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작가가 무언가에 대해 알고 있다면 반드시 그에 대해 쓰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에 담기게 된다.” - 헤밍웨이
내가 쓰는 글에는 무엇이 담길지, 이미 담겨있을지 모르는 그것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아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의 바다 한가운데서 엎드려서 끄적이고, 다 식은 커피를 물 마시듯 들이키며 책을 읽고, 베란다 너머 지는 노을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있던 그 몇 초가 마음에 새겨져 잠 못 들어 쓰는 글.
내가 뱉어내는 글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지, 누굴 대신해 말하는 것일지, 이렇게 매일 힘들고 고되고 복잡한 나의 내면에 대해서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의 인류학자이다.” - 아니 에르노
개인적인 것은 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라고 한다. 쓰고 쓰다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그냥 쓰는 일임을 알게 된다.
불현듯 떠오른 이 생각을 메모장에 적는데 나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안아주는 대신 장난감을 쥐어준 채 문장을 마무리한다. 이제 아이에게 포옹을 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