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모르는 당신에게
지난 주 내내 진하게 웃을 일이 없었어요. 어쩌다 실실 쪼개는 것 말고 마음 속으로부터 차오르는 뻐근함과 울컥거림을 동반한 웃음이요. 내 안이 충만함으로 채워질 때 나오는 그런 웃음이 없는 한 주였어요.
최근 회사 프로젝트가 마무리가 되고 비용처리 할 게 자그마치 150억이었어요. 돈이 관련되니 신경도 곤두서고 서류는 챙길 게 어찌나 많은지 책 한 줄 읽을 시간이 없었어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저녁까지 먹은 뒤 하원했어요. 남편도 회사가 끝나면 아이들과 제가 있는 서울역으로 와서 둘다 급하게 식당에서 허기를 채운 후 집으로 왔어요. 집에 와선 아이들에게 간단한 세수와 양치를 시키고 아이들을 재우다 같이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죠. 집안을 돌볼 시간이 나지 않아 싱크대는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지 오래고 아이들 속옷 서랍을 열어보니 입힐 게 한 두개뿐이네요. 냉장고는 말해 뭐하게요, 버릴 것 천지입니다.
정돈되지 않은 집안. 발밑이 까슬까슬하게 먼지 쌓인 마루도 스트레스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제 안의 허기였어요. 회사, 일, 아이들 말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시간의 빈곤은 제 마음도 바싹 메마르게 했어요.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어쩌다 남편이 일어나 내는 소리에 새벽에 깼어요.
일어나서 하는 일이 너저분한 집안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지난 주말에 다 읽은 박완서 산문집을 펴서 글쓰기와 관련한 문장들을 적고 있네요. 게중엔 따라 적는 것 조차 벅찬 것들이 있었어요. 가늠하기도 벅찰만큼의 고통, 그것이 만들어낸 가혹한 깨달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별,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삶 속에 찾아오는 설렘과 충만함. 인생의 모순과 야속함들. 나는 평생에 이런 글을 쓰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 허탈하면서도 쓸모없는 글자없이 붕뜬 묘사 없이 정확하고 무서우리만큼 예리한 문장을 내 손으로 따라쓰고 있는 내가 뿌듯한 거 있죠. 마치 내가 그런 문장들을 지어내는 것 같은 요상한 자부심과 그런 생각을 낳는 내가 어이없어 살짝 웃어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작가가 글쓰기에 느낀 회의와 한계가 표현된 부분에서는 가슴부터 차오르는 묵직함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면 흐뭇함에 입꼬리가 올라갔어요. 그렇게 바라던 묵직한 깨달음. 맘 속에서 차오르던 그런 웃음이었던 것 같아요.
웃을 일 하나 없는 날 가운데 누군가의 글이 위로가 되어 웃는 내 모습을 보니 내심 흐뭇했어요. 읽고 있는 책에 빠져 허우적대며 한 두시간만이라도 진득이 읽고 곱씹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도 연결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솟구치기도 하구요. 이러면서 막상 새하얀 화면 위 껌뻑 거리는 커서를 보면 멀뚱멀뚱하고만 있겠죠. 그래도 뭐 좀 써볼까 했더니 벌써 아침 7시 30분이에요.
아이들이 깨기 전에 회사 갈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혀야 하는 시간. 읽고 쓰는 사람에서 돌봄 노동자와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모드 전환이 필요한 때. 모드 전환도 언제나 내가 자발적으로 한다기 보다는 잠에서 깬 아이의 엄마 찾는 목소리로 이뤄질 때가 많아요. 오늘은 좀 더 넉넉한 아침을 위해 스스로 모드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읽기를 그저 멋이나 허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녹록치 않은 시간 속에서 읽는 것을 통해 힘을 얻고 읽음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내 삶에 있구나 싶어요. 늘 하고 싶은 일들이 해야할 것들에 가려진 하루 속에서 읽는 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회사에서는 동료로 사회에서 보통 시민으로 성실히 살아가지만 모두 잠든 밤이면 밀려오는 허무함에 인스타나 페이스북, 유튜브를 기웃거려요. 그러다 마침내 이 공허감에 반응하여 읽고 쓰는 것으로 채우려는, 헛된 노력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을 하는 제 자신에게 지지를 보낼 마음의 넉넉함이 오늘은 생기네요.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세계와 내 삶을 좀더 보듬고 싶게 만드는 것 보니 제게 이 책이 참 좋은 작품이었나봐요.
이제 의자에 일어서서 일하고 돌보는 사람으로 정말 모드 전환을 합니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고 혹은 표현되지 못함에 답답한 당신과 내가 그 물음에 응답하길 원하며.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보듬고 그를 통해 누군가를 보듬을 수 있길 바라며. 살아생전 남기신 문장으로 남겨진 이들의 삶을 보듬는 고 박완서 소설가님을 추억하며 마칩니다.
식구들을 위해 장을 보고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일, 매일매일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아 쾌적하고 정갈한 생활환경을 만드는 일, 아이들 공부를 돌보고 가끔 학교 출입을 하는 일, 뜨개질, 옷 만들기 - 소위 살림이라 불리는 이런 일들을 나는 잘했고, 또 좋아했지만, 아무리 죽자꾸나 이런 일을 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한 구석을 나는 내 내부에 갖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10-211)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