분에 A는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일요일에도 별다른 일정이나 특별한 약속이 없기에 그는 계속해서 잠을 청하고 싶었다. 햇살이 자취방에 한가득 들어와 그의 얼굴을 따사롭게 비췄음에도 그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일요일의 적막함과 평화로움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오늘 재미있는 일이 생기려나 하는 기대감에 급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A의 아버지였다.


 "아들! 일어났나? 밥은 잘 챙겨 먹었고? 오늘 아빠 친구 ●●의 아들 결혼식에 왔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이 33살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엄마랑 신랑 나이가 많다고, 왜 결혼이 늦어졌냐고 수군덕거렸지. 근데 알고 보니 우리 아들 나이랑 신랑이랑 같네. 하하하!"


 "네. 아버지. 식사 잘하시고 친구분 잘 축하해드리고 오세요. 저는 항상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결혼이 늦어지는 것 때문에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한 번씩 자연스럽게 꺼내는 결혼에 대한 압박은 A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A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상을 어떻게든 바꾸고, 부모의 기대대로 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휴대폰 속에 저장된 여성들의 리스트를 살펴보며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 보기도 했다. 친한 친구와도 친한 후배와도 이성으로 만나보려고 노력했다. 소개팅 자리도 절대 마다하지 않고 모두 수락했다. 하지만 박수를 치려고 해도 양손이 있어야 소리를 낼 수 있듯이 한 손으로 아무리 휘둘러도 맞장구쳐 주는 다른 손 없이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런 A에게 해방의 사건이 발생한다. A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그가 여자 친구와 함께 외지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면서 양가 집안에서 결혼식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에 대해 A의 부모님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곧 둘 중 하나라도 처리하자는 마음으로 바뀌셨다. 동생의 결혼을 계기로 A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마침 교육청을 통해 중국에 있는 국제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의 직장 상사도 적극적으로 A의 중국 진출을 지지해 주었다.


 A는 그동안 지난한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 땅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의 상태로는 결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새로운 세상에 가서 견문이나 쌓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중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그의 친한 지인들은 모두 그를 말렸다. 결혼 적기를 놓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삶에 있어서 여러 과제가 있는데, 결혼도 그중 하나이다. 중국에 갔다 오면 그의 나이는 36 또는 37살이 된다. 완벽한 노총각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다. A의 부모님으로서는 아들이 40대가 되어서도 혼자 자취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프로야구를 보며 혼술을 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한 지금도 그는 혼자 자취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프로야구를 보며 혼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일상을 바꿔 보고 싶다는 마음에 중국행을 결심했고, 운 좋게 합격을 해 해외에 있는 국제 학교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처음에 적응을 하는 데는 애를 조금 먹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표방하는 해외국제학교의 특성상 직장 생활에 적응하기는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한 학기 만에 동료 교사들과도 꽤 친해졌다. 특히 당시 A는 행정실의 J 과장과 친하게 지냈다. 아마도 학교에서 유일한 총각이었다는 공통점이 그들을 더욱 공고하고 끈끈하게 묶어주었을 것이다. 한편 A가 중국으로 향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응원과 격려도 많이 들었다. 특히 그곳에서 공산당 고위 간부의 딸 또는 중국 재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오라는 짓궂은 농담도 많이 들었다. 그 역시 그런 기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그곳에서도 인연이 있다면 짝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선생님들 중에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B가 있었다. 마침 나이도 A와 비슷했다. A는 흑심을 품고 중국에서 동료로 만난 것도 인연이라 앞으로 친구로 지내자고 몇 번 수작을 부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했고 매사에 조심스러웠던 B는 동료 교사이면서도 이성이기도 한 A를 만나 주지 않았다. A 역시 그에게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애정이 생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A는 B가 몇 번을 튕기자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을 쉽게 접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중국에서의 첫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A는 혼자서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은 총 4주였다. 처음 2주는 단기 속성으로 매일 중국어 과외를 받으며 혼자서도 중국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다음 2주는 혼자서 중국 운남성 일대를 돌아보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여름 방학 전날에 앞서 언급한 J 과장이 작은 회식 자리를 만들었다. J는 A에게 방학 때 어떻게 지낼 거냐고 물어봤다. A는 혼자서 운남성 일대를 여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J는 B도 운남성 여행을 간다고 들었는데 우리 다 같이 여행을 가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다. B는 다 같이 함께 여행을 가자는 J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막상 여행을 앞두고 J는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여행에서 빠졌다. 아직 중국어가 서툴렀던 A는 혼자서 운남성 여행을 가기가 두려웠다. 한편으로 이번 여행을 계기로 B와 가까워지기를 바랐다. A는 B의 한국에서의 지인들과 함께 2주 동안 운남성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B와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고, 조금씩 가까워졌다.


 여행 이후에 두 사람이 바로 사귀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이후에도 B와 극적인 사건들이 여러 있었다. 함께 근무했던 많은 동료들이 그 두 사람을 잇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사귄 지 2년째 되던 해에 A의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 전 아들이 아빠는 엄마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라고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은 곧 어떻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어라는 질문과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A와 B라는 인물을 통해 만들어 보았다. 아내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다 보니 수많은 우연이 우리를 맺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우연이 이어진 것이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한 필연의 결과물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나는 그녀를 만나 결혼했다는 것이고, 누군가 세상에 태어나 내가 가장 잘한 행동을 묻는다면 아내와 아들을 만난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한편 현재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사람과의 만남은 결코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를 몇 편 본 적이 있다. 식사 중에 고객의 감정을 받아주느라 1시간 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본 아버지가 한 마디 했다. "너 몇 살까지 살 거냐?" 아버지는 요즘 같은 백 세 시대에 계획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아들을 몰아붙였다. 하루 종일 고객의 갑질에 시달렸던 아들은 아버지는 뚜렷한 계획이 있어서 지금까지 고급 승용차도 없이 그렇게 힘들게 사시냐고 맞받아쳤다.


 드라마의 맥락과는 상관없지만 나는 드라마 속 아들이 내뱉은 그 대사에 크게 공감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니 나의 삶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계획 없이 막살라는 것은 아니다. 삶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은 필요하다. 다만 우리의 삶이 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생이 하나의 선이라면 내가 계획했던 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다. 마치 스테이지를 공략해야 하는 게임처럼. 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이 쉽게 나누어진다. 하지만 설령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실패로 끝이 나더라도 목표를 위해 노력했던 순간도 내 삶이고, 목표를 달성한 후의 주어질 시간들도 내 삶이다. 인생은 절대로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을 해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단순하게 끝이 나지 않는다. 삶은 점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말 중에 아주 유명한 말이다. 내 삶은 지금 여기 찰나의 연속이다.


만약 내 동생이 먼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교육청에서 해외 학교 파견을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중국행을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운남성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J 과장이 여름 방학을 앞두고 젊은 선생님들 모임을 주최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사건들을 우연히 만나 나는 그녀를 배우자로 만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와 부자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중에 한 사건이라도 놓쳤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사건들과 나의 행동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 좋든 싫든 우연처럼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당신이 지금 하는 그 선택과 행동이 또 따른 우연적인 사건을 거쳐 먼 훗날 당신의 파트너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삶의 모든 순간과 당연하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도 나에게는 소중한 것들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에서 나온 순간 그 자체가 이미 '여행'이네.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순간이 여행이야.

미움받을 용기 305쪽


 우리의 삶은 여행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선택의 순간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하고 그 책임도 오롯이 스스로 져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움받을 용기에서 집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가 여행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삶을 여행처럼 순간순간 즐기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힘든 대로,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쁜 대로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 삶의 우연은 필연이 되고, 결국 그 필연이 잘 한 결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내와의 우연히 벌어진 일들이 그리고 그 우연 속에서 내가 한 행동들이 지금의 내 삶을 만들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찾아 마음껏 만끽하며,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사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순간들이, 시간들이,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우리는 또다시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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