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났다.
두 아이의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욱씬 거리는 왼쪽 골반의 기분 나쁜 지근지근함에 유튜브를 틀어 ‘김선미 골반 집중’을 검색했다. 업무 중 종일 앉아있다보니 짧아진 허벅지 뒷근육과 한쪽으로 치우쳐진 무게 중심 때문인지 엉덩이와 허리가 연결된 부위, 특히 왼쪽 천골이 욱씬 거려 요가를 안 할 수가 없다. 중간중간 가래 낀 기침을 해대는 둘째에게 달려가 등을 받쳐 일으켜 앉힌 후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고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등을 토닥토닥 세네번 정도 했을까. 요가를 마친 후 자려고 누웠더니 아이가 10분 간격으로 칼칼한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깬다.
오늘 점심엔 남산 둘레길을 걷느라 만오천보를 걸었고 요가까지 한시간 남짓하여 체력은 바닥인데 아이까지 콜록거리니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없다. 편하게 자긴 글렀고 거실로 나와 식탁 위에 남편이 피파를 하다말고 간 노트북에 워드를 찾아 흰 백지에 글자를 채운다.
오늘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프로젝트에서 갑중의 갑 공무원을 상대하느라 오전 두 세시간을 울그락 불그락 했다. 갑작스럽게 열폭하는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늘 당황스럽다.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복수라도 하고 싶으나 그것이 마땅치 않아 속만 부글부글 끓인다. 나만 이렇게 곤란하면 차라리 나은데 일정 조율에 있어서도 통보식의 스케줄로 인해 내가 하도를 준 업체까지 불똥이 튄다.
업체 담당자는 오늘 백신 접종을 하는데 공무원 말로는 오늘 꼭 과천에 있는 교육원에 들어와 영상 업로드를 해야한단다. 일정 조율을 다시 해주시면 안 될까 물으니 <계속 사정 봐드리니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 황당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내가 더 황당하다. 라는 답 문자를 쓰고 싶었지만 참았다. 업체에 연락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거의 애원과 애원을 거듭하여 부탁을 드렸다.
여차저차 업체 분이 결국 움직이게 되셨고 미안한 마음에 사비를 털어 스타벅스 5만원 상품권과 기프티콘을 보내드리며 죄송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 쪽 업체 직원분은 나이가 20대 중후반 정도 되셨는데 오히려 괜찮다며 매니저님도 고생하셨으니 쉬라는 인사를 하신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위로라도 받아 다행이고 무엇보다 일이 마무리가 되어 그 공무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다행이다.
오전 내내 그 사람 때문에 흥분하고 회사 자리에서 ‘공무원의 갑질을 신고한다고 국민 신문고 신고해버릴거에요’ 하면서 열폭하는 내게 팀장님은 ‘한매니저, 워워.. 단단해져야해.’ 라고 하셨지만 오후에 그 공무원과 대면 미팅을 하고 나서는 역시나 “아 그 사람 진짜 좀 이상해” 라는 후기를 남기신다. 그 사람이 여간 까다로운 사람이 아닌 걸 확인 받은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정확히 11시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업체 직원분께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으며 고객이랍시고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상호 존중 없이 일을 해나가는 그 공무원에 대한 분노가 들끓어 이 밤 복수의 칼을 갈며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할 지 골머리를 싸맨다. 복수를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무기력해진다. 더 나아가 이런 걸 민감하게 여기는 나의 성격이 문제처럼 보이고 내가 못 나보이기까지 한다. 다시 정신이 번뜩 든다. 피해자는 항상 자신의 잘못을 찾는다는 어디서 들은 말이 떠올라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 회사는 직급이 없어지고 모든 구성원이 ‘매니저’로 통일된 지 거의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고객사를 대할 때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직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이번 프로젝트에서 차장으로 소개를 했고 다른 분들은 과장 또는 부장으로 명함을 팠다. 그렇게 소개도 하고 이미 다 알고 있으련만 그 공무원은 화상회의든 대면회의든 의도적으로 우리의 직급을 낮춰부른다. 한 단계씩.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게. 부장으로 컴(커뮤니케이션)을 하신 매니저에겐 OOO차장님. 차장으로 컴이 되어있는 내겐 대리. 이런 식이다. 사실 직급이란 게 의미가 없기에 내려부르는 자체가 기분 나쁘다기 보다는 일부러 절묘하게 한 단계식 낮춰 부르는 그 의도가 기분 나쁘다. 그렇게 딱 맞게 한 단계씩 낮춰 부르는 것도 헷갈릴텐데 참 대단하다.
종잡을 수 없는 반응. 분명히 10분 전까지는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고.”라는 답변을 주었다가 일정 변경이나 어떤 요청을 할 때면 “황당합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라는 몇 분 상간에 도저히 같이 위치할 수 없는 톤의 말들. 그럴 때면 같이 사는 가족이 참 불쌍하다 싶다가도 가족까진 건드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린다. 최대한 그를 악하고 나쁜 캐릭터로 만들어 그에게 갖는 증오와 혐오에 대한 정당성을 만들고 싶어 이 밤에 이렇게 글을 쓰며 곱씹는다.
회사 생활 하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있고 그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울그락 불그락 할 수 없지 싶지만 아직은 내공이 없는 건지 그런 일을 당해놓고 아무일 없는 척 멘탈 단단한 척할 수가 없다. 회사에서 사람과 업무를 견뎌낼 성숙함이 더 필요한 것인지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여운이 며칠은 간다.
오늘 밤은 이상한 놈을 만나면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라는 결론만 내리고 잠을 청하려고 한다. 이상한 놈은 이상한 놈일 뿐이다.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그리 되지 않는 나를 탓하지 않기로. 에라이.
이 세상 모든 노동자들 힘내세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