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사람에겐 무언가가 있다.

그 남자가 가진 ‘자기 객관화 능력’에 대해

by 한시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오마이뉴스란다. 새로 가입해주셨는데 경로가 어떻게 되냐고 묻길래 “강원국님의 글쓰기 연재 글을 보려고 가입했다.”고 답했다.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한국 남자가 자신은 관종이며 다른 사람의 기대와 반응이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카페에 가서 글을 쓸 때 받는 시선이 좋아 밖에서 글을 쓴다는 자기 고백에 이끌려 글을 구독하려고 웬만해선 안 하는 회원가입도 했다. 이미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해지신 작가님은 최근 글쓰기 강좌도 하고 계신 걸로 보인다.


강원국 작가님을 세상에 알린 책.


강원국 작가님의 글을 보니 또 새삼 느끼는 것은 ‘자기 객관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쓰는 글은 재밌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단어를 그대로 찾아보니 영어로는 “Self-objectification”, 그대로 풀어 말하면 나를 남 보듯/사물 보듯 하는 거다. 모든 사람들의 글이 재미가 있지 않듯, 자기 객관화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객관화가 어려운 이유는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면서 다른 이의 티끌은 잘 보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고, 자신을 직면하기엔 너무 바빠서일 것이다. 그만큼 자기 객관화는 인간의 본성과 반대되는 일이며,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 역시 상담을 3년 넘게 하면서 되돌아봤을 때, 감정을 다루고, 불안을 해소한 것과 함께 내적 성장을 이끈 상당 부분은 나 자신을 직면하는 ‘자기 객관화’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그 부분이 가장 두려웠고, 괴로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9. 이수지(거울 속으로, 비룡소) All Rights Reserved.

자기 객관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사회와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가 누구인지, 그것들 사이에 오차가 적으며 균형감을 가진 것. 내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나 상처를 제3자의 시선으로 보며, 부정하고 없애고 싶은 과거가 아닌 그것 역시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일이니 그만큼 어렵고 그 과정 또한 괴로울 수밖에 없겠다.


내가 하는 생각과 가진 이 감정이 주관적이진 않은지, 그래서 글로 표현될 때 내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어있지는 않은지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시를 들자면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불안해할 때, 그 감정에 매몰되어 불안해하길 그치고서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과하거나 이상하다 싶을 땐 그 실마리를 찾아 좀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면 되고 이게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특히 글쓰기에서의 객관화란 나의 글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겐 너-무 재밌고 관심있는 이 주제가 다른 이들에겐 그저 남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하는 이야기가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다른 사람이 관심있어 하는 주제’를 쓴다는 차원을 넘어서, 나의 이

감정이 보편적인지 그래서 나 말고 다른 이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그런 사람있지 않은가? 함께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이상하게 자기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고, 자기 안에 몰두하여 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사람들. 그래서 대화를 마치면 대화를 나눴다기 보단 그 사람의 ‘말을 들어준 느낌’을 갖게 하는 사람들. 대화 가운데서도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들.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타인을 중심으로 놓고, 균형을 갖기 어려운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런 균형감을 가졌다는 자체가 참 매력적이다. 물론 그런 존재에게서 나온 글 역시 매력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보기 싫은 현실도 보아야 한다.’ 란 카이사르의 말처럼 나의 보기 싫은 모습도 마주하고 더 나은 나, 성장하는 나로, 그리고 그 삶을 살아내며 더 좋은 글을 쓰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 작가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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