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외투를 여몄다. 나온 배 때문에 도저히 여며지지 않는다. 팔짱을 껴서 바람이 들어오는 틈을 줄여보아도 불뚝 나온 만삭의 배는 3월의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았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사당으로 향했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태동이 심하거나 몸이 결릴 땐 앉고 서고를 반복했다. 오른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두기도 하고 의자 등받이에 체중을 실어 기대어도 보고. 어째 앉은 자세도 어정쩡한 게 수업 태도가 영 불량해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아침보다 몸이 몇 배는 무겁게 느껴졌으나 이상하리만큼 발걸음은 가벼웠다. 5년 전 처음으로 수강한 글쓰기 수업은 3월의 꽃샘추위와 무거운 배, 간간히 느껴지는 태동, 오고 가는 버스 안의 훈훈하고 답답했던 공기로 채워져 있다. 이 당시만 해도 글쓰기가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 요즘 뭐 하냐는 질문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읽고 쓰는 작문 공동체에 들어갔어요. 지원서를 냈는데 다행히 붙었어요. 세 달 동안 열 권의 책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임신 중이라 그런지 자꾸 졸려요. 나의 근황에 동료들의 답이 되돌아왔다. 철학적이네 이 친구. 여유가 있어. 평범하진 않네 취미가. 그런데 글 써서 뭐 하려고?
그 때가 2019년이었다. 끝도 없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종잣돈을 모아서 집을 샀다. 직접 거주할 집이 아니어도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 두 채 세 채씩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이들이 그 때는 많았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회사 대출과 은행의 신용 혹은 주택담보대출을 끌어왔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라는 명목으로 집을 사고 부동산 유튜브를 보고 임장을 다니는 와중에 나는 작문 공동체에 들어가 수업 과정에 쫓겨 허우적 대고 있었다. 책을 낸다거나 학위를 따려는 목적없이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나에게 돌아온 여유롭다거나 철학적이다라는, 실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는 그 말이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 지금 집을 사야 해. 언제까지 전세로 살 순 없잖아. 집 값은 계속 오를 거야, 서울 집 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니까. 솔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이년 마다 이사 다닐 수도 없고. 뱃속에 있는 둘째 나오기 전에 내 집이 있는 게 중요해, 진짜 민주 매니저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야. 진지하게 조언을 건네는 동료의 말에 나는 조급해지기도 했으며 실제로 다급함에 쫓겨 집을 사기 위해 매물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독후감 과제로 나온 책의 읽을 페이지는 읽은 페이지보다 늘 반 이상이 남아있었고 당장 써야 할 글의 마감이 턱 밑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동료들이 말하는 일이년 후의 주거 안정성이나 자산 증식을 통한 몇 십년 후의 노후대비 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독후감과 글쓰기가 중요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공동체를 운영하던 이를 우리는 원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에게 한 주에 책 한 권과 글 한 편을 숙제로 내주었다.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에는 양식이 따로 있었는데 ‘저자 정보, 내용 요약, 소감, 내가 저자라면, 지정 도서와 관련된 영화와 노래, 반짝이는 구절 모음’이라는 양식에 맞춰 글을 쓰게 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꼭 좋았던 구절들은 남겨놓으세요. 손이 가장 좋지만 타이핑으로 친 문서 형태여도 좋아요. 그게 나중에 내 재산이 됩니다. 정말이에요. 제가 출간한 책들의 대부분이 제가 읽은 책들, 그리고 그 구절을 적어놓은 문서에서 탄생했어요. 수업을 들으러 가서 사람들과 밥벌이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13세기 활동한 루미의 시를 외우고 낭독하는 시간도. 특히 각자가 써온 글을 낭독하는 시간이 되면 내게 허락된 시공간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내게 와서 닿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들을 수록 꼭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다.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 그러한 즐거움과 자극을 만끽하고 있다가도, 막상 집에 와서 홀로 된 나로서 일주일 안에 해내야 하는 독후감과 글 한 편이 떠오를 땐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책 읽을 시간은 늘 부족했고 아이를 재우면 거실로 나와 책을 읽었다. 어쩌다 잠에서 깬 당시 다섯 살이었던 첫째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눈은 뜨지도 못한 채 안방에서 나와 나를 찾았다. 엄마 어디 갔었어. 아이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내가 좋아 책이 좋아? 솔이가 당연히 더 좋지. 그런데 왜 맨날 안 자고 내 옆에 없고 책 읽고 있는 거야. 엄마가 과제를 하느라 그래. 과제가 뭔데? 숙제야 숙제, 너도 이제 학교 가면 해야 해. 엄마 나랑 같이 자자. 아빠가 엄마는 많이 자야 한대, 그래야 뱃속에 내 동생이 같이 잘 수 있대. 그렇게 아이가 이끄는 작고 따끈따끈한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번쩍 뜨였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도 써야 할 글에 마음이 짓눌려 다시 거실로 나와 책을 읽는 날이 잦았다.
그곳에서 전태일을 공부했다. 권정생 선생의 산문과 동화를 읽었고 임의진 목사의 그림을 함께 보고 그가 참꽃 피는 마을에서 쓴 산문을 읽었다. 맹목적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던 한국 사회 안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느리고 유별났다.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앞을 향해 내닫고 있었지만 그들은 느리다기 보다도 아예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시대와 흐름 앞에서 담담할 수 있었던 이들이 쓴 책. 풍요와 편리가 아니라 불편과 빈곤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쓴 책을 읽을 때면 나는 그들 앞에 선 채로 나 자신으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아내야 했다.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삶의 의미를 찾겠다며 부르짖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연유가 무엇인지, 단순히 읽고 쓴다고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제대로 살고 싶다면서 의미가 될 만한 것들의 주변을 서성이긴 하지만 인생에서의 어떤 가치를 발견한다면, 정말 그 가치대로 내 실제 일상의 영역을 바꿔낼 용기가 있기는 한 것인지. 그러한 질문에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답을 한 적이 없다. 그때 내가 썼던 일기와 메모에는 모르겠다와 혼란스럽다 라는 문장이 많이 적혀있다.
‘2019년 4월. 의심 없이 옳다 여겼던 것들, 받아들였던 것들이 여전히 옳은지를 생각한다. 잘 모르겠다.
나를 가두고 있던 주변의 시선과 어떤 힘의 논리에서 나는 해방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며 그 힘에 나 역시 편승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럴 때 나는 혼란스럽다.’
수업을 3주 차 정도 남겨두고 둘째가 태어났다. 거의 4개월간 이어져 온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는 나름 형식을 갖추어 졸업식도 했는데, 그때 난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료증을 들고 웃고 있는 글벗들과 원장님의 얼굴을 카톡으로 전송된 사진으로 보며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달이 지났을 때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늦은 저녁 우리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수료증이라고 적힌 은색 테두리의 종이가 꽂힌 과일 바구니를 들고 온 그들은 내 허벅지 옆에 붙어있는 다섯살 첫째와 안고 있는 둘째를 보며 신기해했다. 말로만 듣던 아이들이네요. 연예인 보는 느낌이잖아 이거. 그런데 아기가 원래 이렇게 작은 거예요? 얼굴이 아직 너무 빨간데. 왜 빨개요? 민주님 없을 때 허전했어요. 우리끼리만 졸업식 해서 원장님도 미안해했어요. 그때 우리 집에 몰려왔던 그들은 지금 서울과 대구에서 제주와 전국 각지에서 분식집 사장님으로 학교 선생님으로, 의사와 체중조절용 식품 회사 마케터로, 교회에서 사역자로 일하고 있다.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SNS에 올라오는 그들의 소식을 접하면 어딘가 마음이 동한다. 5년이나 지났으나 한때 같이 읽고 같이 쓰던 이들에 대한 애틋함은 여전히 내 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혼자서 조각 글을 썼다. 아이가 잠깐 장난감에 한 눈이 팔렸을 때나 낮잠을 잘 때면 휴대폰 연습장에 무엇이라도 적었지만 길게 적진 못했다. 첫째를 케어하고 둘째 젖을 먹이고 이유식을 만들고 집을 치우면 하루가 그냥 가버렸다. 가슴이 꽈악 막힌 것 같았다. 마치 혈관에 찌꺼기가 쌓인 것처럼 온몸이 단단해진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짬을 내서 쓰자니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배가 고파 이유식을 찾을 아이 생각에 이유식을 미리 만들어야 했다. 늦은 밤에 쓰자니 새벽 내내 이어질 새벽 수유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저 식탁 위에 갖다 놓은 무선 키보드를 쳐다 보기만 하느라 닳기 직전이었다. 아이를 가슴 앞에 두고 젖을 먹이면서 키보드를 쳐다봤다. 아이를 안고 있는데도 손가락이 하나둘씩 움찔거렸다. 그러자 움찔대는 손가락이 귀찮았는지 젖을 먹던 아이가 에엥 하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새벽 수유를 한 후 젖이 잘 빠지지 않은 건지 가슴이 단단했다. 콕콕 찌르는 통증에 안에 있는 모유를 뺴야겠다 싶어 유축을 하려고 유축기 전원을 켰다. 그러고선 유축기가 아닌 그 옆에 있던 키보드를 집었다. 키보드 옆면의 전원을 딸깍 올려서 켜고 급한 대로 아이패드 메모장에 뭐라도 적었다. 내일 아침 가슴이 아파 쩔쩔맬 것을 알면서도 피곤에 절어 졸게 될 걸 알면서도 그렇게 썼다. 글로 쓰기 전에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면서 실체도 존재도 명확하지 않은 채 자꾸 내 주위를 맴돌던 것들이 글자로 표현되면 조금이라도 선명해진 것 같았다. 나도 내 삶도 명확해지고 확실해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착각이어도 좋았다. 그렇다고 내가 쓴 이야기들이 내게 통쾌함을 선사하거나 해방시키는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오늘은 아이를 보느라 싱크대에 서서 밥을 먹었다는 것, 아이를 씻기다 엄마 생각이 났다는 것, 등이 시리고 마음이 괜히 텅 빈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엄마의 기일이 가까이 왔다는 것, 나 몰래 말랑카우를 하나 더 먹은 첫째를 혼낸 것이 후회된다는 것. 하나같이 다 사소했지만 그럴지라도 그것을 써내는 시간이 내게는 중요했다. 어느 저녁 베란다 너머 지는 노을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있던 그 몇 초가 마음에 새겨져 잠 못 든 채 쓰는 글들이 나는 좋았다.
지금은 일주일에 글 한 편을 써내는 글방에 다닌다. 이제 만으로 이년이 다 되어간다. 글을 쓴 지 꽤 되었어도 여전히 일주일에 글을 한 편씩 쓰는 것은 쉽지가 않다. 토요일에 글감을 받고 나서 글감과 딱 맞아떨어지는 경험들이 없으면 입에서 사탕을 굴리듯 글감을 굴린다. 한 삼사일은 굴린 뒤 가운데에 들어있는 찡그려질 만큼 시거나 단 맛의 액기스 나와야 그때부터 연필을 들 수가 있다. 쓰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 사탕이 사과 맛인지 우유 맛인지 계피 맛인지. 내가 쓰려는 글이 어디로 도달하게 될지는 글이 내게 알려줄 것이다. 그렇게 내 글이 어디에 닿을지도 모른 채, 도달했다면 무엇이 될지도 모른 채로 나는 쓰고 있다. 그래도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그게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내 자식 같아 보기만 해도 아까운 마음이 든다. 이미 글은 업로드 시켜놨으나 읽고 또 읽는다. 이렇게 써 낸 내가 기특하고 이렇게 쓰여진 글은 애잔하다. 열 시가 지나서 업로드 되는 다른 동료들의 글을 읽고 합평을 준비해야 하는데 자꾸만 내 글에 눈이 가는 것도 주책이라면 주책이다. 글방을 한 날이면 그 글에 호평을 받았든 혹평을 받았든 지겨우리만큼 글을 요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수십번을 읽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거짓말처럼 어제까지 내 자식처럼 아까워서 보고 또 보던 글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요즘도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이 허락되지 않거나 시간상으로 여유가 없거나 몸이 아플 때. 그럴 때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어서 키보드를 닳도록 쳐다만 봤던 때를. 아이가 쏟아 놓은 장난감 바다 한가운데에서 엎드린 채 도둑질하듯 글을 썼던 때를 떠올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글쓰기의 호황기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갖다 댄다.
글을 쓰기 전과 후는, 아이를 낳기 전과 후처럼 차원이 달랐다. 써야 하니 읽어야 했는데 읽고 쓰는 일을 중심으로 내 사이클을 정비하는 게 필요했다. 무엇을 더 추가해서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책과 주간지를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인풋을 넣는 것 말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가져다 쓰는 일들. 예를 들어 드라마나 시즌물을 보거나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여행을 가는 일들을 줄이는 게 필요했다. 글쓰기를 위해 내 일상을 읽고 쓰는 것 위주로 정비하고 후순위에 있는 것들을 가지치기하는 과정. 책을 몇 권 읽고 글을 몇 편 써냈다는 결과 보다도 그 과정이 나는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마음과 몸을, 시간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나 스스로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건조기에는 며칠 전에 한 빨래가 그대로 들어있고, 아침에 회사 갈 준비를 하면서 건조기 안에 휴대폰 보조등을 비추며 옷을 찾는 게 너무 오래 걸린다. 오늘만은 빨래를 개야겠다 다짐하며 집을 나섰지만 여전히 자기 전에는 책을 붙들고 필사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읽고 쓰는 게 우선인 와중에서도 예외인 존재들이 있다. 솔이와 현이. 나보다 매우 작지만 어마무시한 열살 여섯살 이 두 존재들은 언제나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내가 내 삶에 부여한 중요한 가치들을 순식간에 아래로 끌어내리고 아무일 없다는 듯 자신들을 맨 위로 올려놓고서 당당하게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아우라를 내뿜는 재주가 그것이다. 사실 이들 덕분에 나는 놓칠 수도 있는 일상의 소중함을, 실은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소중할지 모르는 순간들을 매순간 느끼고 누리는 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제 막 여섯살이 된 아이가 자꾸만 내 옆에서 몸을 비비 꼰다. 엄마 그래서 언제 다 쓰는 건데. 이렇게 계속 나를 서 있게만 할 거야? 입이 삐쭉 나온 아이를 안아주는 대신 아이 손에 과자를 쥐여준 채 이 문장을 겨우 마무리한다. 이제는 이 아이에게 포옹을 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