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백석. 7년 만에 장편을 펴낸 김연수 작가의 ‘일곱해의 마지막’은 백석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언어로 숱한 시를 지은 그가 해방 후 분단이 된 북쪽 나라에서 더 이상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문학의 순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문학의 존재 이유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만 보는 사회. 다른 이들처럼 그러한 억압을 출세의 기회로 이용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며 방황한다. 그의 주저함은 현 체제에 대한 미묘한 저항으로 느껴져 살고 있던 곳에서 옮겨 수년간 협동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읽는 내내 그가 된다. 그가 느꼈을 좌절감 적막함 외로움 반발감 같은 것들이 내 속에서도 뒤엉켰다. 독자가 주인공의 마음을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눌 수 있는 건 작가의 능력일거다.
쓰지 못하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에 여전히 마음을 쏟는 시인의 영혼을 가진 이에게 북한은 어떤 곳이었을까.
늘 그렇듯 김연수 소설 속 개인은 시대한 절망을 무겁게 지고서 위태롭게 걷는다. 이 이야기를 쓰려고 백석이 듣던 일제 시대의 가곡을 늘 틀어놓았다던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동안 백석이 되어 그의 세계에 살며 수년간 그 이야길 집필했을 작가의 시간. 그와 같이 쓰지 못하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의 시간을 생각한다.
- 일곱 해의 마지막 중
몇 년 뒤 전쟁이 벌어져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찬구들까지 전선으로 나간 뒤에야 밸라는 그 시절에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런 회한과 슬픔이 그녀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이 몇 줄의 문장으로 남게 됐다. (26p.)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 그들은 들으라는 대로 듣고, 보라는 대로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라는 대로 말해야만 했다. (85p.)
이윽고 회색 하늘에서 다시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 치우는 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눈이 쏟아지며 무채색의 고요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묵음과 무채색. 그것은 그즈음 기행의 내면 풍경과 같았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찾을 길이 없는 비애뿐이었다. (148p.)
그리하여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 앞에서 시인의 문장이 속수무책이라고 할지라도. 앞선 세대의 실패를 반복하는 인간이란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비를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 표정도 짓지 못하는 딸과 같은 처지라고 할지라도. 그럴지라도. (172p.)
그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따뜻한 것들로. 좋아하는 것들로. 다정한 것들로. 이를테면 잘 길들여진 돼지처럼 순하고, 남국의 산록같이 보드라운 것들로. 그때는 세상 모든 것이 두 겹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사랑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미움이 있고 즐거움과 괴로움은 서로 붙은 한몸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를 때였다. (185p.)
이제 시는 자신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불행과 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한참 걷던 기행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러나 눈보라가 그를 뒤흔들었다. 기행은 지금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 (2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