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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21. 2024

그때 나는 아홈살이었다

초등학교 전 학년을 통틀어 내가 기억하는 담임의 이름은 단 한 명이다. 그는 늙은 남자였다. 신체 검사를 할 때면 반 아이들의 웃통을 모두 벗긴 채 줄을 세웠다. 눈꺼풀이 쳐져 반쯤 뜬 눈으로 아이들의 몸을 유난히도 꼼꼼하게 살피는 그의 벌건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그러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고 그 모습을 보러 아이들이 몰려왔다. 오육학년 언니오빠들은 우리 교실 유리 창문에 달라붙어 우리를 쳐다봤다. 유리창에 달라붙는 사람 수가 많아질 때마다 헐거운 창문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정신없이 났다. 늙은 남자는 당장 교실 문을 열고 나가 킬킬거리며 손가락질하는 아이들을 혼낸다거나 교실로 올려보내는 일이 없었다. 마치 창문 밖의 눈동자들이 없는 것처럼. 까치발을 들고서 발가락에 하중이 쏠려 자꾸만 발꿈치를 내렸다 들었다 하느라 창문 아래로 얼굴이 사라졌다 올라왔다 하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지독한 무심함이었다. 어느 날은 수업이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렸고 책상에 앉은 작은 아이들 앞에 선 그가 말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것을 배울 거야. 너희가 배우는 수학이나 국어보다 더 쓸모 있는 거란다.

바지에 지퍼가 달린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나와보자. 나오기가 쑥쓰럽냐? 저기 너희 두 명 이리 나와 봐라.

옳지. 지퍼가 달린 바지를 입었구나 잘됐어.

자 애들아 봐라 남자 바지의 지퍼는 오른쪽을 향하게 되어있다. 보이냐? 자 이번에 너 이리와 봐라.

그는 커다란 손을 남자아이의 바지 지퍼로 가져가더니 그것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그 부근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이번에는 여자 아이 바지로 손이 이동했다.

여자는 다르지. 여자는 지퍼가 왼쪽을 바라본다. 내가 보여주마.

여자의 바지는 왜 왼쪽에 지퍼가 달렸는지 크면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아까처럼 여자애의 바지 지퍼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을 반복했다. 네다섯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마다 그 아이의 팬티, 분홍색 배경 위에 그려진 하얀 토끼의 일그러진 귀가 보일락말락 했다. 분홍색 팬티가 보이자마자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표정이 지금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 아이의 얼굴은 토끼의 구겨지고 일그러진 귀로 대체된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기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알려줬을 거라는 생각. 동시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었던 기괴함과 불편함. 지퍼를 더듬는 손과 움찔대던 두 아이의 모습은 내 모든 시기에 끈덕지게 달라붙어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여자의 바지 지퍼가 왜 왼쪽에 위치해 있는 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 이유가 필요한 순간이 정말이지 단 한번도 없었다.


4교시가 끝나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맡은 교실 앞문의 틈새에는 유난히 먼지와 모래가 많이 끼어 있었다. 작은 손으로 빗자루 날의 방향을 틀어가며 먼지를 없애려 애를 쓰고 있던 때였다. 그가 내게 왔다. 네 엄마는 요즘 뭐 하시니. 집에 계시니. 너희 엄마 학교 언제 또 오신다고 했니. 한 달 전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자 화장실에 있던 엄마가 큰 소리로 나를 맞이한 적이 있었다. 민주야 엄마 화장실에 있어. 오늘 너희 담임 면담이 있어. 가방을 벗어두고 엄마가 있는 화장실로 가 단숨에 발을 문턱 위에 두었다. 화장실 나무문의 은색 손잡이에 몸무게를 싣고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자 그 움직임이 만들어낸 바람에 거울을 보던 엄마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휘날렸다. 금방 올게. 할머니랑 집에 있어. 준비를 다 한 엄마는 마무리로 찐득한 향이 나는 스프레이를 머리 주변에 가득 뿌렸다. 화장실 전구에 비쳐 엄마가 뿌린 스프레이 입자 하나하나가 가득 찬 게 보였다. 꼭 비가 오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집에서 나가기 직전 식탁 위에 놓인 흰 봉투를 챙겼다. 봉투를 열어서는 안에 든 퍼런 만원짜리를 새더니 다시 그 봉투에 넣은 후 봉투의 뚜껑과 몸체가 맞닿는 곳에 까만 사인펜으로 하트를 그렸다. 엄마는 그 봉투를 들고서 늙은 남자를 만나러 갔다.


그날 이후 그는 엄마를 종종 찾았다. 엄마 어디 계시니. 요즘 뭐 하시니. 또 언제 오신다고 들은 것 없니. 그 말을 전하면 엄마는 아이고 또 학교 갈 때가 되었나 보다, 하면서 흰 봉투와 현금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를 갈 때 엄마가 흰 봉투를 챙기는 의아함이 풀린 건 내가 사오학년쯤이 돼서였다. 학교에서는 ‘불법찬조금 및 촌지 없는 학교! 투명하고 깨끗한 학교를 우리 모두의 힘으로 만듭시다!’ 라는 가정통신문을 나눠주었다. 엄마가 봉투 입구에 하트를 그린 그 봉투가 돈이 든 돈봉투였음을, 내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뇌물, 촌지를 의미함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가 엄마를 왜 그렇게 찾았는지도.


어릴 적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배앓이를 한 번씩 했다.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날이 쌀쌀해지는 듯하더니 처음으로 반팔에서 긴팔을 입고 온 날은 배가 많이 아팠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여기서 해줄 것은 없으니 양호실로 가거라. 양호실은 같은 층의 맨 끝에 있었다. 실내화를 질질 끌고 배에 손을 얹은 채로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양호실을 지키던 여자 선생은 그의 손바닥을 내 이마에 얹었다. 그의 손은 가벼웠으며 차가웠다. 열은 없네, 누워있어 침대에. 한 시간만 이따가 내가 깨워줄게. 너무 심해지면 엄마 불러줄게. 엄마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나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는 일은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실내화를 벗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막상 누우니 배가 덜 아픈 것 같았고 그렇다고 바로 교실에 가자니 꾀병을 부린 모양새가 될 것만 같았다. 편하게 누워서 까칠한 하늘색 이불을 덮고 있자니 쿵쾅쿵쾅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내 주위를 감싸고 있던 허연 커튼이 젖혀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눈을 꼬옥 감았다. 옆으로 누워있는 나의 뒤로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숨 냄새가 났다. 내가 아는 냄새였다.


5반 선생님이시죠? 이끼 온 학생 거기 누워있어요. 좀 더 재운 후 교실로 보내려던 참이었어요.

여자의 말이 커튼 밖에서 들렸다. 그가 내 침대에 몸을 바짝 붙이느라 그의 무거운 하중이 실려 바퀴 달린 침대가 조금 움직였다. 허리를 숙인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담배 냄새가 더 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 손이 내 얼굴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담배 냄새가 밴 두툼한 손으로 내 양 볼을 한 번씩 만지더니 그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돌린 후 내 입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그는 곧장 커튼을 치고 나갔고 곧이어 양호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입이 닿았던 내 입술에는 끈적한 침이 묻었고 얼어붙은 나는 그것을 닦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난 후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침대 아래에 놓여있는 실내화를 대충 구겨 신고서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어른한테는 언제나 인사를 하라고 배웠으니까. 그날 이후 한동안 나는 그 어디에서도 편하게 잠에 들지 못했다.


말이 많지 않았던 그는 종종 우리를 때렸다. 숙제를 내주고도 검사를 잘 하지 않았지만 검사를 할 때면 숙제 안 한 아이의 머리를 교과서로 내려쳤다. 교실에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면 교실 앞으로 나오게 한 후 그 두툼한 손, 손덩이라고 부를 법한 그것을 가지고 관자놀이를 내려쳤다. 그럴 때면 아홉 살의 작은 머리가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치 내가 맞은 것처럼 아프고 무서웠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나 역시 그의 손두덩이에 둔탁하게 맞은 적이 있다. 이십칠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왼쪽 귀가 멍멍해지는 것만 같다. 얼얼한 뺨을 가지고 울지도 못한 채 그저 손을 뺨에 둔 채로 제 자리에 가서 앉아야 했던 그 때의 그 견뎌냄 덕분에 나는 쉽게 울지 않는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쉽게 울지 않는 아이. 아이가 쉽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아홉살이었다.


그에게 맞게 된 경위는 이러했다. 그날 나는 부반장이었던 남자 아이와 다투었다. 수업시간에 소란을 피웠다며 그는 나와 남자 아이 둘을 교실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는 왜 싸웠는지와 같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디. 감히. 부반장한테, 여자애가.

철썩.

멍멍한 귀와 얼얼한 관자놀이. 그때 나는 아홉살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처음 괴롭혀 본 것도 그 때, 그 교실 안에서였다. 그때 그 마음이 좋아했던 아이에 대한 짓궂은 표현이었는지 그저 그를 괴롭게 만들 심산이었는지는 명확하게 구분이 가질 않는다. 지금은 이십칠년이 지나 있으니까. 다만 내가 하는 행동 뒤에는 하지 마, 아 제발, 이라는 그 아이의 목소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누군가 교실에 침을 뱉었고 그 통로를 지나가던 나는 그것을 모른 채 밟았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짝꿍이었던 김용훈이란 아이가 내 실내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 더러워 신발에 침 묻었대요. 그의 도발을 어떻게 처리하여 반응할지 생각하느라 잠시 주춤했으나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나는 그 아이가 가리킨 내 왼쪽 발을 들어 올려 그 아이의 의자에 대기 직전이었다.


그래 침이다. 그런데 이 발로 네 의자 밟으면?


전세는 금방 역전이 되었다. 방금까지 나를 가리키며 웃던 그 웃음이 싹 지워진 얼굴로 그 아이는 애원하고 있었다. 아 하지 마 제발, 제발이야.


누군가를 도발할 줄은 알았으나 플랜 에이와 비를 갖지 못한 착한 아이. 내 얼굴과 하얀 실내화를 번갈아 보며 그 아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 제발. 겁에 질려 일그러진 얼굴. 내가 네 의자를 밟으면? 이란 말에 그 아이가 할 줄 아는 말은 제발이라는 말이었고, 그렇게 두어 번 대화가 오간 후 그 아이의 부탁에 따라 다리를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내 옆자리인 그 아이는 자리에 앉은 뒤 그날 수업 내내 내 쪽으로 아예 몸을 돌리지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 못하는 그 아이의 비스듬한 왼쪽 몸. 다른 쪽으로 돌린 그 뒤통수를 보며 나는 안도했다. 누군가가 내게 빈틈을 보였고 내가 그 빈틈의 순간을 포착했다는 사실은 꽤나 즐거웠다. 나는 누군가가 내게 애원하는 순간에 어떤 희열을 느꼈음이 분명했다. 그 후로도 그 아이는 늘 내가 예상한 만큼 행동했다. 내가 그의 필통을 하늘 높이 들면 아 제발, 의자에 앉으려는 아이를 보며 그의 의자를 두 손으로 집는 제스쳐만 취해도 아 제발. 나는 행동하고 그 아이는 아 제발. 매우 단순한 문법이 그 아이와 나 사이에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4교시가 끝났는데도 선생님이 종례를 하지 않은 채 교탁에 서있었다. 그때 앞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어떤 아줌마가 들어왔다. 그 아줌마는 박스를 들고 와 힘겹게 내려놓으며 맨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나눠줬다. 애들아 뒤로 돌려줄 수 있겠니? 친구들이랑 나눠 먹게.

애들아. 오늘 용훈이 엄마가 오셨어. 너희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으셨대.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나는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기분으로 햄버거의 포장을 벗겼다. 방금 전까지 햄버거를 나눠주던 아줌마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네가 민지니?

아니요 민주요.

아참, 민주야. 용훈이 짝꿍이지? 용훈이랑 친하게 지내줘. 용훈이가 키도 조금 작고 그래서 아줌마가 걱정이 많아.


그 아줌마는 내 옆에 김용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훈이가 키도 작다는 이야기를, 친하게 지내 달라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다음 날 우리는 짝꿍을 바꾼다는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용훈이는 1분단과 4분단으로 멀찌감치 떨어지게 되었다. 1분단에 앉아 4분단에 앉은 용훈일 쳐다보았다. 그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건물 외벽에 위치한 건물 끝 쪽의 교실에서 우리는 학기 초의 쌀쌀함을 교실 가운데 켜진 기름 냄새가 나는 석유난로와 함께 버텨냈다. 여름에는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공기를 코로 들어 마시고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이겨냈다. 으슬으슬 추웠으며 찌는 듯 더웠던 교실, 그리고 다시 쌀쌀한 교실에서 학기가 마무리 될 때까지 늙은 남자는 내게 와 엄마를 찾았다. 엄마 어디 계시니. 요즘 뭐 하시니. 또 언제 오신다고 들은 것 없니. 나는 봄방학을 맞아 열 살이 되었고 곧 3학년이 될 터였다. 나는 더 이상 선생님이 엄마를 찾는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 나는 우리 집에서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있는 다세대주택에 사는 한 남매와 친해졌다. 엄마 말로는 그쪽 집들은 이 동네 집들보다 더 싼 집이라고 했다. 여기 아랫동네 사는 사람들은 이사 오고 얼마 안 돼서 금방 나가더라. 엄마가 동네 아줌마에게 이런 말을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곳의 일 층에 사는 정민이는 나와 동갑이었으나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고 동생은 한 살 어렸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땐 그 집으로 놀러가도록 보내주지 않았지만 엄마가 없을 땐 이야기가 달랐다. 할머니는 내가 잠깐 놀다 온다고 하면 꼬치꼬치 캐묻는 것 없이 몇 시 전까지만 오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엄마가 술을 먹고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점심을 먹은 후 오후까지 나는 정민이네로 갔다. 여름방학이었다. 정민이네는 어른이 없었다. 대신 장난감이 많았는데 그것도 시시할 때가 되면 정민이는 물놀이를 하자고 했다. 정민이는 화장실에 옆으로 세워져 있는 큰 대야, 어린아이 둘셋이 들어갈 수 있는 큰 통을 아래로 놓은 후 그 안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어른도 없이 물놀이를 할 생각을 하는 정민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이 받아지자 정민이는 자기 옷을 벗고 여덟 살 남동생의 옷을 벗겨 대야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둘을 보고 나 역시 옷을 벗고서 그 대야로 들어갔다.


너는 엄마 아빠 없으면 점심 어떻게 먹어?

엄마가 나갈 때 참치 뚜껑 열어서 랩으로 씌워서 가거든. 참치 통조림 같은 거 열다가 다치지 말라고.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다른 반찬으로 동생이랑 같이 먹으면 돼.


그 아이는 옆에 있던 비누를 물속에 넣고 손을 문질렀다. 물은 금방 뿌옇게 변했고 손에 남은 미끌미끌한 비누거품을 후 하고 불자 정말로 비눗방울이 화장실 안에 날아다녔다. 그렇게 우리 셋은 어른 없는 집에서 여름의 열을 식혔다. 어른이 된 나로서는 열 살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어른 없이 아이 셋만 화장실에서 노는 그 장면이 도저히 납득이 어렵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때의 우리는 자주 웃었고 즐거웠다. 안전하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위험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른이 있는 집 안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시야 안에 있다 할지라도 정서적으로 방임되는 것은 비슷했으니까. 대야에 들어가기 전 정민이는 내 머리를 높게 위로 묶어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물놀이할 때는 머리를 위로 높게 묶으라고. 그래야 머리가 안 젖는다고.


어른 없는 우리만의 여름을 보내던 중 나는 정민이네 집 책상, 모든 잡동사니와 옷들이 가득 쌓인 혼란스러운 그 책상 위에 놓인 다마고치를 보았다. 테두리가 까만 다마고치 게임기. 계란형의 게임기 안에는 까만 사각형의 점들이 모여 만든 토끼, 강아지, 공룡처럼 동물이 살고 있었다. 그것들은 똥을 싸기도 했고 배가 고프다고 알람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 기계가 보내는 알람에 따라 충실하게 똥을 치우고 먹이를 주면 어느새 커다랗게 변했고 그러면 끝나는 게임이었다. 나는 그날 정민이네 책상 위에 있는 다마고치를 내 오른쪽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날은 남은 방학의 모든 날을 바꿔놓는 날이 되었다. 나 엄마가 오늘은 일찍 오랬어.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그날도 역시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없으니까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정민이네로 온 것이니까. 집에 오는 내내 다마고치가 든 주머니가 너무나도 걸리적거렸다. 집에 오고 나서도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참이나 뛰는 가슴은 좀처럼 안정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가 보는 그 드라마를 같이 집중해서 볼 때만 삼십 분 남짓 주머니에 든 다마고치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느지막한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민주야 나 정민인데 너 혹시 우리집에 다마고치 못 봤어?

응 못 봤어

안녕 민주야 나 정민이 엄마야. 혹시 너 우리집에 있는 다마고치 게임기 못 봤니

네 못 봤어요.


전화가 끊어졌고 나는 내가 훔친 것이 다마고치뿐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훔친 그 다마고치를 개학한 뒤 우리 반 어떤 여자애에게 주었다. 사실 내게도 엄마가 사준 다마고치가 있었다. 어떤 생각으로 정민이의 다마고치를 훔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좋은 게 하나 더 있다면, 내게 이득일 거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을까. 내가 주는 다마고치를 받아 든 그 여자애는 목소리가 걸걸하고 늘 쉬는 시간이 되면 찾아오는 아이들로 자리가 북적였던 아이였다. 특별해 보이던 그 애에게 선물을 준다면 나도 저 무리에 낄 수 있을 거란 생각 혹은 그 아이가 내게 좀더 호의적으로 변해서 얻어지는 그 안정감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홉살 여자 아이가 아홉살 여자 아이에게 주는 안정감은 무엇이어야 했을까. 모르겠는 것들 사이에서 분명한 것은 내가 다마고치를 훔친 이후 나는 정민네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일을 하느라 집에 여덟 살 아홉 살 아이들을 남겨놓을 수밖에 없었던 집. 늘 문이 활짝 열려 있던 그 집의 현관에 쳐진 발을 올리고 내가 신발을 벗으면 누나가 와서 너무 기뻐! 하며 팔짝팔짝 뛰던 애교 많던 정민의 동생. 그 남자애가 나를 안아줄 때면 그런 동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었다.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준 정민이. 어른 없이 밥을 챙겨 먹는 법, 어른 없이 노는 법, 수영장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물놀이를 하는 법, 물놀이를 할 때 머리를 묶는 법. 나는 그 아이들을 더 이상 만나러 갈 수 없었다. 일부러 그 집 앞을 피해 다녔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실제로 정민이와 그의 부모를 마주친 적은 없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동네 슈퍼에서 정민이네가 이사를 갔다는 이야길 들었다. 이제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더 이상 집에 올 때 그 집 앞을 지나치지 않으려 먼 길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가졌던 지독하게 어리석었던 순간. 하지만 이십칠 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내 도둑질은 지금껏 내게 붙어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자신이 맘에 들지 않을 때, 남들 앞에서 뱉어낸 말과 행동을 주워 담고 싶을 때면 그 도둑질이 내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말한다. 너는 원래 그런 애야. 나쁘고 못된 애.

 

정민이와 남동생, 김용훈, 2학년 5반 교실, 교실 가운데 석유난로와 기름 냄새.

 

그것들을 떠올리면 나는 우중충해지면서 해가 막 자취를 감추는 시 대의 어둑한 거실이 떠오른다. 갑작스레 사라진 빛과 갑작스레 찾아온 어두움. 그것들 사이에 꼼짝없이 끼인 나는 다시금 아홉 살이 된 것만 같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나는 울적해진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3학년이 되었어도 엄마가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것은 똑같았을 것이고 술을 마시느라 집을 비운 횟수, 그래서 할머니랑 자야만 하는 빈도수는 비슷했을 것인데 내 기억 속에서 아홉 살은 유난히도 흑백사진 같다. 수학익힘책 32쪽까지 푼 다음, 엄마 싸인을 받아오라는 선생의 말에 할머니에게 싸인을 부탁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꼭 엄마의 싸인을 받아야 하는 줄 알고 불안에 떨었던 아이. 엄마가 술에 취해 싸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느꼈던 절망감. 어리석을 정도로 어렸던 아이. 나는 아직 그 느지막한 오후에 끼어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중충한 교실의 늙은 남자와 시끌시끌한 아이들. 관자놀이를 맞아 휘청였던 아이들의 작은 몸.

오른쪽 주머니에 든 무거운 다마고치

엄마의 싸인을 대신하려 애를 써봐도 엄마의 싸인이 한자라 결코 따라하지 못해서 눈물을 보였던 아이. 어른들이 만들어 낸 틈과 공백을 제 손으로 메우기 위해 바빴던 아이.


해가 가려진 어둑한 오후, 나는 교육청에 민원 하나를 넣었다. 02-1396을 눌렀다. 잠시 후 콜센터의 상담원이 연결되었다.


스승찾기 민원 맞죠? 나이가 많으셔서 아직 재직 중은 아니실 것 같은데 꼭 찾고 싶거든요. 2학년 5반 선생님이요. 꼭 좀 찾아주세요. 제가 할 일이 있거든요. 이름음 김장순이에요. 김장순이요. 김장순.

네 알겠습니다. 초등학교가 어느 소재지였죠? 입학연도는요? 학생이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성함을 알려주세요. 그러면 업무일 기준 5일 이내로 스승분에게 연락처를 전달해드릴게요. 선생님께서 제자분의 연락을 희망하시는 경우 연락이 오실 겁니다.

네 기다릴게요, 기다릴게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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