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결국은 사랑이었어요.
부산에서 온 그는 밥을 먹으며 내게 책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는 그와 함께 325km를 건너왔을 검은 백팩에서 검은 수첩을 꺼냈다. 온통 검게 입은 채로 검은 카메라와 검은 백팩과 테두리가 까만 펜과 까만 가죽 커버의 노트를 가져온 그가 그 노트를 펴서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그가 적어온 그 질문들은 뜨겁고 성실하게 자신을 내던지며 활자를 읽은 이만이 할 수 있는 것들었다. 그가 물음을 던질 때면 나는 숙연해졌다. 그 자리에는 그와 나 말고 네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그와 내가 나누는 대화에 참여했다. 말을 보태지 않았지만 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속으로 하고 있는 듯.
“미니 북토크네, 미니 북토크. 일대일 맞춤형” 일행 중 한명이 던진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책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삼십분 정도 흘렀을까. 궁금한 것이 더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일행들의 눈치가 보여서였는지 그는 시종일관 꽈악 붙들고 있던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 사랑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읽었어요. 제가 책도 많이 읽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죽이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엔 사랑하는 이야기였어요. 좀 낯선..”
그가 말을 마치자 허리를 의자에 기대고 있던 일행 중 한명이 상체를 테이블 가까이로 가져와 그의 검은 노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도대체 얼마나 세필로 쓴 거야? 이거 진짜 님 글씨 맞음?” 내게 노트를 폈다 접었다 할 때 보였던, 너무나도 작고 빽빽하게 종이 위에 쓰여진 그 글자들. 저런 글씨로 만들어진 문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해석하고 싶은 마음에 중간중간 질문의 흐름을 놓치게 만들었던 그 글씨들.
“0.3이야 0.4야? 뭐? 0.7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얇게 쓸 수 있다고?” 미니 북토크는 그렇게 글씨체와 펜촉의 두께에 대한 심층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그가 내게 그 노트를 펼쳐 보여주었다. 네모난 격자 무늬 안에 들어찬 그 글씨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 종이를 보자 그가 했던 질문들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듯 했다.
언제나 나의 글은 나를 넘어선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그 무엇을 넘어선다. 부족한 글이고 이야기일지라도 읽는 이 안에 새겨져 있는 무수히 개인적인 경험과 만나게 되면 그 글은 더이상 부족한 글이 아니게 된다. 매순간 열심히 성실하게 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