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도 진심을 담고 싶은 나의 마음은 욕심일까, 사치일까.
의미에 허기진 평범한 회사원의 발칙한 사유
매일 밤,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도 안 잔다는 아이가 결국 제 풀에 지쳐 곤한 숨소리를 내뱉은 것을 확인하고는 마루로 나온다. 형광등을 켜고 키보드를 꺼낸다.
인생 뭐 없다는데, 내가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베스트라는데,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데, 늘 뭔가 부족하고 의미에 목마르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지금보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이 의미로 가득히 채워져서 배불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 삶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채워질까? 어찌 해야 이 헛헛함이 사라질까? 단순히 내 마음만 변하면,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이 달라지면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다른 방향을 도모해야하는 것일까? 다른 방향을 도모하다고 해서 달라질 방향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목말라하는 의미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의미에 대한 정의도 불명확한 상황 속에서 늘 나는 그놈의 ‘의미’에 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채워진다고 채워지는 거면 진작에 채웠을 것 같기도 하다. ‘의미! 의미!’ 거리는 와중에 유튜브로 듣는 소이님의 ASMR에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다. 의미에 목마른 내게 별다른 의미없는 소리, 더미 헤드 맨손 귀청소 시리즈가 날 행복하게하는 그런 밤을 보낸다.
나는 그렇게 진심 담을 곳을 찾는다.
늦게 자는 만큼 누적되는 피로감을 가득 안은 나인데 아이를 재우고 나면, 뭔가 뻥 뚫린 마음에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결국 손에 잡히는 것은 한뼘하고도 그 반만한 로지텍 키보드다. 밥벌이는 우아하지 않다. 우아할 수가 없다. 먹고 사는 일이 멋지고, 좋아보이고, 선한 일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현실에서 먹고 사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하기 싫어도 해야하고, 할일이 산더미여도 시키는 게 있으면 하던 일 제쳐두고 바로 해야 한다. 일만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다. 동의되지 않는 이야기에 동의하고 웃어주고 일 외에 다른 에너지를 쓰는 데 좀더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리더가 좋아하는 회의실 구조, 메뉴, 보고서 단어, 멘트 장착 또한 필수다. 밥벌이의 초라함이다. 회사에 입사 이후 늘 사업팀이었다. 신규 서비스를 런칭하고, 고객 관리, 요금 구조 검토 등의 오퍼레이팅 업무를 해왔다. 규모가 큰 기업에 다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일을 하고 있다.’ 회사의 필요와 쓰임에 최적화되어 쓰이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것이 몸에 베어 있기에 주어지면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게 좋아서 결과물에 집착한다. 그래서 어느 부서를 가든지 노력해서 중간 정도는 가고 회사 환경도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의 모든 것, 아니 나의 70도 걸 수가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나의 70, 아니 50만 걸 수 있어도 좋을텐데 그게 안되서 힘들다.어떤 사람은 회사 일이니까 시키는 대로 한다는데, 회사 밖을 나오면 다 잊는다는데, 난 그게 안된다. ‘회사는 회사, 나는 나.’ 도저히 분리가 안된다. 돈은 일해서 많이 벌고 하고 싶은 일은 돈 벌어서 하라는 친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일에도 내 진심을 담고 싶다. 퇴근 후 할 일을 기대하며 회사 안에서 시계만 보는 건 못하겠다.내가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니까.
내 진심이란 무형의 썸띵은 어디서 그렇게 넘쳐나기에 밥벌이에도 담을 요량인지, 내 진심을 담아줄 그릇을 찾아 허덕인다. 진심을 담지 못하는 관계, 일, 장소가 나에겐 참 힘들다. 잘 지내는 척 할 순 있지만 잘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늘 허덕이고 목마르다. 이 갈증을 채울 요량으로 필름 카메라도 알아보고, 늦은 밤 키보드도 두드린다. 그치만 늘 허기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