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표지 바로 뒷 편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 소개 페이지에 쓰인 굵직한 단어들. ‘3번의 결혼과 이혼, 알코올 중독, 싱글 맘으로 네 아들 부양’ 이 내용들은 이어지는 42개의 단편 속에서 재현된다. 어린 시절 천주교 학교에서의 경험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입원 생활, 네 아이와 먹고 살기 위해 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간호사 보조일과 청소부일, 스페인어 교사까지. 루시아 벌린이 발로 밟아 온 노동의 터전과 손때 묻은 시간들이 ‘단편’ 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에 수록되어있다.
’아이고, 어쩔까나‘라는 감탄사나 안타까움이 묻을 법하지만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루시아 벌린이 만든 이야기 속 화자는 사건에 휩싸이고 특정 시대에 놓여 그로 인한 한계에 직면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를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을 견지한다. 세상과 화자가 가진 시선, 그 틈으로는 곳곳에서 유머가 새어나온다.
특히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의 말년을 그린 <환상통증>이라는 단편에서는 환각과 정신 이상을 겪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용서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며 그려냈다.특히 이 단편은 문장 간의 호응이 유난히도 좋아, 몇몇 단락은 두세번 씩 읽기도 했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불쾌한 웃음이었다.’ 그러니까 문장이 인과적으로 흐르지 않는 것. 웃음이 불쾌함으로 호응되는 어떤 아이러니한 상황을 문장간의 긴장에서 자아낸다는 것이 이 글을 끝까지 놓을 수 없게 하는 묘미이기도 했다.
술에 취한 채 실려 간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는 응급실이라는 긴장감이 가득한 노동의 현장에서 그녀는 사랑받는 중독자가 되길 원하고 응급실에서 느긋하게 옛 추억을 더듬는다. 무언가에 휩쓸려 버릴 듯한 위태로운 인간이면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심지 곧은 인간. 한없이 휘어지고 굽어지나 부러지지 않는 사람. 자신의 폐허를 이리저리 큐브 맞추듯 돌려도보고 살피며 만질 수 있는 사람.
누군가가 ‘불행’이라고 이름 붙일 법한 시간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다시금 기억을 되돌리고 반추하고 과거로 의식을 이동시켜 재현하고 재창조하며 그녀가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네 아이를 재운 뒤 조용히 거실로 나와 타이핑을 치고 펜을 들었을, 육아와 노동을 한 손, 굵어지거나 손톱이 벗겨진 그녀의 손가락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