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Apr 02. 2022

기쁨이 있는 삶으로의 갈망

박완서의 <나목>


박완서 선생님의 등단작 <나목>을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상황에 몰입하다가도 자꾸만 이 이야기 너머의 작가에게로 마음이 이끌린다.


앞서 읽은 작가의 두 작품(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모두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이 두 편을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내려놓은 채 기억에 의존하여 썼다고 한다.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인물로 놓고서 읽어온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나목> 에서도 작가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쓴다. 그것이 문학작품을 대하는 좋은 자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품 너머의 작가를 보려는 생각이 기웃거릴 때면 몰입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곡을 찌르는 듯한 명쾌하고 적확한 감정묘사, 우리말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듯한 아름다운 어휘 표현, 후반까지 긴장감을 끌고 가져가는 힘을 지닌 이야기였기에 몰입이 어렵든 그렇지 않든 한달음에 읽어낼 수 있었다.


한국 전쟁으로 아들을 둘이나 잃고 생의 의지를 상실한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경아. 그가 일하는 곳은 미군 물자가 유통되는 PX다. 초상화부에서 일하는 그녀는 이곳에서 옥희도씨를 만난다. 옥희도라는 인물은 실제로 화가 박수근을 모티브로 그려졌다. 초상화부에서는 미군이 요청하는 가족이나 연인 초상화를 스카프나 액자에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화가들이 있다. 전쟁 속 ‘불우한 예술가’들이다.


경아는 손님에게 호객행위도 하고 그림과 관련한 민원처리도 하고 초상화부 전체 살림을 맡고 있다. 몇몇 화가들 그 가운데 옥희도 씨가 있다.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는 단연 두드러진다. 한바탕 욕이라도 내뱉어 시원하게 세상을 욕하는 이들과 다르게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휘장이 가려진 창문을 한동안 바라보며 선량한 얼굴을 갖는 일이다.


스무살의 경아는 금새 그에게 매료되었고 이미 아내와 자녀가 있는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른다.


옥희도씨에 대한 경아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성별이 다른 이성간의 사랑일까. 예술가에 대한 어떤 동경일까. 아니면 경아 스스로의 살아있음에 대한 표현 혹은 사랑하고픈 욕망의 발현.


소설 초반부터 오빠를 둘이나 잃은 경아와 그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은 어머니. 오빠의 죽음이 본인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세차게 꿈틀대는 마음을 가졌던 경아다. 그 마음을 어디에도 붙이지 못한 채 세상을 냉소적으로만 보던 그녀가 옥희도씨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고픈 욕구로 맹렬하게 타오른다.


“가슴 밑 명치께가 요사이 늘 그렇듯이 체증 비슷한 거북함으로보깨기 시작했다. 나는 엎드린 채 그 밑에 베개를 괴고 지그시 눌렀다. 난 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랑하고픈 마음이 얼마나 세차게 꿈틀대고 있는지를.
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인가?”

- <나목> P.24


어느날 옥희도씨의 집에 방문한 경아는 어둑한 작업실에서 그의 기갈를 마주한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화가, 본인의 예술이 아닌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사람.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삶. 반쪽짜리 예술이라도 그것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이를 보고 어쩌면 경아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집안의 모든 남자들이 없어지고 죽지 못해 사는 어머니의 그늘 가운데에서도 경아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으로의 기쁨을 쟁취하고 싶던 것이다. 가족의 불행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껴안고서라도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생의 본능. 밝고 환한 삶으로의 집념이 경아를 휘감는다.


“그는 ’화안한’을 어쩌면 그렇게 풍부한 감정을 곁들여, 고혹적으로 발하는지 나는 단박에 가슴이 울렁거려왔다. 빛과 기쁨이 있는 생활에의 갈망이 세차게 고개를 들었다.”

- <나목> P.24


중반을 훌쩍 넘어서야 오빠들의 죽음과  전말이 밝혀진다. 어머니와의 서먹한 관계와  경아가 자신을 그토록 싫어할 수밖에 없었는지, 세상에 대해 냉소로 일관했던 경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코 도망가지 않은 채 그 죽음이 ‘나 때문이었을까’라는 질문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경아의 집념에서 작가의 모습을 본다. 상처를 마주하고 기록하는 이의 힘을.


읽는 내내 경아와 작가의 경계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소설속 인물을 그대로 보지 못한 채 작가의 모습을 자꾸만 투영하려 했다. 작품 속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작가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비극의 시대를 살아내며 삶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못했던 소설 속의 경아. 그에게서 작가로 머물던 시선이 이젠 나를 응시한다. 나로 하여금 이 세계 속에서 발을 디디고 살게 하는, 나의 삶에 기쁨으로의 갈망은 무엇인가. 무언가를 사랑하고 마음을 쏟는 나의 모습 그 깊숙한 곳에는 어떤 갈망이 숨겨져있을까. 그것을 찾아 헤매고 질문할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늘하고 달콤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