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모습으로 온다.

봄이 오는 모양에 대해.

by 한시영

꽃은 필 때가 되서 피는 거고, 싹은 날 때가 되서 나는 건 줄 알았다.

며칠 전만 해도 휑하던 부엌 창 앞 인왕산에 색이 입혀졌다. 겨울 내내 밥 지으며 보던 산. 생명은 여기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듯 마르고 건조한 산. 때론 지루하기까지 하던. 이따금 날아오는 새무리들만이 생명의 움직임이었던 그 산에 색이 더해졌다. 그것도 노란색, 분홍색,주황색. 쓸쓸한 모습에 영 어울리지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색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노란 것은 개나리일테고, 분홍은 철쭉아니면 진달래겠지. 주황은 모르겠다. 솔이는 접시꽃이 아니냐는데 그것도 아닌듯 싶다. 가만 보니 오늘은 흰색도 추가됐다.

무에서 유가 되는 것, 중력을 거스르는 것. 손톱보다 작은 씨앗 하나가 해와 흙이 낮 시간에 주는 얼마 안되는 온기에 싹을 틔운다. 그 조그마한 몸둥이에서 싹이 나오고, 지 몸보다 무거운 흙을 들어올린다. 털썩. 그러더니 땅을 밟고 선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것이 지보다 크고 큰, 비교도 안되는 지구의 중력이라는 힘을 이기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말도 안돼. 사는 건 이렇게 말 안되는 것들의 연속이다.

나의 아이도, 당연히 자라는 것이 아니겠지. 고 몸 속 뼈들이 여물고 뇌 안 시냅스들이 연결되고 이어져서 하루가 다른 모습으로, 어제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내뱉는다.

보이지 않게, 말도 안되는 모습으로,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