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주택을 준비하면서
반팔을 입은 아이의 팔뚝이 하얗다. 날이 더워져 긴팔에서 칠부로, 소매가 짧은 반팔로 아이 옷이 바뀌었다. 겨울에도 내내 해를 봐온 얼굴과 목은 까무잡잡한데 옷에 가려졌던 팔뚝은 새하얗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을 지나 여름을 맞는다. 아이도 나도 그 시간을 견뎌왔구나, 견뎌왔기에 여름을 맞는구나.
패딩을 입고 사호네로 갔던 그 날. 처음으로 우리가 모였던 날은 겨울이었다. 연희동에서 증산동으로, 가좌동으로, 성산동으로. 그렇게 돌고돌아 우리는 성산동에 도장을 찍었다.
조건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탈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무기. 그래서 공동체 주택을 운명 삼아 살아가려는 이들을 나도 모르게 을로 만들었다. 갑의 위치에서 내가 뱉었던 말과 생각들이 그들을 흔들진 않았을까, 그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게 한 것은 아닐까, 나로 가득 찼던 생각에 그들이 슬며시 들어온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지나고 여름을 맞으니 이제서야 사람들이 보인다.
그렇게 다들 견뎌온거다.
생각을 한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무섭게 이어진다. 같이 살면 그들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생각보다, 예상보다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것 같아서 벌써부터 두렵고 설렌다. 나도 내가 맘에 안 드는데 그들이라고 날 맘에 들까, 하며 어쩔 땐 자기혐오로 방향을 튼다. 익숙하고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러다가도 기대 하지 말고 그냥 우린 이웃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자는 방패를 마음에 박아놓는다. 최소한의 방어.
5층짜리 건물이 4층이 되고, 5층에서 살려다 1층으로 내려오고, 중요한 문제들이 앞다퉈 나오는 중에 하는 생각이란 게 나는 저런 것들이다.
크게 과장하고 한껏 감정을 이입해서 감성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나란 사람은 과장을 잘 하고 감정적이고 감성적이라 생각의 회로가 이렇게밖에 흐르질 못한다.
나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