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연민하는 한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는가

내가 쓸 수 있는 글, 쓸 수밖에 없는 글

by 한시영

꽈악 움켜쥔 과거가 있다. 저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 담벼락의 넝쿨이 옆 담벼락의 것보다 더 우거져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쭙잖은 솜씨로 글을 쓰려는데 그때마다 발목을 잡는 것은 ‘나’다. 무엇을 쓰려해도, 쓰고 맺으려 해도 그 글 안에 내가 가득하다. 내가 쓰는 글이라 내가 가득한 건데 그게 불편하다. 내가 가득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불편한 건지, 그 안의 가득한 ‘내’가 맘에 안 드는 건지도 모른 채.

힘들고 고달팠던 시간들은 지났다. 사실 지났다고 여기기만 했지, 나의 시간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나봐. 그 시간을 풀어놓지 않고선 그 무엇도 풀어놓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무엇을 쓰든 벗어나고만 싶던 그 시간들이 떠올라서 불편해.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가는 엄마 이야기만 늘어놓는, 글의 주제는 엄마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 같아. 이 세상엔 없는 엄마를 내 글 속에 불러오는 것도 달갑지가 않아.

나는 내가 참 불쌍하고 딱해. 이걸 인정하기 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 무엇 하나 비빌 언덕 없이 여기까지 왔잖아. 숨 고를 시간도 없이. 삶은 그저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내게 있어서 사랑도 생존도 쟁취였어. 그렇기에 내 자신과 이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렇게 공격적일 수밖에 없나봐. 상담도 받고 신앙생활도 하고 남편 사랑받고 자식도 낳고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약하고 불쌍한 내가 아닌데 나만 빼고 내 손과 마음과 머리는 다 알아. 나는 아직 나라는 거. 그리고 나일거라는 사실.

난 내가 불쌍해. 어떤 글이든 불쌍했던 나를 위로받고 싶어.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가 쓴 자기 연민의 글을 맞딱들이면 참질 못해. ‘아니 왜 유난이야? 글을 인정받으려고 쓰나? 뭐 이렇게 자기 자랑이 많아. 자기 연민이 심하네.’

역시 용납하지 못하는 그 누군가와 그 무엇은 용납하지 못하는 나 자신과 그 무엇과 같나봐. 그들을 욕해도 난 자기 연민 가득한 채로 “저 그래도 이렇게 살아냈어요.” 란 글밖에 쏟아내지 못할 거야.

제목에 쓴 것처럼 자기를 연민하는 한 내게서 좋은 글은 나오지 못할 거고. 아마 나를 위한 글만 쓰게 되겠지. 근데 그게 나의 글이고 내가 써야 하는 글일 거고.

써야 하는 거 말고 쓸 수 있는, 쓸 수밖에 없는 글을 써야 하는 운명, 그게 딱하고 불쌍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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