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사랑하는 일
작가를 사랑하는 일은 어느정도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써낸 글 뿐이니까. 물론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확률은 높지만 어떤 이가 가진 문학적 재능이 그의 인격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만 보고서 그를 좋아하는 일은, 조금 위태로운 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만 보고 홀로 그와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독자인 나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나로선 할 말이 없다. 조건부 사랑이었으니까. 당신의 생김새나 습관, 성격과 관계 등을 모르면서 글에서만 나타나는 공인으로서의 당신 모습을 좋아한 독자니까.
이런 걸 생각하면서도 끝끝내 좋아할 수밖에 없는(그것도 많이) 작가들이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꽈아…’ 라며 결국 무릎을 꿇게 만드는 이들. 내게는 조해진 작가가 그렇다. 그가 소설로 쓰는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 때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국가 폭력, 노화와 질병 등 그들이 처한 상황 속에 내동댕이 쳐지고 휩쓸려 버린 이들의 운명. 그렇지만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길을 빗겨가지 않은 채 똑바로 응시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책장이 덮힌 후에도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믿게 되는 인물들.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끝끝내 세상과 조우하고 살아가려는 인물의 의지, 그리고 그것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생각할 때 나는 그 마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요 며칠 루틴을 주제로 쓴 에세이를 읽었다. 일곱명의 작가가 쓴 자신만의 작업 방법 혹은 루틴 없음에 대한 이야기. 후반부에 위치한 조해진 작가가 쓴 파트에서는 앞선 다른 이들에게서 받았던 글쓴이를 위한 ‘자극’이 아니라 ‘위로’를 받는다. 앞의파트는 작가들의 작업을 훔쳐 보는 듯한 쾌감이, 조해진 작가의 파트에서는 느슨한 위로가 기다리고 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그 느낌을 이 글에 고스란히 있다. 힘을 빼고 쓴 글. 지난 해 겨울, 12월의 어느 저녁 망원동의 한 책방에서 만났던 그 때와 비슷하게 작은 목소리와 조금은 엉뚱했던 모습이 그려지는 그의 글. 와인을 마시며 작업을 하다가 술에 취해 자신이 내뱉었던 말과 행동을 후회하고 자책을 하고 그 자책이 배양하는 슬픔에 대해 말하는 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고 말하는, 루틴에 대해 말하는 책에서 자신을 미워하는 루틴으로 결국에는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자기 혐오의 시간에 대해 이토록 진실하게 쓰는 소설가를 나는 본 적이 있던가.
타인을 향한 애틋함을 잃지 않기 위해 문학을 한다는 그가, 정작 자신에게 애틋할 수 없음을 절망하고 다시금 그것을 문장에서 자신에게로 가져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여느 사람들과 닮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다 비슷하구나, 자신을 싫어하고 특히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아프게 한, 나 혼자 잘난 듯 굴었던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구나. 그렇게 자기를 되돌아보고 남을 아프게 했을 지도 모르는 사실로 인해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의 존재가 이토록 마음이 벅찰 줄이야.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람, 아무 말이나 털어놓아도 안전할 것 같고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 기대고 싶은 사람, 내게는 좋은 작품을 쓰는 소설가 외에도 그토록 원대한 이상형이 있다. 실은,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고백이다.’(p.167)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과 그가 쓴 글. 그의 글을 읽자 그 마음과 일부 닮은 나의 마음이 삐져나온다. 그가 마련해준 공간에 그의 마음과 내 마음을 포개어본다. 그리고 나역시 조심스러운 고백을 해본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려는 시간에 내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조소와 냉소가 기다리고 있는이 세상에서 그가 먼저 해버린 고백에 수저를 얹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진중하면서도 잘 웃을 수 있는 사람이요. 사람들에게 쉴 수 있는 곳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실은 사랑이라고 했으나 그것은 ’자기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약함을 꺼내보이는 글을 보고 그의 글과 그를 사랑한다고 했던 것 말이다. 실은 내 안의 그 취약함, 그가 글로 대신 쓰고 설명해준 그 취약함을 읽으며, 나보다 더 먼저 자신의 취약함을 사랑한 그를 통해 나는, 사실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