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로서, 엄마로서 느끼는 이 미안함의 정체가 궁금하다.
왜 나는 항상 미안할까? 이 미안함은 무얼까?
내가 느끼는 이 미안함의 정체가 궁금하다. 늘 아이에게,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느끼지만 그 미안함이 정확히 누구에 대한 것이며, 어떤 부분에 대한 것인지 들여다보고싶어졌다. 미안하면 불편하니까, 계속 불편하게 살기는 싫으니까.
나의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다섯살 첫째는 어른들이 출근하는7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아빠와 함께 말이다. 곧 5월 둘째 출산을 앞둔 나는 출산휴가 중이고, 등원은 남편이 해주고 있다. 잠이 없기로 유명한 첫째는 늦게 잠들기가 부지기수고 아침에 짜증이 뭉개뭉개 피어나는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아이의 비위를 맞추며, 아침에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씻기고 소변 보게하고, 옷을 입히는 나의 7시. 그런 아이가 엄마 냄새를 맡는다며 ‘킁킁’ 거리며 내 곁에 붙어있다가 “엘레베이터 왔다!” 라는 아빠 목소리에 못이겨 어기적어기적 나갈 때면 마음이 얹힌 기분이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체하는 것 처럼 빠르게 얹혀지는 여러 마음들에 마음이 체한다.
출산휴가 이후 4시 이전에 아일 데리러 가고, 아이 저녁을 손수 만들어 먹이고, 목욕도 씻기고, 영상은 보여주지 않고, 상호작용하며 놀아주려 애쓰는데... (동시에 이렇게 나는 그래도 내가 좀 괜찮은 엄마임을 증명하려 애쓰는데) 왜 나는 마음 구석도 아닌 한 가운데 아이를 향한 미안함이 쌓이는걸까? 아침에 나가는 어린 아이 모습이 안쓰럽다. 그냥 자식이란 존재는 언제나 부모를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는 생명체들일까?
이 미안함이란 감정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괜찮아, 잘 하고 있어~’ 라고 나를 토닥여야하나, 올라오는 미안함을 꾸욱 눌러야하나, 아니면 그 미안함을 느끼는 나를 받아들이고 날 안아줘야하나.
이 시대의 부모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부모란 무엇인지도. 내가 미안하다고 느끼는 지점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겠지만 시선을 돌려보려 한다. 내가 채워주고 싶은 부분,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원하는 이상과 현실의 온도차로 인한 불안감을 없애려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려는 것에서 시선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연애할 때 책을 좋아하는 나는 남편도 책을 나처럼 좋아하는 줄 알고 책 선물을 하곤 안 읽는 남편에 불만을 가졌다. 관계에서의 선물, 마음, 아니 모든 근본은 상대가 받고 싶은 걸 주는 것인데.. 내가 만들어놓은 ‘좀더 좋은 엄마’라는 이상과 현실의 온도차에서 발생하는 나의 죄책감과 감정을 내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 나의 감정은 내 안에서 처리하기. 그 처리를 마치고서, 아이를 향한 나의 행동과 태도는 아이의 필요에 맞게, 그렇게 하고싶다.
나의 불안과 나의 조급함은 나의 영역이니, 나의 안에서 처리를 마치고 아이를 대하는 모습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