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과 백수린의 단편을 다시 읽으며
써놓은 글 몇 개를 퇴고 중에 있다. 글을 고치며 참고하려고 소설집 몇 개를 꺼냈다. 어른이 된 화자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쓰는 이야기가 필요했고, 생각난 것이 백수린과 최은영의 단편이었다. 23년도 ’김승옥 문학상‘에 실린 백수린의 단편(빛이 다가올 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실린 최은영의 단편(이모에게)이 그것이다. 이미 일이년 전에 보았으나 꼭 처음 읽은 것 처럼 강렬했고 다시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다시 발견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줄을 쳐놓은 곳 옆에 써놓은 당시의 내가 써놓은 단상을 읽어나가는 재미 또한 있었다.
타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으려는 백수린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끈질김과 집요함이 있었다. 어떤 사랑에 대한 집요함, 그 집요함을 놓지 않는 이가 쓰는 이야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벌어진 사건들. 그들도 처음이기에 때론 무지하고 무심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 그들의 처음을 함께 건너오면서 실패를 함께 경험하는 읽기로서의 경험. 이 경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가 닿지 못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의 나와 우리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그 시간을 그대로 들어올려 조심히 강보에 싸 정성스레 그 시간을 안고갈 수 있게 해준다.
최은영의 이야기는 어떤가. 깊은 갈등과 첨예한 대립 속에 놓여진 인물들.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낸 사건에 연루된 이들. 결코 가볍지 않은 오히려 무거워도 한없이 무거운, 현실과 맞닿아있는 사건들을 기어코 재현해 새로운 인물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현실 속 잔혹함을 그가 지닌 온화하고 세심한 필체로 그려낸다. 최은영의 언어의 세계 안에서 재현되는 그 사건들을 보노라면 두 발을 이 세상에 붙이고 서서 세상을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시 읽어도 손색없는 이야기들. 오히려 다시 읽을 수록 더 빛을 내는 이야기. 그래서 다시 읽어야 하는 이야기. 그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독자가 이야기와 만나 창조되는 어떤 에너지와 감상. 이런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들의 언어로 그려내는 내가 사는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퇴고하라는 글은 안하고, 참고하려고 편 책에서 감동받고 쓰는 감상문…. 뭐하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