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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l 14. 2019

끝났다. 앉아서 밥 먹고 문 닫고 화장실 가는 날이.

젖먹이를 기르며 흐르는 생각

두 달도 안된 젖먹이와 친해지는 중이다. 열 달, 정확히는 아홉 달을 내 뱃속에 있었다고 해서 태어난 아이가 곧바로 익숙해지진 않는다. 뱃속 아홉 달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아직은 어색하다. 왜 우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어떨 땐 당황스럽고, 2-3초 짧게나마 웃어줄 땐 황송하다. 그렇게 우린 아직 서먹서먹하다. 모든 관계에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데 그것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해당이 되는 이야기인가 보다.

아이가 잘 때 얼른 씻고, 식사를 하고, 집안일을 한다. 샤워할 때도 내가 내 몸을 씻는 건지 물에 적시는 건지, 행여 자는 아이가 엄마를 부를까 하여 욕실 문을 열어놓은 채 씻고 볼일도 본다. 머리를 말릴 땐 드라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깰까 봐 문을 닫는데 그전에 물에 젖은 맨몸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닫고 드라이를 한다. 밥 먹을 때도 내가 밥을 먹는 건지 밥이 날 먹는 건지, 밥과 국그릇의 분리는 사치고 하나의 그릇에 우겨담는다. 미각이란 게 엄청난 축복인데, 미각은 후순위가 된다. 그저 배고픔을 달랠 요량으로 수저를 든다.

모유수유 중인 나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이고 있다. 아이가 깨면 조심스레 안아 품에 안아 등을 몇 번 토닥여준다. ‘아유 배고팠구나.’하며 작디작은 몸이 아프지 않게 살살, 쓰다듬고 톡톡 토닥인다. 수유쿠션에 눕히면 울던 아이가 그 작은 입술을 모아 내 가슴을 찾는데 아기새가 따로 없다. 낮잠시간이 길어져 허기가 질 때면 입을 한껏 모아 여기저기 들이미는데 보는 내 마음이 다 급하고..

아이를 보다 보니 몇 번의 뭉클 포인트들이 있다. 그 뭉클함은 아이를 보는 시각, 소리를 듣는 청각, 냄새로 인한 후각, 아이 살갗을 부빌 때 느끼는 촉각 등 여러 군데에서 작동되는데 요 며칠 계속 날 자극하는 건 후각이다.

신생아에게서 나는 젖비린내. 매일매일 씻겨줘도 왜 아이한테는 포카칩 냄새가 나는지, 때론 머리에서 아저씨 냄새도 나고, 코를 대는 순간 웃음보단 ‘으, 씻겼는데 왜 이러지’ 생각부터 든다. 그치만 아이 몸 전체에서 나는 그 젖비린내는 이상하게도 맡을 때마다 움찔하다. 알고 보니 그 냄새가 내게도 난다. 샤워하려고 옷을 벗을 때, 아이와 씨름하느라 땀에 흠뻑 젖었을 때, 아이에게서 나는 그 젖비린내가 내게도 스며들어 와 있다.

그 냄새는 코로 들어와 머릿속 생각으로 이어진다. 후각이 생각이 되는 순간이랄까. 자연스레 나도 저런 존재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의 부모들을 그려본다. 엄마, 아빠, 할머니, 외숙모, 외삼촌, 언니들. 그러다가도 나에게 젖냄새를 나게 해준 이 조그만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뭐라 정리되진 않는 생각들.

하루하루가 아이를 보고 씻기고 먹이고 단조로운 반복의 요즘. 이런 단조로움이 오히려 불안으로 치환되어 아이가 자는 이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들썩거리는 요즘. 아일 키우면 다 이런걸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피어나게 하는 것은 호르몬 탓일까, 혼자 있는 외로움 탓일까.

메시지도 없고, 주제도 없고, 그저 의식의 흐름으로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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