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양심에 기대야 한다는

예배당 의자에 앉아서

by 한시영

일요일 아침 기다란 적색 예배당 의자에 앉아 작게 말했다. 전쟁 하나 멈추어 주지 못하는 신은 신이 아니라고. 예배당 오른쪽에는 찬양을 연습하는 성가대원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예배당 가득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 가운데 다시 말했다. 이런 고통이 지천에 널렸는데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지게 만들지 못하는 신은 신이 아니라고.


지상 최대 규모, 가스 드론, 요격, 미사일.


요 며칠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을 두고 쏟아진 기사 제목 속 단어들이다. 이스라엘의 선제 타격이 이뤄졌고그에 맞대응 하는 이란의 보복 공격. 민간인들이 또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조만간 집과 땅을, 그들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다. 가자지구는 이미 악화된 상태로 더 나빠질 것도 없어보이지만 더 나빠지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이들이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


포탄이 떨어지고 그 피해는 그것이 떨어진 시점에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75년 전에 벌어진 그 전쟁이 지금까지도 한국을 빨강과 파랑으로 어떻게 나누어 놓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일 듯 미워하게 만들었는지, 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얼마나 그것이 발목을 잡아끌었는지. 당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자의 마음과 몸에 새겨진 그 그을음이 그들을 어떻게 파괴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행으로 이끌었는지. 전쟁과 이데올로기 그것이 우선이 되어 누군가를 배제하고 가두고 죽이는 일을 당연하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보았고 들었다.


저 죗값을 어떻게 받으려고 저러나. 하지만 이스라엘의저 미치광이는 죄라는 것을 모른다. 죗값이 무언지 알기라도 했다면 그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했다면 저러지 못했겠지. 사람을,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고 재건이 불가하도록 ‘무’의 상태로 만드는 학살자. 어떤 존재들을 이 땅에서 지워내려는 자.


작년에 여의도에서 번쩍이는 불꽃을 보고 아이와 함께 좋아했었다. 불꽃축제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사방으로 쏘아대는 그 불꽃은 몇 키로미터 떨어진 우리 집에서도 보였다. 저것 봐, 어머나, 우와, 멋지다. 불과 몇 주 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폭격을 개시했다는 것을 잊은 채 그렇게 아이와 좋아했었다. ‘집단학살일기’라는 이스라엘의 폭격에 모든 것을 잃어가는 팔레스타인 작가의 글을 읽고 가자의 사람들이 매일 밤 두려움 떨며 들었던 그 폭격 소리가 우와, 어머나, 하며 감탄하며 들었던 소리와 닮아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이 세계가 얼마나 더 비겁하고 비열하게 될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권력자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절망적이야’라는 영화 해피엔드 속 인물이 이야기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예배당의 길고 긴 적색 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 사진은 연희 플레이스막에 전시된 김민희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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