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아닌 그저 동료로 받아들여지기 원합니다.
부장님. 주말 잘 보내셨어요? 한없이 덥다가도 실내는 에어컨 바람이 쎄서 아이 옷에 신경 쓰게 되네요.
제가 이렇게 메일 드리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말 내내 고민했고 쓰면서도 마음이 긴장됩니다.
사실 금요일날 부장님과 있었던 대화 중에 부장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금요일날 발표를 앞둔 제게 행여 팀장 본부장님 앞에서의 발표라 부담이 될까 하여 제게 힘을 보태시려 하셨던 말씀들 중에 “ㅇㅇ 매니저가 들어가면 이제 분위기가 릴렉스해지고 상당히 좋아질거야” “내용과 관계없이 이미 끝났지, 뭐”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셨거든요.
저는 평소 부장님께서 언제나 여자 직원들을 존중해주시고 배려해주시는 것을 알기에 그 말씀 또한 제게 부담을 덜라는 의미로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조금은 아쉽고 슬펐습니다.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들이 많은 그룹에서 발표하게 되면 “실력과 상관없이” 그저 좋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어요.
여성은 남성 중심의 그룹에서(적어도 저희 회사는 아직 남성 중심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동료” 가 아닌 “여성”이라는 대상, 그들이 속한 모임의 분위기를 밝고 좋게 해주는 대상화가 되어있는 현실에, 부장님과 저의 “젠더(성)”에 대한 인식 차이가 꽤나 멀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여성 ㅇㅇㅇ라기보다는 동료 ㅇㅇㅇ로 받아들여지길 원하는데.. 사실 아직은 그게 먼 길 같습니다. 지금도 영업사원들과 통화하면 “아, 하루 종일 남자들 목소리만 듣다가 매니저님 목소리 들으니 부드럽고 좋네요.”라는 말을 한 달에 한두 번은 듣습니다. 나이가 조금 지긋하신 분들께서는 “오 ㅇㅇ씨 목소리 좋은데?”
그저 동료가 아닌 목소리가 좋고 그들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대상화된 여성으로 받아들여질 때 힘이 빠집니다.
부장님이 그간 절 얼마나 아껴주시고 제게 배려해주시고, 늘 저희 아이가 아플 때면 걱정 말라며 든든히 지지해주셨음을 알기에 혹여나 제 이번 메일이 부장님과 저의 사이를 멀어지게 할까 걱정돼 주말 내내 고민했어요.
그래서 이런 제 발언들이 단순히 부장님을 공격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번 메일을 통해서 부장님과 제 ‘성’에 대한 인식이, 조직 내 여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가까워졌으면 합니다. 부장님께선 제 말씀을 들어주신단 신뢰가 있기에 제가 이 메일을 쓸 수 있었다는 것도요.
부장님, 월요일이지만 부장님 말씀대로 어려운 이 시대에 일자리가 있는 것을 감사하며 하루 시작할게요.
라는 나의 메일에 부장님은 정성껏 답장을 쓰신 후 내게 사과를 하셨다.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쓴 이런 메일을 읽으시고 앞으론 조심하겠다고, 그리고 나와 본인이 추구하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렇게 받아들여짐에 감사했고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