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차다. 시래기를 샀다.

시래기의 품품한 냄새가 주방 한 가득 올라온다.

by 한시영

여름의 중턱에 와있으나 이른 새벽과 밤, 아이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몸이 차다. 할머니가 해주던 뜨끈한 시래기 된장국이랑 국물 자작한 나물 생각이 나서 시래기를 샀다. 반나절을 불리고 나니 남편과 아이가 잠든 밤이다.


불린 시래기를 끓는 물에 푹 삶는데 추위와 햇볕 아래 몇번을 얼었다 녹았다 했을 시래기의 품품한 냄새가 주방 가득 올라온다. 어릴 적 잠이 들 때 방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주방의 불빛과 냄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부엌으로 나가 엄마와 할머니가 만든 반찬을 먹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냄새가 우리집에 가득하다. ‘왜 엄마랑 할머니는 저녁도 아닌, 밤에 반찬을 만들까?’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물음들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시래기를 만들다 보니 하루가 걸리는, 그니까 정성이 필요한 음식들을 만드느라 그랬을 수도 있고, 정돈된 밤 모녀만의 시간이 약속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물려진 시래기를 팬에 넣고 양념을 뿌리고 볶고 졸인다.

푹 삶아진 시래기나물을 차가운 물에 헹궈 물기를 꼬옥 짰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 전 시래기 껍질을 까는데 검지와 엄지로 줄기 하나하나 벗기다 보니 이것만 벌써 10분째다. 국간장, 들기름, 다진 마늘 넣고 무친 다음 팬에 볶다가 오후에 만들어놓은 멸치육수를 넣고 자작하게 끓인다. 중간중간 맛을 보니 슴슴해서 된장 넣고 육수도 추가해서 20분을 뚜껑 덮고 끓이니 어릴 적 그 냄새가 다시 난다. 아, 이거였는데.. 우리 할머니가 해주던 거. 된장 국물에 우러나온 시래기나물 맛이 너무 고소하다. 고소함에는 들기름도 한 몫하고. 현미나 보리, 찹쌀 가득 넣은 거무스리한 밥을 지어 국물과 함께 가족과 먹고 싶어 진다. 들깨가루가 없는 게 아쉽지만 마지막에 참깨를 송송 뿌리고 반찬통에 넣어 식히는데 겨우 한 줌이다. 다음엔 좀 더 많이 해야겠다.

시래기 가득 다듬어 만들었건만, 완성된 건 고작 한줌이다.

이런 음식들을 지을 때 바로 전화로 물어볼 엄마나 할머니가 있으면 좋을 텐데. 엄마는 없고 할머니는 통화가 어려우시다. 그래도 이렇게 시래기나물 하나로 엄마랑 할머니를 진득하니 추억한다. 그리고 마음에 새긴다. 내 기억과 오감에 스며든 음식처럼 그렇게 어릴 적 나의 부모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그 밥상을 떠올린다. 따뜻하고 시큰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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