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읽고 쓰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오들오들, 수업이 끝난 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추위에 몸이 떨려 외투를 여민다. 그러나 나온 배 때문에 도저히 여며지지가 않는다. 팔짱을 껴서 바람이 들어오는 틈을 줄여보아도 불뚝 나온 배는 3월의 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는다. 매주 금요일, 만삭의 배를 하고서 회사가 끝나면 글쓰기 수업에 간다. 삼다에 간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태동이 심하거나 몸이 결릴 땐 앉고 서고를 반복한다. 어째 앉은 자세도 어정쩡한 게 수업 태도가 영 불량해 보인다. 힘들면 힘들다고도 할 수 있는 봄날의 이 수업, 삼다가 내겐 그리 배부를 수가 없다. 집에 가는 길이면 한껏 가득 채워진 부푼 맘을 세어보며 간다.
늘 무언가에 주리고 허기진 마음으로 살아왔다. 생계나 돈 버는 일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을 고민하고 생각하던 내게 세상은 ‘철학적이네?’ 혹은 여유 있다, 너.’라는 말로 판단했다. 그러다 나와 결이 비슷하고 돈 안 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쓰고 읽으며 자신을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는 내게 일상으로부터의 ‘환기’였다. 이들과 같은 책을 읽고, 주어진 주제의 글을 써 내려갔다. 동일한 것을 보아도 쏟아내는 것은 모두가 다 달랐다. 그 안에서의 또 다른 같음, 비슷한 다름을 발견했다.
특히 독후 과제를 하며 사유가 단단하고 촘촘한, 밀도 높은 책들을 읽었다. 나의 자아가 휘청거렸다. 읽는다는 말보단 정확히 말하면 그 책들에 의해 읽히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던 세상과 나에 대해, 내가 가진 욕망에 대해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흔들렸다. 사람을 흔드는 책이라, 책이 사람을 흔들 수 있는 존재던가, 신기함마저 들었다. 책을 읽은 후 글귀들을 적고 마음을 풀어내다 보니 마음은 자연스레 진공상태가 된다. 방금 전까지 하던 아이 영어 교육, 오늘 저녁 메뉴, 생활비 걱정이 자연스레 뒤로 간다. 무엇이 사람을 인간답게 하는지, 무엇이 사람에게서 인간다움을 앗아가는지, 인간성이 회복한 세상에 대해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삼다 독후 과제는 보통사람에게 과분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모두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다른 삶을 살아내지만 묘하게 닮은 글벗들을 보며 느꼈던 동질감. 그들이 써 내려간 글을 통해 먼저 알게 된 벗들의 얼굴을 처음 보았던 그 시간. 누가 누군지 혼자서 알아맞혀 보는데 얼추 답에 근접하여 쾌감을 느끼던 그날이 기억난다. 그들의 글과 삶, 얼굴은 그렇게 이어져있었다.
나의 글에 무어라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지우며 또 쓰고 썼을 벗들의 댓글에 뭉클한 감사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내 글을 읽고 댓글까지 다느라 너무 고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담도 있었다. 벗들의 글을 통해 봤던 사람들, 그들 자신, 그들의 부모, 그들이 마주하던 이들을 벗의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나를 발견하고자, 알아가고자, 그래서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자 지원한 글쓰기 공동체였다. 읽고 쓰다 보면 발견할 것 같았다. 유레카를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나와 인생, 세상사에 대해서 해답을 손에 쥘 줄 알았다. 늘 의미에의 배고픔을 가지던 내가 영원히 배부를, 포만감을 누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알고 싶어 지원하고 시작한 수업은 시작할수록, 읽고 쓸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나와 내 삶과 이 세상에 대해 알려는 시도는 과연 유효한가? 맞는가? 헷갈린다. 가진 알량한 앎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재단하고 판단할 수 있던 것도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이렇게 내가 얼마나 모르는 가를 알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읽고 쓰는 것을 제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세상은 삶의 방향,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의미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도통 허락하지 않는다. 읽고 쓰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게 한다. ‘지금 네가 이러고 있을 때냐고’. 그래서 읽고 쓰는 행위는 어찌 보면 이 사회에 대한 혁명이다. 내 삶의 혁명이었던 삼다, 그 혁명이 미완일지라도 계속해나가고 싶다
나를 바라보고, 나의 글에 반응해주던 글벗들과 원장님, 그 한 사람 한 사람 시선과 마음, 그 손을 기억한다. 그들이 심기어질 삶에서의 읽고 씀을 멈추지 않기를,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헛된 꿈을 잃지 않기를. 그 헛됨이 우리를 꿈꾸고 주제넘게 하고 과분한 생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