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생일이었는데요

이것은 깜짝파티가 맞는가

by 한시영

내 생일 전 날밤 아이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엄마 생일 파티를 해야 하는데 늦잠 잘까봐 걱정이라며 칭얼댔다. “엄마 나 나쁜 생각이 들어. 아빠가 내일 아침에 나를 안 깨우면 어떡하지.”“아빠가 깨우기로 했는데 아빠가 늦잠 자면 어떡해.”


겨우 잠든 아이들 곁에 누워 눈을 붙였다. 다음 날 아침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이솔, 이현, 일어나. 빨리빨리.” 평소라면 오분만, 조금만 더, 라고 투정부렸을 아이들이 마치 주문에 걸린 듯 번뜩 일어났다.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 눈을 감은 채 피식 웃음이 나올 뻔 했다.


그들에게 완벽한 깜짝 생일 파티를 만들어주기 위해 정작 축하 당사자인 나는 요의도 참고 눈을 감고 숨죽인 채 자는 척을 했다. 문밖에서는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솔아, 테이프 가져와” “아 현아, 이거 그렇게 놓으면 안된다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 생일 축하합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아이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내가 있는 방에 들어왔다. 마치 방금 잠에서 깬 듯 눈을 비비고 하품을 했다. 이 모든 준비 과정을 보지 못했다는 듯 손바닥을 입에 가져다 대고 놀란 표정을 지으니 아이들이 방방 뛰며 좋아한다. 엄마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에 어찌나 신나하던지 그야말로 사방팔방 통통 뛰어다니는 아이들.


엄마 선물을 사려고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다리가 아팠다는 둘째, 식탁에 엄마 생일 데코를 하려고 프린트 카페에 아빠와 다녀왔다는 첫째. 둘째는 늘 추워하는 엄마를 위한 찜질팩을, 첫째는 글쓰는 엄마를 위한 노트를 준비했다. 서른일곱번 째 생일 중 가장 행복한 생일 아침이었다고,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든 날이라고 말하니 아이들이 쑥쓰러운듯 몸을 베베 꼰다.


고민도 생각도 지나치게 많은 나는 꽤 자주 발을 땅에 붙이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닌다. 그럴 때면 시끄러운 이 두 아이들이 다시금 나를 나의 자리로 불러낸다. 우리들은 엄마가 필요하다고, 엄마가 제일 좋다고,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나랑 놀아달라고. 그 어떤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온몸으로 발산해내는 이 아이들을 나는 당해낼 수가 없다. 그저 아이들이 부르면 가서 안아주고, 먹이고, 필요를 채워주는 식으로 그렇게 굴복할 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나를 지우고 소진시키며, 내가 꿈꾸던 삶에서 나를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종종 그런 생각이 들지만 이제는 그게 다는 아니란 것을 안다. 혹자는 정신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키워내고 돌본다는 것은 일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양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까봐 또는 다칠까봐 마음을 졸이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불확실 그 자체인 세계에 놓인다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하지만 그 잔혹함과 불안을 견디며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내어주고 나와 그를 서로에게서 지키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된다는 것, 돌봄을 제공하는 자 역시 받는 사람 만큼 취약한 자리에 위치하게 되는 일이다.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는 매순간 도움이 필요한 일이니까.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지겹도록 느끼는 일이며,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밀어둔 채 실질적 돌봄을 수행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서른일곱 해를 살아오며 내가 늘 지난 해보다 나아졌길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래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내게 건네고 싶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 이것이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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