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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22. 2024

작가가 되고 싶어서요

 ㅡ민주님 한번 만나요.


 그에게서 메시지가 온 건 지난 주였다. 퇴근 후 서울역 주변 식당가가 모여있는 오피스 빌딩으로 갔다. 이년 전 그를 만난 곳이다. 그때 우리는 저녁으로 카레를 먹었다. 중년 부부가 운영하던 카레집은 이제 없어졌고 그 자리엔 문에 블루리본이 붙어있는, 삼청동의 유명한 칼국수집 분점이 들어서 있었다. 오피스 빌딩 특성상 퇴근길에 사람들이 빠진 탓인지 식당 안은 한산했다. 그곳에서 그와 나는 각각 칼국수와 만둣국을 시켰다. 그는 아버지의 병간호 때문에 내가 보내준 원고를 바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늦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오늘은 자신이 근무 중인 학교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었는데 사생팬들이 몰려 오는 바람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고 처리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는 이야길 덧붙였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여름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책방에서 소규모 북토크를 한다길래 생전 모르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책을 주문해서 그가 쓴 에세이를 읽었다.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8년도에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된 후 세 편의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펴냈다. 북토크를 할 당시에는 영화 관련 일도 병행하며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전업 작가가 아니라 생업을 병행하며 창작활동을 한다는 그의 이력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모임의 후반부에 한 지인이 나를 가리키며 이 친구가 글을 쓴다며, 나중에 시간 되시면 이 친구 글도 읽어주시고 도움도 달라는 말을 큰 소리로 그에게 전했다. 북토크가 끝나고 얼떨결에 그에게서 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가 적힌 메모를 받았었다.


ㅡ민주님이 보내주신 원고는 꼼꼼히 다 읽었습니다. 출판사에 투고하고 거절을 받고 상심이 컸겠어요. 답답하셨으니 제게 또 이렇게 연락을 주셨겠죠. 우리가 따로 만나는 건 두 번째가 맞죠? 북토크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창작활동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만났었고, 오늘이 두번 째네요. 주변에 이런 조언을 구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저한테 연락을 주시는 걸텐데 제가 답변이 늦었습니다. 투고를 하셨다니 책 출판을 염두하신 것 같아요. 제가 남자니까 여성들은 이 글을 어떻게 읽는지가 궁금해서 주변에 출판사 여성 대표님들께 원고를 보여드렸어요. 오늘 그 분들의 피드백도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 전에 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민주님은 글을 쓰는 목적이 뭔가요? 책 한 권 출판하고 끝? 내 속에 진 이 응어리를 풀어내려고? 아니면 돈과 성공?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한 질문이었다. 지난 3년 간 글방에 속해 매 주 한 편의 글을 써 왔던 시간과 동시에 함께 글을 썼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며칠 전 글방에서 글을 업로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작성자로 구분자를 놓고 내 닉네임을 검색하자 62편의 글이 나왔다. 62편의 글과 62번의 토요일이 지나온 흔적. 그것이 나의 글쓰기였다. 토요일에 만나자는 친구들의 제안에 나 글방 때문에, 5시 이후는 어때? 라거나 금요일 저녁은 글 마무리를 해야 해서. 라는 답변을 해온 지도 3년이 되어간다. ‘글방을 한다, 글방을 다닌다’라는 말. 그 말이 나를 어떻게 지탱해주었는지, 그 말이 내게 얼마나 반듯하고 푹신했는지. ‘글방을 한다’라는 말 속에 내가 담은 의미와 다짐.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글도 쓰는 사람이에요. 생계 때문에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다니지만 삶에서 내 스스로 하고 싶어서 스스로가 납득해서 하는 것쯤 하나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글이에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에요. 이 의미가 단순히 토요일에 시간 있느냐는 물음을 던진 상대에게 전달 됐을 리는 만무하지만 ‘글방 다녀요’ 라는 대답을 할 때마다 내게 다시금 돌아오는 말들. 그래 나는 쓰는 사람이지 글 쓰는 시간을 위해서 약속을 미루거나 시간을 조정하는 사람이지, 좋아하는 일을 잘 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내게 있어 든든한 비빌구석이 되었다.


 월급날이 되거나, 회사 복지로 인한 혜택을 누릴 때면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하고 싶다가도 이삼 년 주기로 바뀌는 대기업의 경영진. 그들이 누구냐에 따라 함께 바뀌는 경영방침. 그 가운데에서 내가 하는 일은 자주 바뀌는 그들만큼 기조가 달라지거나 새로 생겼고, 그러다가도 언제 있기라도 했냐는 듯 폐기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실제로 고객 경험을 개선한다든가 혹은 회사의 실적을 높인다든가 사회를 좋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달랐을까. 그저 내 윗사람의 승진을 돕는다거나 언젠가 금방 사라질 경영진의 눈에 띄기 위한 사업 보고서 작성과 눈치보기. 회사 일에 열과 성을 다 할 때면 리더의 인정과 그로 인한 뿌듯함이 따라오긴 했으나 사실 내면 깊숙이 꽂히는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거기에 더해 퇴근 후 곧바로 육아로 전환되는 삶의 패턴이 주는 고단함.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시끄럽지만 평온했고 정신없었어도 뭉클했으나, 그들의 양육자인 내게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는 무겁기만 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클수록 말과 행동에 신중함을 기해야 했고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는 노력이 필요했다. 일터에서 느끼는 허무함이 커질수록, 육아를 하면서 찾아오는 고단함이 커질수록 읽고 쓰는 일에 더 매달렸다. 그래서 워터파크로 가족여행을 가서 래쉬가드를 입은 채로 비치타월을 두르고 푸드코트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켰고, 여름 휴가를 떠나는 서해안 고속도로 위에서도 두 귀에 에어팟을 꾸욱 집어 넣고서 줌에 접속했다. 고속 도로 위 어둑한 터널을 지날 때마다 합평하는 동료들의 말소리가 조금씩 끊겼던 기억. 맹장염이 의심돼 찾은 세브란스 응급실에서도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추며 두 시가 되자 줌에 접속했던 일. 복부 CT촬영 때문에 정맥으로 투여된 조영제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며 아랫도리에 불타는 듯 뜨거웠던 감각과 함께 들리던 내 글에 대한 합평.


ㅡ민주님, 뭔가 지금 많은 생각이 스치시는 것 같은데요.


ㅡ사실 제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자기 발설이었어요. 답답했으니까요. 답답해서 쓰다보니 엄마 이야기가 흘러나왔어요. 또 회사 다니고 아이를 보니 내가 해야 할 일만 하고 살고있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 자신에 대한 정성? 열심? 이라고 생각한 것도 같아요. 그래서 글방에 들어가서 글도 쓴 거구요. 작가님 말대로 저는 글 써서 책을 출판하고 싶어요. 성공과 인정. 그것들이 있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창작활동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알지만 그것이 저에게 주는 효용들.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누군가를 글로 그려 내려다 그 사람과 마주하고 또 포개어지면서 열리게 되는 어떤 문, 그 문으로 들어가서 느끼는 감정들. 이런 것들을 저는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요. 저는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ㅡ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물어볼게요. 민주님은 쓰는 글에 살짝 거짓말을 얹을 수 있나요? 그러니까 기억을 쓰면서 어쩔 수없이 기억이 안 나는 부분들을 재구성하는 작은 부분 말고요, 없던 캐릭터와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나요?


ㅡ그건 잘 모르겠어요. 쓴다고 해서 잘 써질지도 모르겠구요. 예전에는 허구를 섞는 일은 나 자신과 글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최대한 제게 벌어진 일을 증언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만약에 허구를 더하는 일이 저의 창작활동을 길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면,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럼 됐네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름을 대면 바로 알 수 있는 메이저 출판사 열 곳에 ‘투고 합니다’ 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낸 게 작년 12월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민주입니다.’ 라고 시작되는 메일에는 약 일곱 편의 PDF 파일을 담았다. 그간 글방에서 써온 글을 몇 개 골라 퇴고하여 맞춤법 검사를 마치고 메일을 보냈었다. 짧게는 삼사일 뒤, 길게는 삼사주 뒤에 답변이 왔다.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모쪼록 좋은 원고가 더 좋은 기회를 만나 빛을 발하면 좋겠다는 말들로 에둘렀지만 요는 한 가지였다. 우리와는 출간 방향이 달라 출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글이 내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마치 내가 낳은 자식 같아서, 글에 대한 거절이 내 자신에 대한 거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달을 시름시름 앓았다. 기획서를 쓰지 않았다거나 내 메일이 너무 성의가 없었을까, 그보다 내 글 자체에 매력이 없는 걸까, 거절의 이유는 찾고 또 찾아봐도 차고 넘쳤다. 3년 동안 쓴 글 중 좋은 글을 모으고 모아 투고했으나 출간 거절이 내 3년 글방의 성적표인 것만 같았다. 열 개의 거절이 메일함에 모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 한민주 입니다. 출판사에 투고했던 글을 보냅니다. 글을 보신 후 조언을 구하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ㅡ그럼 허구를 넣을 수 있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거죠? 출판사 대표님이 글의 문장력과 소재가 좋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이 글을 가지고 에세이로 출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국의 출판 시장은 이미 인구도 적은 상황에서 점점 책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아실 거에요. 오은영 박사나, 손흥민 아버지나 아이돌 같이 소위 말하는 인플루언서나 셀럽들의 글이 아니면 잘 보지 않아요. 민주님이 쓰고 싶어하는 중독자 가정의 이야기도, 민주님이 중독의 권위자나 이미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찾을 확률이 적어지겠죠. 만약 글이 좋아서 입소문을 타서 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출판사들은 모험을 하기 싫을 거에요. 에세이보다 소설 공모전이 많은 건 아시죠? 왜냐면 소설이 돈이 되니까요. 나중에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소설의 경우 완성형이 아니어도 소재나 캐릭터의 독특성과 시사점을을 보고 출판사가 픽을 하고 출판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아 그리고 한국 출판계는 아직도 배경과 출신이 중요해요. 투고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계약 시 출판사와 동등한 관계를 갖기도 어렵고요, 공모전을 통한 등단이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내게 청소년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중독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의 이야기는 시의성이나 이슈성이 있다고. 청소년 소설은 여러 장르 중 가장 수요가 많은 장르라는 말을 덧붙였다.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순간 수백개의 도서관에 책이 진열되기도 하고, 수업의 보조교재로도 쓰인다며, 사례로 영화화 되었던 완득이 이야기도 했다. 소설을 배워본 적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나는 소설은 문창과 나온 사람들이 쓰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했다.


ㅡ문창과를 나오지 않아도 소설은 쓸 수 있어요. 그 친구들 글 잘 쓰죠. 저도 어쩌다 초빙 받아서 문창 수업을 나가보면 느껴요. 최근에 심사위원을 본 공모전에서도 그랬어요. 매끄럽고 흠잡을 곳이 없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매끄럽지 않고 흠 잡을 곳이 많아도 묵직한 한방과 실제 경험에서 나오는 어떤 절절함과 현장성. 그런 것들이 심사위원과 편집자의 눈에 뜹니다. 민주님 원고에는 글방에서 다져온 문장력과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한 구력이 보여요. 캐릭터와 사건에 대해 좀더 공부해보고 시놉시스를 써보세요.


 그의 말에 ‘써볼게요’라는 답이 아니라 그저 아하하, 하는 그니까 눈은 그대로 있고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순간 어떤 사람들이 스쳤다. 이슬아와 조승리와 하재영, 은유와 홍은전. 그들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민주? 내가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책장에서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에 꽂아두었던 책을 쓴 여자들. 시장이 좁다, 돈이 되지 않는다라는 논리였다면 내가 읽을 수 없었던 책들. 소설 작법을 배워보지 못한 내가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와는 별개로 그의 말을 듣고 그가 권하는 장르를 쓰는 것이 이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는 이 사회의 논리를 공고하게 하는 돌담, 그 돌담의 돌 하나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선의를 담아 내게 이야기 하고 있었고 생업을 유지한 채 등단 작가로 꾸준히 활동하는 그가 하는 제안은 내게 매력적이었고 충분히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또한 문학이라는 것은 쓰고 싶다거나 노력한다고 해서 성취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와 카페로 자리를 옮겨 카페인이 없는 차 두 잔이 에어컨 바람에 차게 식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과 글을 쓰다 등단한 약사에 대해서, 글쓰기를 배우러 와서 A4 용지 한 장을 채우지 못하고 수업을 중도 하차한 30대 남자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만남이 마무리가 되고 헤어질 때에는 정릉에 있는 그의 회사에서 서울역까지 나를 만나러 와준 그의 호의와 선의에 감사하며 미리 준비한 선물, 수제 비누와 차 세트를 건네주었다. 그는 지난 번 만남에도 그랬듯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 받으며, 아이고 이런 거 바라고 온 거 아닙니다, 그치만 너무 감사합니다, 잘 받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 민주님, 글 쓸 시간 꼭 확보하실 거죠? 좋은 글을 써주세요. 글만 주구장창 쓰는 사람 말고요, 이렇게 회사도 다니고 애도 키우면서 갑질도 당하고 때론 갑질도 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글을 써주세요. 그리고 민주님이 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꼭 써보세요. 제게 시놉시스 보내주시면 읽어볼게요.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운이 좋게 자리가 난 지하철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그가 추천한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청소년 문학 장르에서 고전으로 불리는 몇 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위저드 베이커리, 조커와 나, 페인트, 유원…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 앞에는 줌 화면이 나타났고, 곧이어 글방 동료들의 화면이 직사각형 안에 하나둘씩 등장했다. 오프되어있던 노트북의 마이크와 비디오를 켠 나는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진짜 쓸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작가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장르까지 바꾸려는 몸부림일까요? 왠지 소설은 에세이보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두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나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의 마이크가 켜지고 “열음, 제 생각에는요.” 라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눈이 뜨였다. 망원역이었다. 내리려고 출입문으로 향하자 이미 들어오기 시작한 인파로 인해 같이 밀려 들어올 뻔 했다. 몸에 힘을 준 채 열차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맞서다 몇몇과는 몸을 부딪혔다. 그렇게 겨우 열차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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