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을 지워줘

아이의 상실을 마주하며

by 한시영

오후까지 일정이 있어 느지막히 투표를 하느라 남편과 교대로 다녀왔다. 남편과 유모차 탄 둘째, 킥보드 탄 첫째가 1층 아파트 현관 앞을 누빌 동안 얼른 투표를 하고 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둘째가 탄 유모차는 멀찌감치 떨어져있고, 6살 첫째가 아빠에게 안겨 울고 있다. 알고보니 중국집 배달일을 하시는 아저씨가 솔이에게 헬륨풍선을 주셨는데 그걸 놓친 것.

엘레베이터에서도, 집에서도, 그칠 줄을 모른다. 우느라 숨이 가빠져도 해소되지 않는 마음을 쉴새없이 이야기 한다.

“우주로 갔을까?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놓쳐버렸어. 그 분홍색 풍선이 어디로 갔을까? 보이지가 않아. 어쩜 그래. 어떻게 멀리 날아갈 수가 있어. 우주로 갔대. 엄마 우리나라에 로케트 있어? 제발 구해와줘. 나 그거 타고 가야할 것 같아.”

그렇게 20분이 지났을까. 조금 안정되었는지 저녁도 먹고 재밌게 놀고 목욕도 하고 여느 때 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이야기한다. “엄마, 나 너무 슬픈 생각이 나서 잠이 안와. 못 자겠어.” 하더니 눈물을 목으로 삼킨다. 뚝뚝 흐르는 눈물로 자기 베갯잇을 흠뻑 적신다.

“엄마, 내가 그걸 놓치지 말았어야 했어. 내 기억을 지워줘. 자꾸 그 순간이 생각나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어쩌지. 슬퍼서 잘 수가 없어.”

그렇게 5분, 10분이 흐른 후에도 힘이 들었는지 눈물 가득 머금은 눈망울로 말을 이어나간다. “오토바이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고 풍선을 받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엄마 내 기억을 지우고 싶어. 이거 꿈이지?”

잠옷 윗도리를 걷어올리고 손을 넣어 아이 등을 긁어줬다. 그러더니 뻐꿈뻐꿈하다가 잠에 든다. 아이가 잠든 뒤에도 한참 동안 아이의 말이 맴돌고, 그 모습이 잔상으로 남는다.



아, 아이가 후회란 걸 하기 시작했구나. 이렇게 벌어진 일이 본인 때문인 것을 알고선 후회를 하고 자책을 하는구나. 그 자책이 감당이 안되고 본인이 미워지는 감정이 들어서 힘들어하는구나. 그래서 그 장면, 그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어서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혹시 꿈이 아니냐고 묻는 아이.

중간중간 감정이 복받쳐오를 때면 그래도 잠시 쉬기도 하고. 자기 마음이 주체가 안되니 지금 좀 엄마가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하는 모습에 나 역시 아프고.

아이의 아픔이고 슬픔이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는 것 뿐이다. 우울한 아이를 달래고 싶고 어떻게든 아이가 울지 않았으면 하는, 아이가 우는 그 상황을 좀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머릿속으로 ‘솔이가 좋아하는 영화, 영상을 보여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아서 아이의 말을 들어주며 기다렸다. 기다리니 아이는 진정이 됐다.

이제 아이가 학교에 가고, 교우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커가며 이러저러한 일들로 마음에 흠집이 나고, 풍선을 상실한 것 그 이상의 문제들이 펼쳐질텐데 그 문제 앞에서 아이는 어떻게 할까? 아니, 그런 아이를 둔, 아이를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참 개입하고 싶고, 내가 대신 해결해주고 싶고, 아이를 지켜주고 싶지만 그것은 내 힘을 넘어서는 일이다. 내가 대신 아프고 싶고, 상처니 고난이니, 부정적 상황과 감정으로부터 아이를 지켜내고 싶다.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이다. 아직도 내가 왜이리 마음이 울컥하고, 쉬이 잠들지 못하겠는지, 글로 써도 정의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아이가 크고 있다는 거다. 크는 아이를 보는 것은 기특하고 대견하고 감사하지만, 뭔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나중에, 혹시 이런 일이 있다면 오늘처럼 한발자국 뒤에서 아이를 기다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