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살아남기
요 며칠 둘째가 아팠다. 콜록 콜록 마른 기침을 잠깐씩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바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근무 시간을 변경해서라도 병원에 갔을텐데 프로젝트 준공을 앞둔지라 틈이 나지 않았다. 기침이 더 잦아졌을 때 병원을 갔다 왔고 하루이틀 더 심해지더니 컹컹 거리는 기침을 달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긴 하지만 2시간 마다 교차복용 해야하는 정도는 아니고 아침 한번, 저녁 한번 정도 투약한다.
어제는 내가 휴가를 내고 아일 보았고 오늘은 남편이 휴가를 내고 아일 보았다. 사실 어제도 회사에서 꼭 자리를 지켜야 했는데 열 나는 아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어 휴가를 냈다. 요즘은 팀원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통신 기지국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인데 구축 완료를 했더라도 마무리가 꽤나 복잡하다. 초기 사업 제안 시에 제출한 제안서와 상세설계도 상의 내용과 구축된 통신설비들이 일치하는 지 체크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사업에 소요된 비용, 자재의 반입과 반출 등 해당 내용들을 모두 서류로 증빙해야 한다.
이 일을 발주처에서 할 수는 없으니 발주처에서 의뢰한 감리단에서 나와 몇 만장의 서류를 검토한다. 항목 별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는데 감리단이 부르기만 해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우리에게 준공 도장을 찍어줄 사람들이라 긴장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분들은 데드라인 때문에 새벽을 넘기고 계신다. 나의 경우 육아기 단축근무 중이라 초과근무 자체가 금지되긴 하나 요 며칠 밤까지 산출물 작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말 근무나 야근은 어렵다고 하고 가방을 챙겨 나온다. 심호흡 한번 내쉬고 일어서서 “내일 뵙겠습니다.” 한 후 프로젝트 룸에서 나온다. 회사 건물 4층에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에 있기로 했다. 물론 이 결정 또한 기회비용이 있는지라 눈치라든지 평가 등 조직에서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동시에 주위 시선보다 내 상황에 맞춰 행동했지만 편치만은 않은 내 내면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길래 이리 마음이 휘몰아치는지 생각한다. 다른 이의 시선,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서의 인지도, 조직 내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인가. 생각해보니 그것이 꼭 내 마음의 어떤 부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밥벌이 자체가 원래 그렇게 눈치도 보이고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마음이야 항상 평온하면 좋고 세속사에 해탈하여 무념무상으로 살면 좋겠지만 이 땅에 발딛고 살면서 그게 가능할까. 잠깐 편하고 늘 근심과 걱정으로 일렁이는 게 마음이니까. 득도한 듯 말하지만 여전히 내면의 평온을 지키지 못할 때면 가슴 속이 요란해 불안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럴 때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요동치는 마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를 해부하고 뚫어져라 쳐다보기의 효과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내면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때는 편치 않은 마음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저 버티는 게 최선이지만 그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흔들리는 상태를 받아들이기. 그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발발 거리지 않기.
동시에 회사 일에 있어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와 적절한 자기 표현. 너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감정표현. 어느 정도는 다른 이의 시선에 눈감고 넘어가는 의도적인 무관심.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적당한 어벙벙함들. 선명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애매함을 견디는 인내같은 것들.
사실 앞에서 묘사한 사람들을 일이나 관계에 있어서 볼 때면 그들의 노련함에 상처를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인간미가 없어보이기도 했고.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원래 타고난 기질대로 넓은 오지랍을 기반으로 손해봐도 좋으니 생겨먹은 대로 편하게 살고자 했다. 하지만 나대로 사는 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에는 치룰 대가가 있었고 나는 지금 그런 대가를 치룰 만큼 넉넉한 상태가 되지 못한다. 일과 육아의 병행. 여러모로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이제 와서 보니 냉정하고 인간미가 없어 보이기만 했던 사람들이 나쁘다기 보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 했던 사람은 아니었을지 생각한다.
어릴 적 무언가를 깨닫고 더 알아가는 데 있어 희열과 쾌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것에 아쉬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알지 못했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 일들. 알게 됐기에 마음이 더 복잡한 일들. 굳이 알 필요도 알 기회도 없었던 시절들이 그립기도 하다.
요며칠 휘몰아치는 일과 그로 인한 압박, 아픈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여유가 없어 곤두선 마음을 글로 풀어내니 조금은 누그러든다.
지금 내겐 편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오려 발버둥치는 발길질 보다는 그 시간 속에서 버티는 힘이 더 간절하다. 자꾸만 선명해지고 싶은 유혹들을 뿌리 친 채 애매함을 견디는 인내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