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그 평범한 고단함에 대하여

고되다, 고되.

by 한시영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둘째와 집에 오니 부엌 바닥은 밥풀 천지고 식탁 위엔 그릇들이 너저분하다. 지저분한 것만큼 삶의 욕구를 짓누르는 게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내어 쥐어준다. 때는 이 때다. 식탁 의자에 앉은 아이가 잠시나마 엄말 찾지 않을 동안 부엌을 치운다.

분명 어젯밤, 자기 전에 끈적한 부엌 바닥이 불쾌해, 손수 걸레질을 하며 광나게 닦았건만 그 시간이 무색 해질 정도로 너저분하다.

조삼모사. 집을 치우려고 아이에게 맛있는 걸 쥐어줬다. 부엌을 치우고 나니 아이가 신나게 먹은 칼국수 면발들이 스파이더맨 마냥 의자며 아이 얼굴이며 바닥이며 여기저기 붙어있다. 아이를 번쩍 안아 옷에 붙은 밥풀들을 떼어내고 몇 갠 내 입으로 들어간다. 밥풀들을 입속에 넣으면서도 이런 내가 참 주책맞단 생각을 한다. 이런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면 내가 싫어질 것 같아 그 앞에선 이러지 말자고 되뇌인다.

밥 한번 먹었을 뿐인데 꼬질꼬질해진 아이. 입은 하난데 온몸으로 밥을 먹은 아이의 옷을 벗기고 화장실로 데려가 손을 닦인다. 아직은 없는 아이의 목, 정확히는 존재는 하나 틈이 없는 아이의 목 속에 손가락을 넣어 물로 닦아낸다. 때가 나온다. 분명 어제 씻겼건만 틈이 없는 목 속으론 땀과 입에서 흐르는 침이 합쳐져 아이만의 까만 목걸이가 만들어져있다.

그렇게 점심식사가 끝나고 나니 내가 아침부터 한끼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힘들어도 외면할 수 없는 허기, 배고픔, 허전함, 그래도 살아있단 걸 알려주는 신호들.


나의 먹거리에 내 노동력을 쓰는 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 꽤 오래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김치우동을 꺼냈다. 인덕션에 물을 끓이고 우동면과 스프를 넣었다. 그리고 아이가 먹은 밥그릇에 완성된 우동을 덜어 면발을 흡입한다. 설거지 하나라도 줄여야 하는 이 시점에 그릇은 무조건 아이가 쓰던 것을 재활용한다.

두 젓갈 먹었을까, 아이가 내 다리를 부여잡곤 안아달라 애원한다. 우동은 그대로 두고 아이를 안고 매트에 가서 기저귀가 축축한지 확인한다. 빵빵하게 찬 기저귀를 바꿔준다.

잠시라도 습했을 아이의 엉덩이에 바람을 불어넣어주니 기분이 좋은지 쌩긋 웃는다. 기저귀를 가는 중에도 가만있질 못해 간신히 눕혀 손에 장난감 쥐어주고 잽싸게 바지까지 입힌다. 바지를 입히다보니 까슬까슬한 게 느껴진다. 미처 떼어내지 못한 밥풀이 말라 딱딱하게 된 것이다.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낸다.

다시 젓가락을 넣어 면을 들어 올리니 면발이 으스스 부서진다. 그래도 어떻게 끓인 우동인데 하며 불어 터진 면발을 삼켜 넘긴다.

거실에서 노는 게 지겨워진 아이를 데리고 놀이방에 갔다. 장난감을 꺼내 준다. 근데 아까 식탁을 닦다 만 행주 생각이 난다. 젖은 채로 식탁 위에 놔두면 냄새가 난다. 행주를 치우러 가려는 찰나, 엄마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아이가 운다. 아이 울음에 이길 장사가 어딨겠나, 다시 앉아 행주는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한다.

아일 안을 때마다 슬적슬적 오는 찌릿한 왼쪽 날갯죽지 통증에 날개가 나오려나, 새가 되려나, 하늘을 나는 자유의 몸이 되는 망상을 한다. 망상임을 깨닫자 날갯죽지가 시름시름 아픈 통증으로 다시금 느껴진다.

그 와중에 끄억- 트림하는 아일 보니 내 속이 다 시원하다. 달려가 등을 두드려주며 “어이구 잘했어, 어이구 이쁘다.” 하다가 나도 트림 같은 생리적 현상만 해도 이쁘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며칠 째 아픈 골반 때문에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하려고 했는데, 같이 누웠다. 눈이 감기려는 순간,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진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만 앉으면 실실 웃으며 기어 오는 아이, 기어코 엄마가 앉은 변기까지 와 안아달라는 아이가 없을 때 갈 수 있는 걸 다행이라 여기며 일어선다. 아유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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