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하게 하는 글
‘더 많이 말하고 싶어, 더 많이 쓰고 싶어.’
그런 마음을 잠시 뒤로 제쳐두게 하는 글들이 있다. 지금 내가 몇 문장을 더 써내는 것 말고 이 글 속 문장 하나를 입안에 넣고 사탕 굴리듯 녹이고 싶게 만드는 글.
누군가의 글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나의 변두리를 맴돌다 곧장 휘발될 때가 많은데 기어코 나의 중심을 빼앗아 차지하는 어떤 책들이 있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넋놓고 당할지라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
전승민 평론가의 에세이. 평론가라고 하니 분석적이며 다소 건조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했지만 이 책은 그 예상을 가뿐히 걷어찬다. 일상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사람들을 충실하고 사려깊게 써냈다. 읽는 이와 더불어 그 글을 쓴 작가 자신에게도 다정하고 위로가 되었을 글.
사무직 노동자로 돌봄노동을 하는 양육자로 살림하는 사람으로 살다보니 오른손과 팔에 통증을 달고 산다. 그렇기에 행주를 짤 때도 안 열리는 잼뚜껑을 열 때에도 대충 대충 하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치만 이런 책을 만날 때면 나는 망했다는 생각만 든다. 대충 대충 하자고 먹은 마음이 우르르 무너지며, 당장 펜과 필사노트를 챙겨 오른 손으로 펜을 들고 힘을 준 채 한자 한자 쓰게 된다.
무엇이라도 써내야 한다는 결과물에 대한 압력, 그 압력의 김을 빼 새어나가게 해주는 글. 사실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잠시 나를 멈추고 쓰지 못하게 하는 글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쓰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글. 이런 글을 쓴 작가를 만난 것이 내게는 6월의 큰 행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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