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렵고 시간은 빠르다
모처럼 지인들과 여행을 떠난 날이었다. 오후에 목이 칼칼하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자 온몸이 아파왔다. 그저 칼칼하던 목이 이제는 칼로 베인듯 안쪽부터 통증이 전해졌고 온 몸의 뼈 마디마디가 충돌하듯 지끈지끈 아파왔다. 여행지 숙소에 다락방처럼 분리된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꼬박 하룻밤을 보냈다. 타이레놀을 두 개 먹고 말 그대로 눈만 감은 채로 버텼다. 새벽이 되자 숙소 주변에서 키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여행 일원들에게 아이들을 맡긴 채 새벽에 서둘러 남편과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끙끙 앓다 주차한 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픔에 어떻게 이렇게 아플 수가 있냐며 눈물을 펑펑 쏟고 구역질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앓고 그 다음날 독감을 확진 받았다. 그리고 아이도 함께 확진을 받아 집에서 머물고 있다.
제왕절개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온몸의 근육통과 경련. 이토록 아프니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운동을 다녀오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재밌는 소설 책을 읽고 몇 글자 쓴다는 나의 모습이 아득해진다. 이토록 별 것이 아니구나. 정성스레 쌓아올린 내 시간의 루틴이나 내가 해온 것들이 이렇게 질병 하나에도 푹,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릴 수 있는 것이구나. 아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플 때마다 새롭다. 아프지 않을 때는 꼭 내가 안 아플 것만 같아서 날마다 새로운 어리석음으로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그래, 날마다 새로운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견디어낼까. 살기 위해서는 적당한 아둔함과 애매함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마주할 공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세상. 끝끝내 그것을 너나 할 것 없이 화려한 외피들로 감춘다. 성취나 성공 인정과 명예 자아실현. 그것들로 달짝지근하게 감싸여진 것들에 현혹도 되어보고, 마음도 두어보고, 그것이 마치 가까이 놓인 양 달려도 보아야 인생이 재밌는 거겠지.
독감 바이러스를 이겨내기에 아직 작은 몸을 가진 아이는 나보다 열이 오래 간다. 아침마다 속이 뒤죽박죽이고 머리가 흔들흔들거린다며 속상하다고 운다. 그 옆에 앉아 아이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줄 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내일이면 좀더 나아질 것이라고 작은 눈에 맺힌 눈물이 뚝뚝 내 옷 위로 떨어진다. 며칠 전 윗 앞니가 빠져 자꾸만 말할 때 발음이 새는 아이. 아파도 엄마가 주는 약을 꾸역꾸역 먹고 엄살을 잘 부리지 않는 아이.
아이와의 시간이 더딘듯 하지만 빠르게 흐른다. 또 며칠 뒤면 언제 아팠냐는 듯 아이와 나 둘다 각자의 삶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끝이 있는 것을 알며 사는 이의 삶은 무언가가 다를텐데, 늘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 산다. 보이는 대로만 산다. 눈 앞에 좋은 것만 좇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것 자체가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 보이는 대로만 사는 것, 좋은 것만을 좇는 것이 본능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복잡하게 살지 말라고 해놓고 써놓는 글에는 복잡함이 한 가득이다. 내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 주어진 깨달음의 시간도 너무나 짧아 애가 닳을 때가 있다. 이제 조금 이 세상에 대해 알아갈 때에, 이제 조금 안다 싶을 때가 되면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