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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n 26. 2024

아저씨 접니다

아저씨, 당신은 제게 다섯번째 아저씨입니다. 제 기준에서 잔잔바리 만남들을 제외하고 엄마가 만난 사람들을 추리니 다섯이더라구요. 아저씨는 제게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마지막 사랑이었으니까요. 저희 집 안방 침대 옆 협탁 두 번째 서랍엔 아저씨 사진이 있습니다. 엄마 지갑 속 아저씨 증명사진이요. 갸름한 얼굴과 짧은 스포츠머리 목까지 올라온 연베이지색 목티 쌍꺼풀 없이 아래로 축 내려간 눈꼬리 오똑하고 날렵한 콧날과 앙 다문 입술이 다부집니다. 아무래도 호감형입니다. 엄마가 왜 아저씨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요. 엄마는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좋아했거든요.


아저씨, 저는 사자를 죽이고 싶어했던 아이입니다. 저녁이 되면 할머니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기다리며 KBS에서 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았습니다. 다큐의 주 무대는 아프리카에요. 탁 트인 광활한 초원 끝에서 지는 태양 빛과 비슷한 누르스름한 털빛, 콕콕 박힌 점박이 무늬를 가진 아기 사자들을 볼 때면 늘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사자의 세계에서는 영역 싸움이 흔하게 벌어지는데 침입한 수사자가 이기면 그 전 사자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기 사자들은 거의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게 중에 운이 좋아 새로운 수사자에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극소수죠. 엄마의 남자가 바뀔 때마다 저는 아기 사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티브이 속 수사자를 죽이고 싶었어요. 침입한 수사자요. 그의 가장 연하고 보드라운 뱃가죽에 송곳니가 박히고 물어뜯기길 송곳니의 날카로운 끝이 내장까지 파고들어 그 상처에 염증이 번지고 구더기가 들끓다 죽어가길 바랬습니다. 침입자의 살벌한 패배와 동시에 어린 사자의 무탈을 바랐습니다. 실은 제 무탈을 바란 것이겠지요.


아저씨, 아저씨는 달랐어요. 그전의 아저씨들처럼 집 앞으로 늦은 밤 찾아와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고 제게 엄마가 어디 있냐며 무섭게 묻지도 않았어요. 맨정신의 엄마가 밖에 나갔다 오면 늘 술이 취해서 들어왔는데 아저씨를 만나고 오면 술에 취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아저씨네 집에 도착하면 아저씨는 늘 제게 전화를 주었지요. “엄마 여기 잘 왔어. 걱정하지 말고 잘 있어라.” 이 몇 마디가 제 마음을 얼마나 다독였는지 아셨나요. 어른이 주는 안정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어른이 되어 느꼈습니다. 어릴 때 이런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 저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요.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더 단단한 제 마음에 차는 어른이 되었을까요.


아저씨는 제 죄책감을 나누어 진 첫 어른입니다. 애인과 데이트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먹던 카레와 치킨이 명치에 턱 막혀서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여름 밤에 낙산공원에 올라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별을 볼 때면 불안하고 서글펐습니다. 가장 좋은 순간 저에게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찾아왔어요. 엄마가 이렇게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엄마의 불행이 저 때문이 아니란 것은 압니다. 하지만 자꾸만 좋은 순간에 찾아오는 생각들. 엄마가 지금 술에 취해 도로에 누워있는 것은 아닐지, 무릎이 까진 것은 아닐지, 취한 엄마의 몸이 누군가에게 함부로 다루어지진 않을지. 아저씨가 저와 엄마에게 온 후부터는 아저씨를 만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엄마의 시간이 자연스레 그려졌고 조금씩 맛있는 음식을 혀로 느끼고 덜 체하고 야경을 보며 설레어 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 저 사실 아저씨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제게 아저씨를 술도 먹지 않는 착실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실은 아저씨도 과거에 알콜중독자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제수씨가 말해줬어요. 어느 날 술 취한 엄마가 아저씨네 집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적 있잖아요. 아저씨 윗집에 사는 제수씨란 사람이 제게 전화를 했어요. 어서 엄마를 데려가라고요. 저는 막 20키로가 넘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제 몸무게의 세 배인 엄마를 데리고 오던, 데리고 오라고 전화를 받던 20년 경력자 딸입니다. 늘 있던 일이라 덤덤하게 갔던 곳에서 제수씨가 아저씨랑 엄마가 병원에서 만난 사이라는 걸 말해줬습니다.


사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은 해왔습니다. 아저씨를 만나면서 여전히 술 먹는 엄마를 받아줬잖아요. 알콜중독자가 아닌 사람은 알콜중독자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며칠씩 연락이 끊긴 채 일주일 정도 장취를 한 후 다시 나타나는 엄마를 아저씨는 받아줬어요. 술에서 혼자 깨어나지 못해 결국 입원까지 했을 때 짧게는 한달, 길게는 6개월까지 지속되던 입원생활도 기다려줬구요.


하스피탈 러브. 병원복을 입고 시작된 사랑이라.. 저 지금 잠깐 심쿵했습니다. 그 병원은 남자와 여자 병동이 따로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 사랑을 키운 건지 인간 사랑의 역사는 정말 악착같습니다. 깨기 전까지는 인사불성의 환자지만 술이 깨고 나면 멀쩡한 정신으로 인해 병원생활이 배는 괴롭다던 알콜중독 환자들의 지루한 병원 생활 속 찾아온 만남. 유일하게 서로를 만날 수 있는 흡연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을 것이고 그곳에서 함께 태우는 담배는 얼마나 달짝지근했을까요.


아저씨와 엄마의 시간을 상상합니다. 엄마는 아저씨네 가기 전날부터 불 앞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쇼핑백에 반찬통을 가득 넣어 양손에 들고 갔어요. 문 앞에 온 엄마에게 과묵한 아저씨는 고맙다는 말보단 가득 찬 쇼핑백을 어서 옮기고 엄마 어깨를 두손으로 감싸고 힘을 꽈악 주는 것으로 표현했곘죠. 집에 들어와서는 상을 펴서 반찬통들을 하나하나 상위에 올리고 뚜껑을 열며 이것들을 만들면서 불앞에서 얼마나 더웠고 서 있느라 다리는 얼마나 당겼고 손목이 얼마나 시큰했는지 엄마가 신나게 이야기했겠죠. 그리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거에요. 아 먼저 사랑부터 나눴을까요. 아저씨가 동생네 고물상에서 평일 내내 일하느라 거의 만나지 못하고 주말에 몰아서 만났으니까 서로를 원하는 마음에 섹스부터 했을 수도 있었겠어요. 함께 밥을 먹고 섹스를 하고 티브이를 보며 떠드는 둘의 시간을 그려봅니다.


알콜중독자는 사랑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와 아저씨가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외로우니까 서로 만나는 거라고요. 사랑을 하는 각자가 정신적으로 온전히 서 있을 때 나누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티브이랑 책에서 배웠거든요. 아저씨는 과거에 알콜중독자였고 엄마는 지금도 알콜중독 상태니까 둘에겐 사랑이 허락되지 못할 거라 여겼어요. 그런데 그런 엄마가 그런 아저씨에게 안식을 찾았습니다. 아저씨네서 하루이틀 머물다 돌아온 엄마는 늘 충만해져서 왔어요. 아저씨네 다녀온 날은 유난히 많이 웃었고 밥도 많이 먹고 말도 많이 했어요. 엄마에게 사랑이 남아있을 줄 몰랐어요. 엄마도 사랑을 하고 받을 수 있는 존재였던 겁니다.


아저씨 미안합니다. 사실 이 말을 하기 위해 많이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죽고 그 사실을 직접 알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떠났고 그때 전 9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어요. 장례식 삼일 내내 까만 한복을 입고 흰 리본이 달린 실삔을 머리에 꽂고 아기띠를 뒤로 둘러서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직접 전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아 아저씨의 제수씨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미안해요. 엄마의 죽음과 함께 엄마가 가졌던 모든 관계들도 다 함께 묻고 싶었어요. 지긋지긋했거든요. 그 당시엔 아저씨도 제게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저씨, 저 사실 엄마가 죽고 나서 시원했습니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가슴을 부여잡고 우는 동시에 드디어 중독의 족쇄에서 풀려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의 아픔보다는 죽음이 가져온 해방감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새벽에 경찰서 연락을 받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더이상 엄마가 외상한 술값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겠구나. 엄마의 몸과 마음이 다칠까봐 그만 불안해해도 되겠구나 하는 해방감이요. 엄마를 떠올리면 슬픈데 그립지는 않습니다. 27년을 중독자의 딸로 살면서 감내해온 고통은 엄마와의 이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고통도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랑도 이런 모녀도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겠지요.


아저씨 본격적인 여름입니다. 술 먹고 추위에 떨고 있는 엄마보다는 술 먹고 더위에 지친 엄마를 떠올리는 게 나았던 것인지 저는 아직도 여름이 좋습니다. 외투를 입지 않아도 춥지 않고 술에 취해 빙판길에 미끄러질 염려 없는 여름이 고맙습니다.


아저씨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면 간식비를 매달 넣어주신 일 알고 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서 먹고 싶은 간식,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첫 아이 낳았을 때 엄마를 통해 돈봉투를 주신 일도 감사합니다. 아저씨도 힘드셨을텐데 꽤 두꺼운 봉투를 들고 받아도 되는 것인지 잠시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그때 낳은 아이가 지금 초등학생입니다. 요즘 한창 귀여운 짓을 하는 둘째도 네 살이나 되었어요. 아저씨에게 저희 아이들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무지 귀엽습니다.


아저씨, 7년간 엄마 만나면서 마음 고생 많으셨지요. 제 짐을 같이 나누어 지어준 아저씨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종종 꿈에 나옵니다. 늘 그랬듯 절 보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씨익 웃으시면서요. 이제 저도 그 미소에 씨익 웃으며 답하겠습니다.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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