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그 글을 쓴 이를 위해 자기 역할을 다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지점, 그 찰나, 글쓰기

by 한시영


배가 아프단 아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계란죽을 만들었다. 계란죽을 만들며 한번, “솔아 어제 배 아팠지? 엄마가 죽 만들었어. 먹어봐.” 말하며 두 번, 죽 먹는 아일 보며 세 번. 그렇게 세네 번 나의 엄마가 만든 뜨거운 죽이 떠올랐고 그것과 연관된 기억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놓칠 수가 없어 흐르듯 지나치는 기억들을 잡아두어 그 이야길 메모장에 풀어낸다. 풀어낼수록, 쓸수록,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 좋은 느낌들이 나를 감싸 안는다.

쌀을 볶고,
야채를 볶아 육수에 끓인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의 글이 나오는 순간은 의식과 무의식이 만나는 찰나였다. 내 의식 속에선 지워진 기억. 때론 지우고 싶은 기억. 그렇지만 무의식 저 편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하지만 불려지지 않는 그 무엇. 그 무엇들이 일상의 어떤 경험들로 인해 끄집어내질 때, 나는 나의 글과 만났다.

그렇게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조우하는 그 순간을 가만히 관찰하고 느껴본다. 그리고 글로 써본다. 그러면 묘하게도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저기 저 구석에서 알아봐 주길 원하는 무의식의 간절함이 이뤄져서일까, 아니면 마치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연기처럼 사라져 가벼워지는 무의식의 무게 때문일까.

세상엔 완전한 없어짐도 사라짐도 소멸도 없다. 완벽히 치유되어 나아진 듯해도 내가 그렇게 알고 있고 믿고 싶을 뿐이지, 짧은 순간 내 안에 존재했더라도 스쳐갔더라도 내게 새겨진 감각과 기억들은 여전히, 영원히 자리한다.

박미라 님의 <치유하는 글쓰기> 책에서 ‘글은 가장 먼저 그 글을 쓴 이를 위해 자기 역할을 다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물론 모든 글에 해당되는 이야긴 아니겠다. 나 역시도 자랑하고 드러내고자, 비판하고자, 목적을 이루고자 쓰는 글들도 있다. 그치만 나의 글쓰기는 날 위한 역할들을 할 수 있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쓰는 글들이 사랑받았던 기억, 수치스러웠던 기억, 잊고 싶던 기억들을 불러낸다. 기억이 글이라는 문자로 치환되는 순간, 여전히 아프지만 ‘아프지만은 않은’ 기억으로 남게 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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