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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03. 2021

절실함은 담벼락이 되어

인터뷰이 이소은, 글 한열음



‘햇반이 재활용이 안된다는 사실! 플라스틱은 죄다 씻어서 재활용으로 내놨었는데. [플라스틱_other]은 재활용이 안된대요. 주변에 있는 [플라스틱_other] 제품을 SNS에 올려봅시다! 힘을 모아주세요!’


‘승리는 흐지부지 군입대 하고 정준영은 벌금 백만원. N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 지금 기회 놓치면 참여자 신상공개 절대 불가능입니다. 복붙 해줄 수 있잖아요. 같이 해요.”




소은(29)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본 뒤로 햇반 용기는 더이상 분리수거함이 아닌 일반 쓰레기통에 버린다. 판결이 나온지도 몰랐던 정준영 성매매 혐의에 대한 벌금 백만원 판결에 함께 분노한다. 절실함이 묻어나오는 그의 SNS를 보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떠올랐다. 비록 본인이 당한 일, 처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함께 마음을 모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담벼락에서 사람들의 참여를 호소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페르소나가 굉장히 다른 사람이에요. 제 SNS 중 페이스북은 마치 정치인처럼 선언문을 읽는 장소가 되었어요. 불특정다수, 그렇지만 나를 알고 있고 나의 말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 나의 중요한 화두들을 이야기하는 창구요. 사실 페이스북을 잘 안 하다 이렇게 쓰게 된 건 제가 겪은 두가지 사건 때문이에요. 한가지는 2015년에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당했던 것. 두번째는 교회 내에서 겪은 성폭력 사건. 저는 글을 써서 이 문제들에 부딪혔던 것 같아요. 저에게 싸움을 하는 방식은 글을 쓰는 거였어요. 그렇게 시작된건데 점점 확장되면서 참여를 호소하는 글들로 채워졌어요.”


내가 일상을 올리고 지인들과 가볍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이 곳, 페이스북 담벼락이 그에겐 일종의 배틀 필드(battle field)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서 다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이 소은에게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옳지 않은 세계이고 옳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걸 제가 묵과함으로써 그것들이 날 갉아먹고 힘들게 하고. 그렇게 사는 제 자신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고 설명조차 되지 않는데 그런 세계를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저는,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소은은 고등학생 때부터 신학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신에 대한 문제, 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세계에 대한 공부는 그를 항상 설레게 했다. 2016년 대학 졸업 후 신대원 입시를 앞두고 그는 교회 내 성폭력 사건을 맞닥뜨렸다. 그 이후였을까. 자기가 사는 이 세계가 옳지 못한 세계라는 것, 옳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몇 해 전 성추문을 일으킨 목사가 여전히 한국 교계 내에서 목사로 활동하고, 다녔던 교회에서 성폭력 사건으로 저랑 친구가 문제제기를 했던 선교사가 여전히 선교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도덕책에서 착하고 예의 바르게 살라고, 남의 것을 빼앗지 말아라, 겸손해라. 이런 걸 배웠는데 사회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괴리감이 크더라구요. 승리가 떳떳하게 군대 가고 전두환이 공권력의 보호를 받는 현실. 이런 세상이 ‘당연하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너무 막막했던 거 같아요.”


친구로부터 친구의 지인이 겪은 선교지에서의 성폭력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소은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교회에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 등을 요구했지만 교회는 응하지 않았다. 문제를 덮기 바빴다. 같은 편에 선 친구와 함께 교회 홈페이지에 끊임없이 글을 쓰고 사실관계를 정정했다.


“6개월 정도 담임 목사, 교회 지도자 측과 대립했지만 최종적으로 간담회를 열어서 문제 해결을 함께 해나가기로 결정했어요. 교회는 TF팀을 꾸렸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죠. 그런데 TF팀에서는 저와 친구에게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해야 할 지 묻더라구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고민을 해서 행동지침을 적어줬어요. 이후에 교회에 남고 싶었지만 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결국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교회를 나가자마자 거짓말처럼 TF팀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는 아직도 선교를 하고 있어요.”


2년이 훨씬 지난 일이지만 이야길 하는 소은의 말이 빨라진다. 그 일 이후 신대원 입학시 꼭 필요한 교회의 추천서도 받을 수 없게 됐고 자연스레 신대원 진학도 포기하게 됐다. 그 다음 해에 소은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이란 소설을 읽고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정말이지 나는 위선적이고 부유한 사람이지만 가능하다면 강이 되고 싶다. 어설프고 부자연스러운 위로나 동정이 아니라 차라리 무관심한듯 보여도 인간의 고통과 아픔, 죽음을 내 안에 삼키는 사랑을 하고 싶다, 진실한, 아픔을 아는 사람이 되어 내 안에 한 줄기 강이 흐를 수 있다면, 내게 그럴 용기가 있다면.”


소은이 멈춰선 곳은 세상과 사람들의 위선이 아니었다. 자신의 위선과 부유함 앞에서 다시금 본인을 되돌아봤다. 정말로 되고 싶은 것은,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었다.


”아 그거요. 제가 현실감각이 없고 단순하기도 하고. 또 그 때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내가 겪은 경험들을 사회적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저를 많이 살렸거든요. 그렇게 해석하는 과정이 제겐 치유의 과정이었고 그래서 글을 썼던 거에요. 그런데 계속 생각해보니까 대한민국에서 제가 여성으로선 약자지만 그거 말고 모든 면에서 기득권이더라구요. 내가 여성으로 겪은 차별에 대해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지 못했을 때는 내게 주어진 것들도 당연하게 바라봤는데요. 제가 겪은 문제들을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니까 동시에 제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보게 됐어요. 전 한번도 배고파 본적 없고 돈 걱정하며 공부해본적 없고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을 나왔고요. 장애가 있지 않고, 성적 취향으로 차별받지 않는 제 위치요. 제가 겪는 차별엔 분노하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엔 관심이 없는 제 모습. 나태하고 게으른 제 모습을 저는 아니까”




신대원 진학을 포기한 그는 유레카라는 청소년 교육 컨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편집팀에서 컨텐츠를 기획하고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었다.


“사람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궁금하게 만들 것이고, 어떻게 이걸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세상을 계속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더라구요. 사람들로 하여금 질문을 갖게 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요. 누군가 제 글을 읽었을 때 어떤 사실을 배웠다는 게 아니라 이걸 읽고 나니까 ‘어? 이런 문제가 있네?’ 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도록. 만 3년 정도 일해놓고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민망하네요.”


2016년에 입사한 유레카를 지난 여름 퇴사했다. 현재는 컨텐츠 기획 분야에 취업을 준비 중이다. 회사에 있으면서도 평소 관심이 있던 한국어 교육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금은 논문과 함께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은 유레카에서 퇴사하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유레카는 독자가 중고등학생이라 그폭이 좁았거든요.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좀더 경험의 폭을 넓히고 싶어서 다양한 영역에 지원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컨텐츠 기획 쪽이요. 취업 준비를 하다보니 제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고 가격표가 매겨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어요. 제 주변에 잘난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다들 대기업, 공기업에 취직하는데 저만 뒤쳐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소은은 직업 선택에 있어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이슈를 던지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글을 쓰고,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는 소은이지만 여전히 말하는 데엔 부끄러움이 따른다. 말한대로 살아내지 못할 것 같단 두려움도. 하지만 그럴 때라도 자신의 선택지에 침묵은 없다. 비록 쓴대로 살 수 없을 때라도 침묵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숨지 않고 부족하지만 자신을 직면하는 사람. 그래서 그 누구보다 성장이 필요한 사람. 오늘도 무관심과 냉소와 판단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소은만의 절실함으로 담벼락을 채워가는 중이다.




마음을 담아 이 이야기를 해준 소은에게 정말 고맙다. 인터뷰 내내 이런 사람의 이야길 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설레었다.

많은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힘이 되어 닿기를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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