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잎을 떼어내며
할머니는 땅에서 난 것을 먹어야 뼈가 여물고 살이 단단해진다고 말했었다.
사계절 내내 해를 듬뿍 받아 볕이 구석구석 들어찬 시래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 개나리처럼 샛노란 황태 같은 것들. 할머니는 땅에서 나고 바다에서 나고 바람과 볕을 머금은 것들을 자주 가져왔다. 거실 중앙에 신문지를 넓게 깔고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굵은 손 마디마디에 힘을 실어서 미나리, 고사리, 시래기, 고구마순들의 껍질을 벗기고 다듬었다. 할머니 옆에 자리를 잡고 그 거칠고 큰 손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할머니처럼 한번에 끊김없이 고구마순 껍질이 벗겨질 때면 쾌감과 함께 나만 아는 뿌듯함이 입가로 번져 웃음을 머금었다.
지난 주엔 농가펀드에서 갓 딴 옥수수를 보내주셨다.택배 박스 안에 잎이 붙어있는 채로 가득 차있는 옥수수를 보고 이거 애들 데리고 이거 어떡하나.. 반나절을 고민하다 느즈막한 오후에 맘을 먹고서 상을 폈다. 신문지 대신 아이들이 그리다 만 스케치북 안 두꺼운 종이 대여섯장을 북북 찢어 상 위에 깔았다.
“너희들이 맛있게 먹을 거니까 너희도 다듬어야해. 자 엄마 봐봐. 첫 잎을 벗기고 나서 계속 잎을 벗기는 거야. 밑에 꼭지는 엄마가 부러뜨려줄게. 대신 마지막 옥수수에 붙어있는 잎파리는 벗기면 안된다. 진짜 중요해. 그게 있어야 나중에 옥수수를 촉촉하게 먹을 수 있어.”
일곱살이 된 첫째는 제법 손이 여물어 하나 둘씩 껍질을 벗겨내고 이내 속도가 붙는다. 세살 둘째는 벗기다가도 자꾸 옥수수가 입으로 향한다. 옥수수 끝에 매달린 수염을 보고서 “지지야 찌지” 란다. 그러다 아무말 없이 조용히 잎을 벗겨내는 엄마와 언니 틈에 서 옥수수보다도 작은 손을 꼼지락대며 손을 보탠다.
할머니도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몸은 다 큰 두 아이의 엄마인데 어째 오늘은 할머니 옆에서 나물을 다듬던 아이 마냥 그 시절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어둑어둑해진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나물 손질을 마치고, 그것들을 볶고 찌는 냄새가 가득했던 어슴푸레한 저녁.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을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재현이라도 하며 살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알알이 익은 옥수수가 아이들 마냥, 그 시간 마냥 참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