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애고아

존재의 부재란 원래 낯선 것이라고.

by 한시영
나 이제 고아야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민정이 연기한 쿠도 히나가 이 말을 내뱉고는 주저앉는다. 아빠인 이완익이 죽고, 삶의 이유였던 엄마가 수년 전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담담히 바닷길을 걷다가 결국 울음이 터진다. 사실 그녀에게 부모는 있어도 없는 존재였다. 아빠는 어린 딸을 늙은 일본인에게 팔았으며 엄마는 오래전 그녀가 어렸을 때 헤어졌다. 글로리아 호텔 사장이 된 것도 여태껏 살아남은 것도 모두 혼자의 힘이었다. 있어도 없던 부모였는데 왜 그 사실이 쿠도 히나를 울게 만들었을까.


<미스터 선샤인> 스틸


작년이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할 일이 있어 서류를 출력했다. 종이 위 나의 부, 모 이름 옆에는 ‘사망’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적혀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미 알고 있던 부모의 죽음이 글자로 머리에 박힌다. 프린터가 있는 공용 탕비실에서 누가 볼세라 얼른 스캔을 한 뒤, 종이를 최대한 작게 접어 가방에 쑤셔 박았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하늘 아래 남겨진 천애고아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건 꼭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천애,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남겨진 아이. 다행히 내 DNA의 반을 나눠 갖은 딸아이가 있고, 인생의 동반자 남편이 있지만 어째 그 사실로도 위로가 되지 않던 그 날.

어느 날 시댁에서 모임을 했다. 명절이었던가. 모두가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술도 한두 잔씩 먹는데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남편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셨다. 퍼즐을 잘 맞췄고, 낱말카드를 빨리 익혀 천재인 줄 알았다는, 모든 부모가 다 겪는 자식 천재설을 설파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러냐는 동생들의 말에 남편은 “축농증이 걸려 머리가 나빠졌다”라고 답하며 웃으며 넘겼다. 그들과 함께 있었고 같이 웃었으나 나는 혼자였다. 나도 저렇게 내 옛날이야기, 부모만이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길 해주며 추억해주는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동시에 질투가 올라왔다.

4년 전 돌아가신 엄마와 2년 전 돌아가신 아빠. 나도 내 힘으로 살아왔고 곁에 있지만 고달팠던 혈육이었다. 오히려 내가 지붕이 되어주던 부모였는데 이젠 없다는 사실이 왜 이리도 깊게 박히는지. 살아있었다면 더 힘들었을 게 분명한데도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본능적으로 뿌리를 찾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존재의 부재란 원래 낯선 것이라고, 그렇게 결론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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