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면 묵직한 이야기
중학교 때 마침 우후죽순으로 생긴 찜질방에 친구들과 종종 놀러갔었다. 뜨듯하게 몸을 지지러 가는 걸 아는 나이는 아니었고 그저 수다 떨고 간식 사 먹고 하루 종일 따뜻하게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어쩌다 외박도 할 수 있었고.
친구들과 찜질방을 갔던 그 날, 엄마는 5분 거리에 있는 김밥천국에 있었다. 태어나서 엄마가 다른 직업을 가져본 것을 본일이 없던 나였다. 노동과 돈을 버는 일에 대한 고단함도 모르던 나이였다. 그저 엄마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설레어 친구와 함께 오른쪽 가슴팍에 '황토 숯가마'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인 찜질방 옷을 입고 엄마에게로 갔다.
입구에서 본 엄마는 앞치마를 두른 채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김밥이 말아지지 않는지 연신 혼잣말을 해대며 김밥을 이리저리 만져댔고 그 와중에 손님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려 경황이 없어 보였다. 그곳에 그저 엄마가 있다는 생각뿐이었지 엄마가 그런 모습으로 있을 줄은 생각치도 못했다. 손님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도 김밥을 마는 일도 서툴어 하던 엄마 모두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친구를 데리고 서둘러 김밥천국에서 나왔다.
그 상황을 나만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라 친구에게도 짐을 지웠다는 생각에 그날이 창피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속 깊은 친구라 내게 미안해할까 봐 그게 마음이 쓰였던 밤이었다.
엄마는 어디를 가더라도 늘 튀던 사람이었다. 상황과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드러나던 사람. 타인과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던 사람. 그 부자연스러움과 민망함을 받아내는 그 사람의 딸이었다.
손님들 요구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허둥대던 모습이 마음에 박혔고 나 때문에 그녀가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자신을 탓하는 것 뿐이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저렇게 고생하는 거라고. 친구들과 있을 때 남자친구과 데이트를 할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언제나 엄마 생각이 났다. 나만 이렇게 즐거우면 안 될 것 같아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엄마를 향한 죄책감의 그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러고 2-3주 뒤 여느 때와 같이 엄마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채로 김밥천국을 그만뒀고 술을 마시다 안 마시다 그렇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허둥지둥 거렸어도 혼자서 딸 하나 키워보겠다고 용감하게 김밥천국에 지원했던 엄마를 떠올린다. 비록 몇일 일하지 못하고 끝이 났지만 열심히 일했던 엄마였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을 텐데 그러지 못할 현실, 아빠 없고 능력 없는 경력 단절된 여자라는 현실과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술로 도피했을 그 마음. 그리고 그런 엄마를 봤을 딸.