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부터 꺾지는 말자고
유용한 글을 쓰고 싶다
아무도 없는 집 오후에 차분한 음악을 틀고 식탁에 앉아있으면 부엌 쪽으로 난 작고 기다란 창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자그마치 17층.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수많은 계단을 타고 여기까지 올라온다. 정확히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목소리엔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있어 소리 내는 아이의 상태를 간단히 추측할 수 있다. “다시 한 판 하자고!” 라든지 한껏 고양된 톤의 “잡는다!” “야 너 선 넘었잖아” 등의 말들은 또렷하게 들리기도 한다.
월요일마다 어딘의 글이 내 구글 메일 계정으로 도착한다. <어딘의 우연한 연결> 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3월 봄호를 구독해서 글을 받았고 9월에는 가을호를 받기 시작했다. 어딘은 이슬아의 글 선생이다. 사실 그것에 매료되어 봄에 구독을 신청했다가 역시나 글이 너무 좋아 가을호도 냉큼 신청서를 작성했다.
어딘의 글을 읽으면 공부하고 싶어진다. 가을호의 첫 번째 편은 하와이에서 여권을 잃어버렸던 일부터 시작해서 하와이의 역사, 그들의 땅을 밟은 제국의 나라들, 그 큰 세계사 흐름 속에 위태롭게 흔들리던 나라, 하와이를 ‘포와’라고 부르며 작은 반도를 떠나 농장으로 일하러 간 사람들이 살던 조선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어제는 ‘바나나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신을 위해 바쳐지는 공물인 바나나와 돼지고기를 여성이 먹지 못하게 한 1820년의 금기를 부순 하와이의 여자들 이야기가 나왔다. 몇 주 전에는 분단되지 않았다면 대륙행 기차의 시발역이었을 서울역에 대한 이야기를 써냈다. 글을 읽고 나면 구글링을 몇 번씩은 한다. 하와이 왕조라든지 1930년의 서울역이라든지 글에서 설명한 내용을 사진으로 보고 확인하면 또 새롭다.
이토록 유용한 글이라니. 유용한 글인데도 흠뻑 취하게 만들다니. 게다가 관심 없던 역사까지 공부하게 만들다니. 역시 이슬아의 글 선생이구나 했다가 이슬아의 글 선생은 그의 한 부분일 뿐 글 선생이라서가 아니라 그는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인 것이다.
글의 말미엔 어딘의 스크랩이라고 해서 읽어볼 만한 기사나 글을 링크해준다. 주로 사회적 이슈에 관한 내용이 많다. 20대 남자와 여성의 정치적 성향, 코로나 시대의 돌봄이라든지 시사IN 주간지의 기사를 가져온다. 몇 번 기사를 읽고서는 기사가 생각보다 너어무 좋아 시사IN 정기구독자가 되어 월 만 육천원을 매달 결제하게 생겼다. 돈까지 쓰게 만드는 글이라니. 어딘 당신..
그간 변변치 않은 재주로 글을 쓰면서 내 속의 것들을 표현해낼 때 오는 쾌감과 감동이 있었다. 내가 기억해내지 않았더라면 무의미했을 시간들이 나의 의식과 맞닿아 의미 있는 시간들로 변형되어 재해석될 때면 내 삶의 의미가 하나 더 추가된 것 같았다. 과거의 기억을 쓸 때면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눈을 감고 당시의 냄새 온도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리고 글로 써냈다.
그렇게 완성된 글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지난 기억을 써 내려간 글을 읽을 때면 과거에서 빠져나와 제삼자가 되어 나의 인생을 훑는 것 같았다. 그때의 어두움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도 받았다. 후련했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두고두고 보아도 좋았던 자식 같은 글들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유용한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냥 글도 매일매일 써내지 못하면서 거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유용한 글. 유용과 무용은 누가 정하는 건가. 그 또한 쓰는 이의 만족인지 아니면 독자의 판단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주일에 시사 주간지 하나 읽기 벅차고 한 달에 소설 한두권 읽기에도 벅찬 상황 속에서. 퇴근해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 까만 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루 속에서 꾸는 꿈치곤 과분하다.
치유와 위로의 영역에 있던 나의 글쓰기가 누군가에게 유용한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 되도 않는 소리라고 스스로 면박 주지 말고 그 마음에 고이고이 물을 주고 길러낼 거다. 그것이 싹이 터서 유용한 것이 될지 무용한 것이 될지는 몰라도 마음부터 꺾지는 말자고 되내인다. 갑자기 추워진 초겨울에 꾸는 한낱 꿈일지라도 읽는 이에게 꿈을 불어넣는 어딘의 글이 있어 좋다.
(사진은 추운 서울로를 알록달록 빛내준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