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

존 스노우의 낫띵

by 한시영

존 스노우가 죽는다. 그것도 믿었던 동료에게. 퍽하면 주인공을 죽이는 ‘왕좌의 게임’이었어도 존스노우가 죽을 줄이야. 그의 죽음은 그 편에 선 사람들만큼이나 내게도 절망적이었다. 모두가 절망에 빠진 그때, 불의 신을 믿는 여자가 존 스노우와 그의 편에 선 자들에게 온다. 그 여자는 주술을 몇 번 외우고 몇 가지 액션을 취한다. 그러더니 존이 갑자기 일어나 깊게 숨을 내뱉는다. 뱉어버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다. 꽤 오랫동안 말라있던 폐에 공기가 들어간 게 무리가 되었는지 가쁜 숨을 뱉는다. 여자가 묻는다.

“무엇을 보았나요?” “무엇이 있던가요?”


이렇게 죽었던 존이 살아났다.


아니, 죽었다 방금 살아난 사람한테 괜찮냐고도 아니고, 뭘 봤냐고, 뭐가 있었냐고. 사람 살린 주술사여도 너무 배려심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궁금했나 보다. 죽음 그 이후가. 가보지 못한, 죽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곳이.

“Nothing.”

존이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저 ‘무’였다고.

이 두 음절, 낫띵, 이라는 그가 뱉은 말. 내 마음이 무지 철렁였다. ‘없다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없다고?’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보면 될 것인데 나는 이 대사, 낫띵, 을 두고선 며칠을 생각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저게 진짜면 어떡하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정말 없으면. 천국도 지옥도 없는 거야? 그럼 내가 지금 여기서 착하게 살고 예수님 믿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다음에 똑같을 수 있다고? 예수를 믿는 나, 기독교인인 내가 미드의 한 줄도 안 되는 대사에 흔들렸다. 한 대 맞은 것 마냥 흔들했다. 대사 하나에 흔들리는 믿음이라니, 민망하기 그지 없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내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 그 세계의 존재가 바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지를 결정짓기 때문일 거다. 착하게 산다고 세상이 보상을 해주지 않고, 조금 나쁘게 산다고 세상이 혼내지도 않는다. 죽고 나서라도 보상과 심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나만 생각하고 살면 되겠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그런데 나는. 좀 착하게 사는 것이 더 편하게 태어난 것 같다. 남한테 나쁘게 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나만 생각하는 거, 다른 거 돌보지 못하는 거, 이런 게 불편하다. 마음이. 결국 내가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후 세계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신은 있어야 한다. 내가 그나마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게, 세상을 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을 믿는 건지, 그래서 나는 유신론을 가진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믿고 싶어 믿는 것인지 진짜 있는 것을 믿는 것인지.. 믿는 나, 유신론자인 나는 오늘도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본다. 그러다 신이 존재할 이유까지 만들어버렸다. 버릇없이. 주제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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