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있는 한 좋은 세상은 올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서 더 좋은 세상이 오면 무고하게 사람이 죽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고, 사람은 배워서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만큼 똑똑한 존재라 믿었다.
뉴스에서 한 남자가 용암과 같은 물줄기에 맞으며 죽어갈 때도, 세 모녀가 돈이 없어 집에서 죽어갈 때도, 나는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 납치되어 아이 낳는 신생아 공장에 팔려 아이만 낳고 있는 소녀들이 나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떠한가. 어른이 되고 더 배우고 더 알아간다고 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있는가. 몸이 커지고 머리가 커질수록 커져가는 욕망을 아이들과는 다르게 좀 더 교양 있게 분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합리화하는 능력을 키웠다. 내 아이가 재개발 구역이 아닌 아파트가 주변 위치한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기웃기웃 거리고, 혐오하는 이들을 혐오하지만 그 혐오에 조용히 편승하여 점잖게 혐오하는 나는 어떠한가.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 한명이 무고하게 죽었는데 책상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고 아이 식단표를 짜고 있는 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싫어질까. 내가 이렇게 내 자신이 싫어진다고 해서 나쁜 세상이 좋아질 리 없는데 나는 왜 자기혐오로 방향을 틀었나. 그러나 저러나 그대로, 여전히, 늘 그렇듯이 나쁜 세상인데. 나는 그냥 내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고. 이것 말고 우울에 빠질 이유, 슬퍼하라 이유는 내 주변에 널리고 널렸는데. 난 왜 이 세계의 나쁨이 내 우울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얼어 죽을 공감능력.
신이 있다면 이러한 인간의 비극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너희는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나를 믿으라고, 확신에 차있을까. 우리의 비극을 함께 할까. 아니면 나처럼 이렇게나 못되고 나쁜 세상이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다시금 비바람에 우릴 쓸어버릴 생각을 할까.
인간들이 이 세계에 사는 이상 좋은 세상은 올 수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